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리뷰] 캐비닛
까꿍 2016/11/15 1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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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캐비닛
- 김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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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0) - 2006-12-21
: 4,718
누군가는 보이지 않는 곳이서 폼나지 않는 일을 해줘야만 비행기가 논두렁이나 하수구에 처박히지 않고 하늘을 제대로 날 수 있다는 것. 그게 우리가 살고 있는 세싱이라는 것을 사람들이 이해해주길 바라는 거다. 대표성의 잣대에 기대지 말고 개별성의 잣대로 사람을 대해달라는 것이다. 나는 그것이 성숙하고 깊이 있는 인간관계의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토포에 빠지려면 왕창 망가져서 모든 게 폐허가 되거나, 아니면 나는 모르겠으니 배 째라 이렇게 배짱 좋게 무책임해지거나, 둘 중에 하나는 돼야 하죠. 이것저것 걱정하고 그러면 절대 안 돼요.
그 말이 맞는지도 모른다. 폐허를 가질 용기도, 무책임을 가질 용기도 없어서 우리는 항상 피곤하고 지쳐 있는데도 깊은 잠을 이루지 못하는지도 모른다.
현대인은 아무도 깊은 잠을 자지 못해요. 전기가 발명되고 메머드 도시가 등장한 아후로 현대위 밤은 일종의 교란상태에 빠져 있죠. 알다시피 불안은 숙면의 최고의 적이에요.
누군가 다른 곳에서 내 몫의 삶을 살고 있구나. 그러니 나는 여기서 다른 삶의 몫을 잘 살아줘야 할 텐데, 뭐 이런 생각. 내 삶도 그리 나쁘지 않다는 생각, 존재감이 아주 작아졌다는 생각과 그 존재감으로도 충분하다는 생각.
우리 둘 중에 하나가 가짜였다면 말이에요, 그러니까 우리 둘 중에 누구 하나가 허상이라면, 그 허상은 바로 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 말이에요. 거울 속에 들어 있는 괸손잡이는 바로 저니까요.
생각해 보면 우리가 견딜 수 없는 시절은 없어요. 그런 시절이 있었다면 나는 지금까지 살아 있지도 않을 거예요. 우리는 행복한 기억으로 살죠. 하지만 우리는 불행한 기억으로도 살아요. 상실과 폐허의 힘으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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