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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l님의 서재
  • 사나운 독립
  • 최지현 외
  • 15,300원 (10%850)
  • 2025-06-16
  • : 8,712
서평강의 저널은 좀 트라우마에 가까웠다.
분노, 좌절, 회한의 복합.

독립이 비자발적인 상태로 이루어지는 것.
정신적으로 절대 해본 적이 없는 상태로
독립이라는 단어에 약간의 수치심도 같이 느껴진다.

부모가 죽음의 문으로 들어서는 전 과정을 지켜보는 일을 다시 한번 겪는 기분이 들기도 했다.
당시 느끼던 온갖 불타오르는 감정들이 불쑥불쑥 찾아들었는데,
그 중 다른 어떤 것보다 무지막지한 슬픔......
무기력, 막막함......

그랬다.
아직도 죽음의 과정에서 미쳐 빠져나오지 못한 것처럼.

- 1928년생 맏딸의
1957년생 맏딸의
1986년생 맏딸.
그게 나다. - 13

- 맑게 흐르는 냇물을 본다.
어제보다 더 선명한 눈으로.
이 냇물은 대를 이어 흘러 내려왔다.
기세 있게 콸콸 흐를 때든
졸졸거리며 간신히 명맥을 유지할 때든
한 번도 멈춘 적은 없었다.
태초부터 존재했을 작은 옹달샘을 상상하며
냇가를 거슬러 올라간다.
조용하게 빛나는 조약돌을 주워 올리며. - 17

- 모녀간의 싸움은 부부간의 싸움보다 슬픈 면이 있었다. 그게 자신의 엄마와 할머니라면 더욱 그러했다. 동시에 어떤 환멸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언젠가 이 악순환을 끊으리라, 이를 악물었다. 남자 없는 세계에서 여자들끼리 지지고 볶는 삶을 끝내리라. - 31

- 무료할 것이라 예단했던 노인의 일상이란 실은 엄청난 감적의 낙폭을 매일같이 견디는 일이 아닐까? 그것이 끝날 때까지. 그런 생각을 하면 나는 몇 번이고 두려워진다. - 51

- 전쟁도 사랑의 시작을 막지는 못했다. 인류는 그렇게 자신의 명맥을 유지해 온 것이다. 딸들에게 엄마와 할머니의 역사는 호기심의 대상, 그 이상의 의미가 있다. 그것은 지근거리에서 목격해 온 동성 인류의 앞선 이야기이면서 태어나는 순간 자신의 일부가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생명과 함께 주어지는 것, 나의 바탕색을 결정하지만 선택할 수도, 개입할 수도 없었던 것. 그렇기에 딸들에게는 그 역사를 알 권리가 있다. - 53

- 세상은 온통 나로 가득하다.
군중 속에서 고요하거나,
침묵 속에서 소란하거니.
나는 언제나 나와, 오직 나와 함께한다. - 108

- 스스로 정련되지 못한 자아는
타인에게 상처를 준다.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공격적으로 존재를 드러내거나,
상처를 피하기 위한 방어 수단으로 거짓된 배려나 사랑을 들먹인다.
괜찮은 사람으로 위장하고 있지만
결국 자신만 위하는 이기적이고 폭력적인 자아일 뿐이다.
이 형편없는 자아들은 널리 흩어져 구석구석 세상을 병들게 하고 타락하게 만든다.
이것이 우리가 세상을 살아갈 때
괴로움을 느낄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 158

- 모든 고통에는 이름이 필요하듯
나의 아픔에도 이름이 필요하다.
느끼는 감정을 표현하지 못하는 건
정말 두려운 일이다. - 194

- 그런데,
눈을 뜨고 보니
역시나
삶은 죽음으로 가득 차 있다.
스러지고, 사라지고, 소멸하고, 보내지는 삶.
죽음의 과정을 지켜본다는 건
무기력의 늪 같은 데로
함께 저벅저벅 걸어 들어가는 느낌이다.
다시는 나갈 수 없고
숨을 쉴 수도 없는 곳으로
지금 들어가고 있다. - 204

- 사라져야 할 때가 되면
언제든 별것도 아닌 촛불처럼 꺼져 버리는 게
인생이었다. - 219

- 보통 사람의 욕구
를 나도 가져도 된다.
그래야
삶이 찬란해진다. - 236

- 죽은 사람의 시간은 이제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산 사람의 시간은 비자발적이고, 연속적으로, 그가 눈치채지 못한 순간에도 흘러가고 있다.
멈춰 버린 시간과 흘러가는 시간의 이 선명한 괴리감이
나를
죽음과 삶,
현실과 비현실을 떠나
어디 제3의 공간쯤에서 살고 있는 것처럼 느끼게 한다. - 255

- 내 불행의 자리에 꼭 들어맞는 행복이란 건 애초에 없었다.
상실은 어떤 것으로도
완벽하게 대체되지 못한다. - 277

- 애도는
있어야 할 무엇이
이제 더 이상 있지 않다는 사실을 맞닥뜨리는 것이다. - 293

- 애도는
죽음을 슬퍼하며 떠나보내는 시간,
삶으로의 회복을 기다리는 시간이 아니었다.
애도는 죽음과 같이 사는 시간이다.
죽음과 삶을 동시에 느끼며
(죽음이 있기에 삶이 있고, 삶이 있기에 비로소 죽음이 있다는 것)
그 모순 속에서
우리는 어떤 것과도 결코 분리될 수 없다는 사실을 배운다.
애도는 잠시 머무는 어둠이 아니라,
이제 믿고 살아가야 할 새로운 진실이다.
나는 계속해서 파헤치고, 조각내고, 부딪치며
죽음으로, 현실로, 삶으로,
그리고 사랑으로 걸어가고 있다. - 313

- 멀리로 가서 좋은가.
원형이 있어 변형도 있으니 참 좋은 일이네.
나도 멀리로 가야지. 원형을 품고서. - 378

2025. aug.

#사나운독립 #최지현 #서평강 #문유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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