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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l님의 서재
  • 그녀를 지키다
  • 장바티스트 앙드레아
  • 19,800원 (10%1,100)
  • 2025-03-20
  • : 17,915
사랑에 대한 대서사시인데....
기대에 못 미치는 이야기다.

계급 차이가 명백한 매력적이고 똑똑한 여자아이와 불구의 신체를 가졌으나 위대한 조각가가 될 남자아이와의 평생에 걸친 동화랄 수 있겠다.

몇 번째 말하게 되는지 모르겠으나 공쿠르상 수상작은 결이 안 맞는다.
늘어지는 세부 묘사가 이유일까...라고 짐작해 보지만 딱히 그것뿐만은 아닌 것 같다.
격변의 세계를 묘사하는데 어울리지 않게 느린 템포의 문장이 걸림돌일까?

일단 아름다운 서사이긴 한데 특이할 만한 신선함이 전혀 없는 클리셰의 향연...
길고 상세하게 서술한 것이 좋은 작품의 조건이 될까?

어쩌면 프랑스어로 읽는다면 좋은 점이 더 보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 정도의 두꺼운 이야기를 끝까지 읽는 데는 크게 무리 없는 쉬운 독서였다.

- 그 시절을 돌이켜 보면 이상하다. 나는 불행하지 않았으니까. 나는 혼자였고, 아무것도, 아무도 없었다. - 42

- 그 지역에 버글대는 명문가들은 지저분한 해안가에서 멀리 떨어진 그곳을 매력적이라고 여겨 예로부터 거기를 영원한 휴식의 장소로 선택해 왔다. 보잘것없는 묘지들과 나란히 늘어선 호화로운 능들은 자신의 거주자들이 누리는 막강한 권력을 찬양했지만, 어쨌든 그 거주자들 역시 살아생전 가졌던 가장 소중한 것을 상실한 뒤였다. 그 누구도 그러한 모순에 개의치 않았다. 죽은 자들은 기만적이다. - 70

- 그 애는 마치 내가 미친 사람이라도 된다는 듯이 내 얼굴을 찬찬히 들여다봤다.
내가 죽은 사람 같아?
지금은 아니지만요.
어쨌든 말도 안 되는 소리. 왜 죽은 사람들을 두려워하지?
어...... 죽은 사람들이니까?
전쟁을 저지르는 사람들이 죽은 사람들이라고 생각해? 길가에 매복하는 사람들이? 너를 강간하고 네게 폭력을 휘두르는 사람들이? 죽은 사람들은 우리 친구들이야. 산 사살들을 두려워하는 게 더 나을걸.
나는 입을 헤벌리고 그 아이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누군가가 이런 식으로 말하는 걸 들어 본 적이 없었다. - 92

- 비올라는 손을 내밀었고 나는 그 손을 잡았다. 그렇게, 관습과 계급의 장벽이 파놓은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심연을 한걸음에 건너뛰면서. 비올라는 손을 내밀었고 나는 그 손을 잡았다. 그 누구도 말한 적 없는 위업이자 말 없는 혁명. 비올라는 손을 내밀었고 나는 그 손을 잡았다. 그리고 바로 그 찰나에 나는 조각가가 되었다. - 103

- 공부는 해야 하고 너의 부모님은 원치 않는다면, 어떻게 날겠다는 거야?
내 부모는 늙었다고. 나이를 말하는 게 아니야. 그들은 다른 세상 사람들이지. 그들은 앞으로 우리는 말을 타듯이 날게 되리라는 것을 이해하지 못해. 여자들은 수염을 달고 남자들은 보석으로 치장하리라는걸. 내 부모의 세계는 죽었어. 넌 좀비를 무서워하지만 네가 무서워해야 할 건 바로 그 세계라고, 그 세계는 죽었는데도 여전히 움직이거든. 누구도 그것을 보고 죽었다고 말하지 않았으니까. 바로 그런 까닭에 그건 위험한 세계야. 그 세계는 저절로 무녀져. - 145

- 드디어 나는 탐나는 존재가 되었다. 사람들은 내게 침을 뱉으며 무시했고, 나는 일거리를 구하기 위해 평생 간청해야만 했다. 그런데 하루 아침에 꼭 소유해야만 하는 작품을 만드는 작가가 되었다. 이 모든 것이 새로운 말을 하나 배웠기 때문이었다. 아니요. 이 세 음절의 말이 갖는 권력은 상식에서 벗어난 것이었다. 내가 거절할수록, 심지어 차갑게 거절할수록, 사람들은 나를 오르시니 가문의 조각가라고 부르기 시작하면서 나의, 즉 오르시니 가문의 조각가가 만드는 작품을 더더욱 원했다. - 336

- 비올라는 이 기념물 혹은 저 기념물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그에 얽힌 역사를 설명했고, 나는 곧 내가 관광객이 가이드를 따라가듯 비올라를 따라가고 있음을 깨달았다. 나는 장서의 힘을 과소평가했지만 사실 장서 덕분에 무지몽매에서 빠져나왔고 심지어 약간의 위안을 누렸었다. 나는 배은망덕했다. 죽도록 취해서는 진정한 삶은 여기, 나를 중심으로 미친 듯이 돌아가는 이 영원의 도시에 있다고 되뇌면서 얼마나 많은 밤 시간을 파티로 흘려보냈던가? 자신의 거처에서 멀리까지 나온 비올라가 새로운 교훈을 내게 줬다. - 진정한 삶은 책 속에 있었다. - 441

2025. aug.

#그녀를지키다 #장바티스트앙드레아 #공쿠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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