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랬다고 적었다 - 김애란
hellas 2026/10/30 12:57
hellas님을
차단하시겠습니까?
차단하면 사용자의 모든 글을
볼 수 없습니다.
- 그랬다고 적었다
- 김애란
- 15,300원 (10%↓
850) - 2026-08-24
: 114,970
가족에 대한, 사회적 참사에 대한,
새로운 시작을 하는 이들에 대한, 작가의 추억에 대한 산문.
가족 이야기엔 공감대가 커서 잠시 울적해지기도 했다.
'이렇게 오래 집에 돌아오지 못하는 일...'
사람의 생과 사에 대한 회한들...
AI 와 대화를 나누고 정보 획득을 하면서 감정 교류, 위로를 받기도 하고,
그러면서 어느 순간 인간이 아닌 AI의 주저함이 없는 나이브한 언변에 거리감을 느끼게 되는 지점까지 공감했다.
신형철 평론가의 말처럼 미끌거리고 감정의 손에 잡히지 않는 그런 언어에 대해.
- 돈 때문에 또 밥 때문에 시무룩하게 발밑을 보는 눈과 그럼에도 이따금 먼 데를 보는 인간의 눈을 생각한다. 둘 사이가 만든 삶의 너비, 그리고 그 안에서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을. 나 또한 그곳에서 글을 쓰다 어느 순간 마흔 넘은 작가가 됐다. - 12
- 한 사람의 성취를 두고 애써 결핍을 찾거나 가정법을 쓸 피요는 없다고. 우리는 지나간 역사를 바꿀 수 없으며 그 작가는 그 작가로 충분하다고. 카프카가 일을 혐오한 동시에 성실한 직장인이었다 해서 그의 작품이 덜 위대해지는 것도 아니며, 어슐러 K. 르 귄이 전업작가로 비교적 안정되게 살았다ㅏ 해서 다른 작가보다 더 현실을 몰랐던 것도 아니다. 누군가의 결핍처럼 보이던 게 나중에 개성이 되고, 자산 같았던 게 한계나 덫이 되는 경우를 우리는 이미 많은 이야기를 통해 알고 있다. 삶은 단순한 덧셈 뺄셈이 아니라 여러 개의 얼굴로 이루어져 있으며, 문학은 바로 그 자리에서 출발한다는 점도. - 14
- 그러니 중요한 건 목적지에 도착하는 것 자체가 아니라 도착 이후의 문제, 연착 전후의 문제인지 모른다. 밥과 꿈이 번번이 우리 손에서 미끄러져 나갈 때, 낯설게 얼굴을 바꿀 때 그 간극을 관리하고 메우는 사유와 언어를 갖는 것.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이 삶을 해석하고 이해하는 기술을 익히는 일 말이다. - 16
- 그러고 보면 내게 같은 고백을 들은 K씨에게는 있고 챗지피티에게는 없는 게 하나 있었다. 그건 다름 아닌 '망설임'이었다. 인간은 누군가의 고통 앞에서 자주 주저한다. 자신의 말이 혹 옳다 여길지라도 그저 상대의 마음을 짐작하며 망설인 채 말을 삼킨다. 그리고 그 주저와 짐작 사이에 힘겹게 서 있는 어떤 품위와 배려가 있다. 요즘 그런 것을 자주 생각한다. - 35
- "큰 교훈 없는 상실."
나는 단편 <안녕이라 그랬어>에 그렇게 적었다. 그런데, 삶은 정말 그런 것의 연속일까? 잘 모르겠다. 다만 그동안 내가 진부한 주제라 여긴 어떤 종류의 이야기가 왜 그토록 인류에게 오랜 시간 반복돼왔는지는 조금 알 것 같다. 살면서 우리는 누구나 사방의 모든 불이 갑자기 꺼진 듯한 상황을 맞으니까. 그러다 가끔은 저마나 영혼에 저축된 빛으로, 과거 자신이 받은 줄도 몰랐던 유산으로 눈앞을 밝히기도 하니까. - 54
- 나는 여러 문학 작품에서 스토너가 본 것과 비슷한 유령을 자주 만났다. 그리고 내가 장르를 불문하고 소설 안에서 으스스함을 느끼는 인물들에게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는 점을 발견했다. 그건 그들이 '자기 서사를 의심하지 않는' 이들이라는 점이었다. 이들은 보통 종교와 정치 영역에 잘 나타나며 둘은 쉽게 결합한다. 언젠가부터 나는 그 둘이 힘을 합해 진실을 해하는 이야기를 섬뜩해 했다. - 105
- 어느 직업을 가졌든 많은 분들이 해당 분야에 필요한 기술과 지식을 계속해서 익히고 늘리려 노력할 테지만 나 역시 어쩌다 소설가가 돼 꾸준히 연습하게 된 삶의 방식이 있다. 내게 소설 쓰기란 상대가 아는 것과 내가 아는 것을 합해 둘 다 모르는 장소에 다다르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런 일은 아주 드물게 일어나고, 아는 곳에 도착하는 것만으로도 벅찰 때가 많지만 다만 거기까지라도 가기 위해 꼭 해야 하는 일이 있다. 평소 내가 아는 것이 정말 아는 것이 맞는지 확인하고 내가 모르는 게 무언지 공부하고 반성하는 일이다. 어떤 태도나 자격을 떠나 기술적인 면만 봐도 그렇다. - 139
- 인간은 균질하지 않고 인간성 또한 마찬가지다. 그중 어떤 인간성은 사랑할 만하고 어떤 인간성은 지리멸렬하지만, 그 이상함과 불안전함 속에서 무언가 믿거나(종교), 의심하며(과학) 살아온 것이 우리 인간이지 싶다. 삶과 앎을 향한 의지가 종내 삶과 앎에 대한 반동으로 이어져 납득하기 어려운 일도 더러 일어나지만. 불길한 소식 앞에서 나 역시 자주 어두운 표정을 짓곤 하지만. 낙관 혹은 비관 대신 '우리는 모른다'는 사실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나 자신의 욕망에 따라 삶을 꾸려가는 시간주권을 가진 채 살아가고 싶다. 스스로 삶의 의미를 물으며, 시간의 시작과 끝을 사유하면서. - 190
2026. aug.
#그랬다고적었다 #김애란 #문학동네 #에세이
PC버전에서 작성한 글은 PC에서만 수정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