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월하게 서글픈 자의식 - 박참새
hellas 2025/09/29 1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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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탁월하게 서글픈 자의식
- 박참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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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0) - 2025-06-20
: 6,548
죽음과 깊은 우울, 자기 비하에 침잠한 시인.
위태롭다... 라는 위험신호를 받기도 하고
나조차도 위태로워진다는 전염의 느낌을 받기도 하고
그러나 이 글로 어느 정도 위태로움이 해소가 되었으면 하는 염려.
다음 시집을 기대하고 있으므로.
- 슬픔에게 언어를 주오. - 윌리엄 셰익스피어, <멕베스>
- 나는 가끔 내 안의 어떤 부품이 완전히 고장 나서,
뭔가를 전혀 할 수 없거나 느낄 수 없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오래도록. 이런 생각을 오래 하면 이어서 또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혹시 내가 잘못 태어났나, 그 흠결이란 것이 너무나도 미세해서 알아차릴 수도 없을 만큼, 그리하여 긴 세월을 조금 부서진 채로 견디다가 끝에 다다라서야 한계를 느낀 나머지 스스로의 모든 것을 점검해야 하는 정도의, 가느다란 결함. - 8
- 나는 슬픈 사람이다. 이유 없이 슬픈 사람이다. 그 어떤 시절도 사람도 내가 슬픈 이유가 될 수는 없었다. 그렇지만 모든 슬픔에 이유가 필요한 것은 아니며 아주 많은 슬픔이 이유 없는 채로 우리 사이를 배회하고 있다. 갈 곳 잃은 슬픔들이 매일매일 산책한다. - 8
- 나는 살아 있는 사람의 일기는 조금...... 징그럽다.
왜냐하면 그가 살아 있기 때문이다. 살아 있으니 그의 일기를 읽는 것보다 그가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보는 게 더 쉬울 테다. 게다가 글을 쓴다는 건 가식적인 일이기도 해서 대부분의 일기인들이 일기에 모든 것을 다 적지 않는다. 그러다 보면 실상의 사람과 일기 안의 사람의 차이가 더욱 심해질 텐데, 그 이격을, 자꾸만 벌어지는 이격을 계속해 확인하면서 다시 깨닫게 되겠지 쟤는 살아 있었던 거야, 안 죽었다고. 그래서 나는 산 사람들은 산 채로 보고 싶고 읽고 싶고 그렇다. - 30
- 필요한 감정이 아니라는 것을 알지만, 내게는 오래되고 낡은 부채감이 있다. 수치심에 가깝다. 그것은 자주 나를 찾아온다.
내가 말을 하지 않을 때.
그러니까, 나 혼자 말하고 있지 않다고 느낄 때
나 홀로 어떤 대열의 맨 뒤로 가 있다는 사실이
나를 부끄럽게 한다. - 36
- 방향을 잃으면 시간이 걸린다. 사람을 잃으면 마음이 걸린다. 하지만 해야 할 말을 잃으면 나는 무엇을 걸어야 할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그리고 이것은 나를 아주 오래 슬프게 한다. - 40
- 우리 모두에겐 뭔가가 있어. 그건 너무나 깊이 내재되어 있어서 삶 동안 발현되지 않기도 하는 것 같다. 그리고 그것은 사람마다 크게 다르지 않고, 사실은 조금씩 엇비슷한 크기의 서글픔이라는 걸, 그렇다는 걸 알아서는 아니고 그냥 조금 그렇게 믿어보기로 했다. - 157
- 언어는 머무르지 않는다. 영원히 떠다닌다. 항해하고 선적된다. 여행하며 옮겨진다. 그리고 기꺼이, 그것을 추적하는 사람들이 있다. 언어를 횡단하는 사람들이 있다. - 186
2025.. j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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