그녀는 보통 사람
에디터M 2007/07/04 1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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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읽으면서 애달팠던 구절 하나, 감상 하나 **
자장자장, 자장자장....... 눈이 큰 우리 아가 잃어버린 것들 잘 찾겠다, 귀가 큰 우리 아가 속삭임도 잘 듣겠다, 코가 높아 냄새를 잘 맡고 입이 커서 상추쌈도 잘 먹겠다, 손이 크니 주는 것도 잘 받겠고 발이 크니 넘어지지 않고 잘 걷겠다....... 있는 그대로 귀하고 어여쁘고 맞춤하다 - 본문 중에서
어머니의 사랑은 너그럽다.
눈이 크면 큰대로 팔자 드센 게 아니라 잘 보이니 좋은 것이고,
귀가 크면 남의 속삭임이나 듣고 다녀 음흉한 게 아니라 작은 소리도 잘 들리니 좋고,
코가 높으면 상스러운 것이 아니라 냄새 잘 맡으니 기특하고
입이 크면 상놈에, 손발이 크면 도둑놈이라 하여도
주는 대로 잘 먹고 잘 받으니 착한 데다, 넘어지지 않고 잘 걸을 발이라 흐뭇하다.
그러니 참, 어머니의 사랑은 어리석다.
**
논개를 읽으면서 가장 끔찍했던 건
우리나라를 침범한 왜적이 아니었다.
같은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않고,
너와 나의 구별이 너무나 뚜렷하여 한 나라라는 것마저 망각해버린
내 민족, 내 동포의 모습, 그것은 참혹 그 자체였다.
그토록 삼강이 어떻고 오륜이 어떻고 충과 의가 또 어떻고를 입에 달고 외던 사람들이
전쟁이 나자마자,
백성과 노비들의 피고름을 쥐어짜 모은 재산을 움켜쥐고 꽁지가 빠져라 도망간 사이,
꽉꽉 비틀리고 탈탈 쥐어짜진 백성들은,
비치적비치적 일어나 내 가족과 내 나라의 강토를 지키기 위해
뼈만 앙상한 손아귀에 변변찮은 무기를 그러쥔다.
지금까지 그러했던 것처럼.
앞으로도 그러할 것처럼.
전쟁이 났을 때 여자들은 참 비참하다.
죽는 편이 날까? 하지만 그러면 아이들은? 늙은 어머니와 힘없는 아버지는 어떡하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살고 싶다는 생각은 차라리 사치다.
하지만 어떤 일이 있어도 먹어야 산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고,
전쟁이 참혹할수록 여자의, 어미의 손을 필요한 곳은 차고도 넘친다.
그래서 여자는 더 강해진다.
땅을 일구던 따뜻하고 다정한 흙손 그대로 칼과 창을 잡고 생사의 갈림길로 내몰린 불쌍한 남자들과
토실토실한 엉덩이로 골목길을 질주하고 고운 꽃을 따 먹으며 자라나야 할 나이에
굶주림과 공포에 지쳐 눈만 커다래진 불쌍한 내 아이들을 위해
여자는 할 수 있는 일이란 무엇이든 하고 할 수 없는 일까지 기꺼이 한다.
생명을 키우고 돌보는 건 원래부터 하던 일이 아니던가.
처음에 논개를 읽기 시작한 이유는 순전히 표지 때문이었다.
논개라고 하면 교과서나 위인전에서 왜장을 안고 물에 뛰어든 기생이라 나와 있었고,
그보다 더한 무엇이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굳이 그런 구닥다리를 소설로 찾아 읽고 싶은 마음은 더구나 없었다.
그런데 마치 보자기처럼 곱게 보이는 표지가 참 갖고 싶었다.
그렇게 논개를 읽으면서 문득 깨달은 것은,
난 논개를 많이 들은 것에 비해서 거의 모르고 있었다.
하지만 구태여 공부하려고 읽는 것도 아니고, 게다가 소설이니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까지가 허구일지는 모르겠다.
다만, 논개라는 사람이, 처음으로 사람처럼 느껴졌다.
그녀가 몰락한 양반이던지 기생이던지 최경회의 후실이던지는 다 상관없었다.
그녀는 잔다르크처럼 하늘의 계시를 받아 우국충정의 애국심이 마구 솟구치는 위대한 사람도 아니고, 한점의 흐트러짐 없이 외곬의 길을 가는 날 때부터 남다른 인물도 아니었다.
왠지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그저 보고 싶은 걸 보려고 잠깐 허튼 짓을 하기도 하고, 친구를 잃고 싶지 않아서 마음 앓이도 하는 보통 사람이었고,
사랑과 함께 죽어야겠다 마음먹고 그것을 실행할 만큼, 딱 그만큼만 용기 있는 여자였다.
사실 그녀가 애국을 위해 죽지 않아서 좋다. 그녀가 위대한 사상과 이념을 위해 몸을 던진 것이 아니라서 더 좋았다.
후세의 사람들이 어떤 의미를 부여하든 간에, 역사적인 사실이야 어떠하든 간에,
이제부터 내 안에 그녀는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고 싶은 대로
그래서 죽음을 향해 뛰어든, 보통 사람이 되었다.
난 그녀가 이제는 행복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아마도 이미 행복해졌을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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