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 뚫기 - 박선우
hellas 2026/05/12 1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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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둠 뚫기
- 박선우
- 15,120원 (10%↓
840) - 2025-03-05
: 3,403
사랑, 용서가 본인에게 가능한 일인가 헷갈리는 청춘.
혼란스럽고 확신 없는 것이 정체성인 지점, 그것을 체념 증후군이라고 하면 지극히 당연한 것 같다.
요즘 여성작가의 글들을 여성문학이라고 지칭하지 않듯, 이 작품도 퀴어 문학이라고 딱히 규정할 필요가 있나 싶다. (심사평에 너무 많이 언급되기에 생각함)
그저 이젠 다 괜찮아, 다 흘러갈 거야라고 받아들이는 일이 타인의 일이 아니고,
나는 결코 뛰어넘지 못할 지점이 있을 거라는 기분이 들었다.
드러나지 않은 엄마의 전사들이 희미하게 어른거리는 점이 재밌달까 예사롭지 않다 느끼기도 했다.
- 사랑했던 기억은 어디로 가나.
어디에도 없는데 어디에나 있는 듯 하다. - 11
- 애초에 누군가를 이해한다는 것이 가능한 일이긴 할까. 나는 나조차 제대로 이해해 본 적이 없는데. 그렇지만 엄마는 나를 낳아준 사람이 아닌가. 나는 엄마에게서 태어난 사람이 아닌가. 한때 하나였던 우리가 서로를 이해할 수 없다면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타인이야 뭐 말할 것도 없지 싶었다. 그런 생각을 두서없이 이어가다보면 대체 누구를 믿고 살아야 하나, 왜 살아야 하나 암담해졌다.
그러게, 왜 살아야 할까. - 13
- 나는 무엇을 바랐던 걸까. 사랑? 용서? 정말로 그런 걸 원했던 것일까. 그게 나한테 가능한 일이긴 한 걸까. - 70
- 그럼에도 우리가 엄마를 용서할 수는 없는 것 같다. 이제는 우리 안의 상처들이 오롯이 엄마의 잘못으로 생긴 게 아님을 알만큼 충분히 나이를 먹었지만, 그래서 엄마를 안쓰럽게 여기는 순간들도 더러 있지만, 그럼에도 엄마를 용서할 수는 없는 것. 어떤 원망은 많은 시간이 흐른 뒤 그것을 분석하거나 누군가에게 털어놓을 수는 있어도 결코 해소할 수는 없는 것 같다. - 74
- 언젠가 형은 징그러운 것을 바라보는 듯한 얼굴로 내게 이런 말을 했다. 너는 대체 엄마를 어떻게 견디는 거야? 그 나이 먹고 왜 아직도 같이 살아? - 85
- 이게 다 엄마 때문이라고!
당연히 홧김에 뱉은 말이었다. 홧김에 속내를 털어놓는 건...... 집안 내력인 것일까. 하지만 누군가의 불행이 온전히 다른 누구의 탓일 수 있을까. 누가 누구를 그토록 전면적으로 망쳐놓을 수 있을까. 아니, 우리가 진심으로 서로를 망치려고 든 적이 있었을까. 정말로 그런 순간이 살면서 단 한 번이라도 있었을까.
그럴 리가.
무엇보다 자신의 불행이 누구의 탓도 아님을, 그저 제 소관임을 모르는 사람도 있을까.
그럴 리가.
대체 우리는 왜 이 모양일까. - 86
- 나는 지나치리만큼 꾸준하게, 가끔은 누구보다 야멸찬 방식으로 스스로를 미워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내 의지나 노력과 무관한 일이었으니까.
내 잘못은 아니었지만 항상 내 잘못이었다.
내 죄는 아니었지만 언제나 내 죄였다.
나는 한 번도 내가 죽기를 바라지 않았으나 늘 내가 죽어 마땅하다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어쩌면, 아니 거의 확신하건대 나는 마지막 숨을 거두는 그날까지도 나 자신과 화해하지 못하리라는 생각이 든다. - 94
- 아마도 나는 세상에 뭔가를 남기고 싶어서 쓰는 것 같은데, 내가 남길 수 있는 게 글뿐이라 쓰는 듯한데, 그것이 나 같은 누군가에게 전해지길 바라는 것 같은데, 그가 나보다 조금이라도 나은 삶을 영위했으면 싶은데...... 그래서인지 내가 쓰는 모든 글이 유서처럼 여겨질 때가 있다. 지금 여기에 쓰는 문장들이 내가 남기는 마지막 편지 같은 것이라고. - 103
- 인간은 왜 그럴까, 생각하다 보면 자연스레 내가 지닌 모순에 대해서도 되짚어보게 된다. 나 역시 내가 왜 그랬는지 설명할 수 없는 경우가 더러 있으니까. 살다 보면 누구나 그런 일을 겪는다는 걸 알게 되니까. - 116
- 엄마는 사십 년 가까이 조각난 천들을 한데 이어붙이며 살아왔다. 하나가 아니었던 것들을 기워 하나의 완성품을 만들어냈다. 그 과정에서 손가락이 바늘에 꿰뚫리곤 했으니 엄마가 지어낸 옷들에 엄마의 피가, 살점이, 영혼이 흩뿌려지지 않았다고 할 수 있을까. 그것들이 엄마의 일부가 아니라고 할 수 있을까. 그래서인지 나는 엄마의 재봉질이 내가 하는 글쓰기와 얼마나 비슷하고 다른지를 그 자리에서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었다. - 186
- 슬픔을 끌어안은 채 살아가야 한다.
누구나 그렇다. - 209
2026. feb.
#어둠뚫기 #박선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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