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운 나쁜 해의 일기 - J.M. 쿳시
hellas 2025/10/28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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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운 나쁜 해의 일기
- 존 쿳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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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0) - 2009-09-25
: 186
세 층위로 이야기가 나누어 진행된다. 정말로 물리적인 세 층위.. ㅎㅎ
그렇다고 읽는데 까다롭지도 않고, 어떻게 무엇부터 읽어나가도 크게 걸림돌이 되지는 않는.
하나의 상황이 시선의 차로 흐르기 때문.
그러나 개인적으론 원고 부분이 가장 흥미롭고, 두 사람의 이야기는 조금 질린다?는 느낌이 있다.
누가 승자랄 것도 없을, 늙은 남자, 중년 남자, 젊의 여자의 심리를 따라가는 재미가 있다.
인종적, 사회적, 계층적, 젠더적 측면에서의 갈등 서사가, 작가의 인문학적인 시선으로 세탁? 되어 흥미롭게 이어지는 이야기.
- 민주주의는 민주적인 시스템 밖에서의 정치를 허용하지 않는다. 이런 의미에서 민주주의는 전체주의다.
만약 모든 사람들이 완전히 민주주의자라고 주장하는 시대에 당신이 민주주의에 대해 문제를 삼으면, 당신은 현실과의 접촉을 상실할 위험이 있다. 접촉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매 순간, 국가 공무원의 입장에서 국가(민주국가든 혹은 여타의 다른 것이든)와 상대하는 것이 어떤 것일지 스스로에게 환기시켜야 한다. 그런 다음에 스스로에게 물어라. 누가 누구를 섬기는가? 누가 하인이고, 누가 주인인가? - 23
-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에 인문과학을 전공한 별로 똑똑하지 못한 졸업생들은 자기들이 배운 문학 이론과, 강의실 밖에서 쓸모가 있을 듯싶은 분석 도구, 그리고 아무것도 겉으로 보이는 것과 같지 않다고 주장하는 능력이 어떤 자리를 잡게 해 줄지 모른다는 직감을 갖고 밖으로 나왔다. 그런 도구들을 그들의 손에 쥐어 준 것은 우리 시대의 지적 변절(trahison des clercs)이다. "당신은 나한테 말을 가르쳤다. 내가 거기에서 배운 건 욕을 하는 방법이다." - 44
- 정치는 우리를 둘러싸고 있다. 그것은 공기와 같고 공해와 같다. 공해와 싸울 수는 없다. 무시하든 익숙해지든 적응하는 게 최고다. - 46
- 며칠 전, 나는 시벨리우스의 교향곡 5번 연주를 들으러 갔다. 음악이 마지막 마디에 가까워지면서, 나는 악보가 이끌어 내고자 했던 것처럼 정확히 가슴이 부풀어 오르는 걸 경험했다. 나는 거의 한 세기 전에 헬싱키에서 그 교향곡이 처음 연주되었을 때, 청중 속의 핀란드인이 그걸 듣고 어떤 느낌을 받았을지 궁금했다. 자랑스러워했을 것 같았다. 우리 중 하나가 그렇게 음들을 결합할 수 있다는 것이 자랑스러웠을 것 같았다. 그 느낌을 우리가, 우리 인간들이 관타나모를 만들었다는 치욕과 대조해보라. 음악적 창조가 한편에 있다면, 다른 사람들에게 고통과 모욕을 가하는 기계가 다른 편에 있다. 인간이 할 수 있는 최선의 것과 최악의 것. - 56
- 내가 왜 이 이야기를 당신한테 하는 걸까요? 경찰서에서 있었던 일 때문이에요. 경찰서장은 아주 동정적이고 좋은 사람이었죠. 그런데 그가 우리한테 이러더라고요. '당신들, 정말로 이렇게 하고 싶은가요?(그 말은 이런 이야기가 밖으로 나가는 걸 원하느냐는 의미였죠.) 치욕, 인파미아(infamia)라는 것은 풍선껌 같아서 어느 곳이나 닿기만 하면 들러붙죠.'
내가 뭐라고 했는지 알아요? 이렇게 말했어요. '경찰서장님, 지금은 20세기예요. (당시는 아직 20세기였어요.) 20세기에 남자가 여자를 강간하면 그것은 남자의 치욕이에요. - 116
- 고등 동물만이 지루해할 수 있다. 니체의 말이다. 내 생각에 이런 발언은 고등 동물 중 하나인 인간에 대한 찬사로 받아들여야 할 것 같다. 하지만 삐딱한 찬사다. 즉, 이런 말이다. 인간의 마음은 들떠 있다. 그것은 뭔가 할 일이 주어지지 않으면 안달하고 불안해하며 결국 사악하고 분별없는 파괴로까지 치달을 것이다. - 237
2025. jul.
#어느운나쁜해의일기 #JM쿳시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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