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의성을 지휘하라>는 꽤나 훌륭한 책이다. 길거리 지나가면 보이는 핸드폰 판매장 마냥 넘치고 넘쳐나는 성공 신화에 대한 뻔하디 뻔한 방법론적 경영 지침서의 수준과 비교도 안되는 수준의 성찰과 픽사라는 훌륭한 기업의 성공에 대한 통찰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에드 캣멀의 자서전이라고 봐도 무방하지만 사업 경영에 대한 독특한 관념, 어찌 보면 한국 사회와 어울리지 않는 그런 면들을 소개해주는 훌륭한 경영 도서다.
한국인(아니 한국의 경영자 및 위정자들이라고 하자)은 항상 창의성이니 창조니 하지만, 항상 그렇게 되지 못함에 대해서 아쉬워 하고 창의성을 강요 받는 일반 시민들은 스스로 날카로운 비수로 자책하는 쳇바퀴를 굴린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알지도 못한 채, 뜬금 없이 정부가 지원 정책을 마련해서 창조경제를 한다고 하고, 노벨상급 과학자를 매년 수십명씩 나오게 육성한다고 한다.
이 책을 읽어 보면 알겠지만, 창의성을 지휘하는 여러 방법이 있겠지만, 창의성이라는 것은 절대로 한국 식으로 형성되지 안는다는 것이다. 내가 생각한 한국 사회에서 창의성이 발현되지 않는 가장 큰 문제는 단기 성과주의이다. 내가 속했던 조직이나, 신문을 통해서 보는 정부 및 기업들을 보면 어느 곳 하나 장기 성과와 장기 비전에 대해 고민하면서 현재의 부진을 용납하는 곳이 없다. 매번 장기 비전과 같은 속에도 없는 말을 하면서, 미친듯이 단기 성과를 쪼으는 상황이다. 단기 성과를 위한 수 많은 노력들이 장기 비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아무 관심이 없고 당장의 돈만 벌 수 있다면 만사 ok인게 한국의 고질적인 병폐니깐.
얼마전에 삼성전자 임원이 삼성전자 직원들 실력이 부족하다면서, 많이 바꾸어야 나간다고 자서의 목소리를 낸 것이 신문에 보도되었다.
한 마디로 말해서 헛소리다. 사원들의 실력이 부족하고 그들의 창의성이 떨어지는 것이 절대 아니다. 장기를 위해 준비하지 않으면서, 매번 1년 마다 신제품을 출시하고, 얼마의 돈을 벌며, 이윤을 따지는 마당에 어떻게 그런 창의성이 나오겠는가? 당장에 회사에서 재미있는 기획을 해도 가장 먼저 돌아오는 첫 질문은 항상 똑 같다.
"그래서 돈은 어떻게 벌건데?"
소비자 입장에서 혁신적인고 비효율을 줄인 기획이라도 당장에 돈이 안되는 일은 도무지 추진할 수가 없다. 삼성 역시 마찬가지다. 그 기사에서는 소프트웨어 실력이 떨어짐을 얘기하는데, 솔직히 삼성은 하드웨어 중심으로 모든 업무 공정이 돌아가는데, 어떻게 삼성이 안드로이드나 윈도우 같은 창의적인 것들을 만들 수 있겠는가? 당장에 돈이 되는 하드웨어 판매를 위해서 매년 플래그십 스마트폰 하나, 탭 혹은 노트 하나씩 내면서 거기에 맞는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라고 직원들을 맷돌 돌리듯 갈아 넣으면서 혁신적인 소프트웨어 만들어라니.
이를 구조적으로 막는 몇 가지를 알려주자면, 임원들 계약은 1년 단위이다. 1년 안에 성과를 못 내면 당장 모가지가 댕강. 그러니 창의적인 것보다 당장 돈 버는게 급한 것 아닌가. 요즘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넥슨을 보라. 괜히 돈슨이라 하는 것이 아니다. 과거 넥슨 그 외에 한국의 많은 게임 회사들은 꽤나 괜찮은 역량을 갖추었다. 정말 게임 개발회사로서 '게임'에 집중하며 이용자들에게 행복을 줄 수 있는 창의적인 작품들을 만들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그들이 게임을 개발하나? 성과에 매몰되어 어떻게 하면 돈을 벌지에 온 신경을 곤두세우니, 정말 보면서도 놀라울 정도의 과금 구조만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닌가? 과금 구조로만 본다면 세계에서 제일 창의적인 곳이 한국의 게임 회사들이다.
난 단언한다. 성과라는 것이 한국을 망친다고.
비전이나 사회적 올바름에 대한 추구, 가치에 대한 열정이 있으면 언제든지 혁신은 다가올 것이고 이런 혁신이 사회적 부를 크게 증가시킬 것이라고 믿는다. 그런데 한국은 사회적 부를 크게 증가시키고 선순환 구조를 만들기에 관심이 없다. 작은 부를 증가시키기 위해서 악순환만 되풀이 하고 있다.
성과주의가 창의성을 해친다.
나는 책을 읽을 때 작가 자체에 대해서도 꼼꼼하게 따져봐야 한다고 믿는 편이다. 아무리 서정주의 시가 아름답다고 하더라도, 서정주라는 친일파이자 군부 독재에 아첨하면서 개인의 영광을 누렸던 사람의 시는 도무지 아름답게 읽히지 않는 것이니깐.
에드 캣멀이 정말 멋진 픽사를 지휘하고 있는 것은 맞지만, 내 정치적 올바름의 기준에서 애니메이터들의 임금을 동결하는데 카르텔을 형성한 것은 역시 비판해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