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보라> 앞에서 나는 경탄했다. 처음 느꼈던 감동은 시간이 갈수록 선명해졌다. 이 그림은 유럽 미술과 가장 동떨어진 작품으로 꼽힌다. 물론 터너가 그린 다른 그림을 제외하고 말이다. 최근까지도 고전주의 전통에서 성장했던 비평가들이 이런 별난 작품을 기꺼이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던 이유를 잘 알고 있다. 이 그림은 주제가 예외적일 뿐만 아니라, 화면 전체에서 요동치는 구도 역시 유럽 풍경화에서 인정했던 기준을 벗어나 있다. 우리는 액자 안에서 어느 정도 균형이 맞고 안정감이 있는 무엇을 기대한다. 그러나 터너의 <눈보라>에서는 편안 구석이 어디에도 없다. 휘몰아치는 눈밭과 물살은 예측할 수 없을 정도로 요동친다. 눈발과 물살의 힘은 포말의 역방향 운동과 빛의 신비한 줄무늬 때문에 방향을 바꾼다. 이런 움직임을 한참 보고 있으면 불안해지며 피곤해지기까지 한다. 225- P2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