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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l님의 서재
  • 비세계
  • 변선우
  • 10,800원 (10%600)
  • 2024-11-10
  • : 1,048
온통 흔들리고 재정립되는 시.

의심스럽다가 안쓰럽다가 처연하다가...


- 이토록 깨끗하게 펄럭이는 공간이라니.
구슬을 자아내 우연을 제작하는 순간이라니.
마치 무균실에 입장하는 검은 양이 되어
헐렁한 리듬이 되었다가, 잠들어 버린 밧줄이 되었다가,
빗발치는 종말이 되고 있다.
거울이 이글거리고 반복되는 세계가 있다. - 시인의 말

- 세계를 발견하였어요. 이 말은 세계를 발명하였다는 의미의 다름 아녜요. 나는 세계의 경계에 당도하여, 문을 밀어 열듯, 선을 넘어 입장하였어요. 새하얀 세계, 금방 새카만 세계......, 새하얗기도 하고 새카맣기도 하는 세계가 펼쳐졌어요. 
(...)
사람들은 계속하여 나를 흔들었고......, 나는 자발적으로 곤란하였어요. - 비세계 중

- 세계의 표면을 긁자 부스러기가 발생한다. 너무 많은 세계를 발견해 온 탓인 걸까. 이번에 발견한 세계는 너무도 연약하고 빈곤한 것이다. 애매하고 적요한 것이다. 세계의 부스러기가 눈처럼 떨어지기 시작하면, 예정처럼, 바람이 분다. - 비세계 중

- <개시>
돌멩이를 쥐자 나는 온순해졌다. 미래를 볼 수 있었다. 등을 돌리지 않아도 모의할 수 있었다. 돌멩이를 호주머니에 넣자 이내 냉정해졌다. 구름을 떠올렸다. 구름을 좇아 물가로 갈 수 있었다. 물을 향해 몸을 던지자 모두 사라질 수 있었다. 눈을 뜨니 어떤 연기가 나타나 현실의 틈을 벌리기 시작하였다. 나는 풀어지면서, 연약해지면서, 뜨거워질 수가 있었다. 희멀게질 수가 있었다.
(전문)

- 나는 아름다운 사람이, 제법 괜찮은 사람이 되는 것 같아요. 그러나 아쉽게도 모든 게 연출이에요. 나는 어제도 실패했고 오늘도 실패했으며, 내일도 실패할 예정이거든요. 그르친 일이 많거든요. 엎어진 일이 많아요. 내가 대신하여 엎질러졌어야 하는데, 몸은 늘 뒤늦거든요. 아닌 말로 기분이 앞서거든요. 평생을 이 자세이고 싶어요. 그럼에도 나는 또 일어나야 하고, 백도선 선인장에 물을 주어야 하고, 플라워혼에 밥을 주어야 하고, 대충 끼니를 때우고 설거지와 샤워를 해치워야 해요. 정말...... 생활이란 무엇일까요? 세계는 무엇일까요? - 딱딱한 연결 어지러운 마음 중

- 세상은 뒤집힌 실재인 거지. 실재는 뒤집힌 세상인 거고, 따라서 사건은 빈틈없이 엎치락뒤치락하는 거고. 우리는 모두 어딘가로 흘러든다는 거지...... 앞뒤가 다른 사물은 좀 치사하다는 거야. - 용혈수 중

- 나는 주인공처럼 군다.
그래서 이 삶이, 이 실패가 너무도 분하다.

무엇인가 더 적으려고 하였는데,
목걸이를 구성하던 잿빛 유리구슬처럼,
나는 사방팔방 흩어져 버렸다.
오랫동안 동떨어져 있었다.
양팔 저울이 접시를 의심하는 소리 들려왔을 때,
비로소 안심하였다 - 제정신세계 중

- 바람이 불고, 저기서 철쭉이 짜증 나게 떨어진다. 잡초는 서로 비벼 대며 소음을 만든다. 나는 눈을 질끈 감고, 입술은 동그랗게 말고, 바람의 박자에 맞춰 휘파람을 준비한다. 아, 말아 피우고자 챙겨 둔 백지를 꺼낸다. 그런데 백지에서 난데없는 글이 생겨난다. "나는 주인공처럼 군다. 그래서 이 삶이, 이 실패가 너무도 분하다." - 산문 중

2025. oct.

#비세계 #변선우 #타이피스트시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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