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의 미래 - 편혜영
hellas 2025/10/14 1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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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른의 미래
- 편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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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0) - 2025-09-12
: 8,945
낙관 같은 건 전혀 없는 그것이 어른의 미래라고 말하는 것 같아 씁쓸하게 웃게 된다.
그런 점이 무척 편혜영 답다.
짧은 소설 모음집인 건 알고 샀지만 정말 짧다.
금방 후루룩 읽어버릴 수 있을 정도.
건조하게 삶의 불운들이 펼쳐지니 공기마저 바삭 마르는 기분이 들었다.
<신발이 마를 동안> <아는 사람>이 특히 좋았다.
- 세상의 어떤 일은 속수무책으로 닥쳐온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일어날 일은 반드시 일어난다. - 10, 냉장고
- "아까는 친구 따라 수학 학원을 옮겨도 되느냐고 물었어."
아내의 말에 기명 역시 짧은 안정감을 느꼈다. 자신의 기쁨이 한 번도 본 적 없는 아이의 친구 때문이라는 사실이 조금 어색했지만, 기명은 모처럼 찾아온 평온함을 불확실한 두려움으로 바꾸고 싶지 않아서 더는 남자 얘기를 하지 않았다. - 34, 어른의 호의
- 그런 개들만큼이나 인생이 안 풀리는 사람이 있었다. 말하자면 황인수 같은 사람. 실패가 삶을 나아가게 할 때도 있지만 대개의 실패는 삶을 바닥에 처박았다. 황인수가 겪은 일들이 죄다 그런 식이었다. 그러다보니 들개처럼 침을 흘리고 눈을 치켜뜰 일이 많이 생겼다. 실제로 그렇게 하지는 않았다. 아무리 처박힌 삶이라 할지라도 삽질은 가능하기 때문이었다. 진짜 삽질 말이다. - 114, 비닐하우스
- 며칠 뒤 유미에게서 연락이 왔다. 퇴근하고 시간이 있느냐고 묻는 메시지였다. 승주는 자신이 동창이 아니라는 사실을 털어놓았다. 곧이어 유미에게서 이미 알고 있다는 문자 메시지가 도착했다. 유미는 또다른 말도 했다. 동창이 되기는 늦었지만 동창이 아니어서 다행이라는 말.
승주는 그 메시지를 한참 들여다보았다. 누구에게나 차라리 거의 모르는 사람과 어울리는 게 낫다고 여겨지는 시기가 있는 법이었다. 지난 일들이 긍지가 되지 않는 사람들이 그럴 터였다. 그런 점에서 자신 역시 유미가 동창이 아니어서 좋았다. 어쩐지 유미를 알 것 같다는 착각 속에서, 승주는 천천히 답장을 보냈다. - 183, 아는 사람
- 잠을 설친 그녀는 날이 밝자마자 옥상으로 부리나케 올라갔다. 그녀는 화분 앞에 앉아서 어제와 조금씩 달라진 식물들에게 일일이 눈길을 주었다. 전날보다 잎이 살짝 누레졌거나 조금 자랐거나 꽃송이가 벌어진 식물이 위로가 되던 때가 있었다. 사소하지만 꾸준한 변화는 그녀에게 시간이 평화롭게 흐른다는 안도감을 주었다. 자랄 것은 자라고 시들 것은 서서히 시들어갔다. 이제 그녀는 자라고 시들고 열매 맺고 죽는 것이 모두 제각각임을, 무질서가 삶의 유일한 질서임을 알았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운이 나빠서 궂은일을 겪는 게 아니라는 생각. 사람은 그저 운이 좋은 경우에나 겨우 궂은일을 피할 수 있었다. - 216, 모든 고요
2025. oct.
#어른의미래 #편혜영 #짧은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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