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자연의 변덕은 이제까지 출현한 가장 치명적인 세균을 끌어들인 것으로 만족하지 못했다. 페스트의 충격으로 인해 옛 제국을 다시 통일하려던 유스티니아누스의 꿈이 수렁에 빠져 황폐해진 채 남았다면, 로마 제국 해체의 마지막 단계는 박테리아의 승리로만 표상되지 않았다. 페스트의 충격을 기후의 역사에서 분리해서 측정할 수는 없다. 마찬가지로 로마 제국의 몰락에서 결정적인 요인은 반갑지 않은 새로운 기후 체제인 고대 후기 소빙하기의 도래였다. 페스트와 기후 변화가 다 함께 제국의 심을 소진시킨 것이다. 설명할 수 없는 슬픔과 두려움으로 인해 살아남은 이들은 시간 자체가 종말을 향해 가고 있다는 오싹함을 느꼈다. "세계의 종말은 이제 예견된 사실이 아니라, 스스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452- P4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