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원하는 것이 늘 이루어지지 않는다 해도 인생이 끝나는 건 아니다. 소원하던 것이 이루어지지
않는 상황에서도 다시 무언가를 바랄 수 있다는 것, 그것이야말로 삶의 축복이다."
본문 121쪽 달밧, 내 영혼의 다이어트(정박미경) 중에서
앞이 막힌 듯이 답답한 지금 이 문장은 나에게 한 줄기 빛과 같다.
어쩌면 나의 'a soul sentence'가 되리라.
오늘같이 뼛속까지 시린 날엔 뜨근한 콩나물국에 밥을 말아 김장 김치를 쭉 찢어서 얹어 먹고 싶다. 코에 땀방울이 송송 맺히고, 입으로 뜨거운 김이 '훅' 나오는 그 음식이 바로 나의 소울푸드일 지도 모른다. 남들이 물으면 바로 이 겨울 콩나물국과 잘 익은 새곰새곰한 김장 김치를 소울푸드로 대답하리라 생각했던 기억이 나다가 문득 이 책 <소울 푸드>에서 황교익씨가 말한 구절이 떠올랐다.
"한국인에게 소울푸드를 물으면 한 10여 가지의 음식 안에서 그 대답이 오갈 것이다. 뒤집어 생각해 볼 것이, 소울푸드라는 개념이 생기면서 자신의 기호와는 상관없이 자신이 속한 집단의 다른 구성원들이 말하는 소울푸드를 차용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것이다. 다 있는데 나만 없으면 왕따처럼 보일 것이니 소울푸드 하나 정도 만들어 항상 준비하는 것은 아닌가 싶은 것이다."
본문 164쪽 바닷가 내가 나는 밤이면(황교익) 중에서
혹시 나도 그런것일까? 남들이 다들 '소울 푸드, 소울 푸드' 하니까 억지로 생각해 낸 것은 아닐까? 그래서 다른 궁리들을 해 보았다. 너무너무 아플 때 가장 먹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 그게 '소울 푸드'일까? (남들은 아프면 입맛이 없어진다는데 결코 그런 기억이 없는 나로서는 아플 때 먹고 싶은 것이 생기는 바람에 민망할 때도 있다.) 아니면 먼 타지에서 여행에 지쳤을 때 와락 생각나는 음식이 그걸까? 사실 먼 나라의 여행을 지치도록 해 본 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다. 다만 힘들 때, 날이 으슬으슬 추울 때, 슬플 때 나는 그게 생각난다.
이 책에서는 스물한 명의 사람들이 자신의 영혼을 울리는 음식을 말한다. 어떤 이는 보살님이 퍼 주시던 담백한 절밥을, 어떤 이는 이탈리아 여행 중 먹게 된 이탈리아 빵죽을 든다. 또 누구는 카레라이스를 누구는 수제비를 말한다. 그들은 작가이기도 하고, 요리 전문가이기도 하고, 가수이기도 하고, 맛집 전문 기자이기도 하다. 그러나 화려한 음식을 자주 접할 것 같은 그들이 풀어내는 음식 얘기는 허탈하게도 쑥을 넣고 끓인 라면이거나 추운 핀란드의 바닷가에서 먹은 라면이거나 주먹밥 (카모메 식당의 사치에가 꼭꼭 눌러 만든 오니기리가 떠오른다. 글쓴이도 그 영화의 장면을 언급하는 걸 보면 주먹밥이란 과연 그런 것인가 보다.) 이다. 혹은 프림을 담뿍 넣은 커피, 혹은 맑은 소주 한 잔이기도 하다. 너무도 소박하고 평범하기 짝이 없는 음식들이 누군가의 영혼을 달래주는 것을 보면서 가장 단순한 것이 진리라는 것을 다시 한 번 생각한다.
오늘은 콩나물을 사 들고 퇴근을 해야할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