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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성님의 서재
  • 바깥은 여름
  • 김애란
  • 13,050원 (10%720)
  • 2017-06-28
  • : 48,125

  김애란 작가가 5년 만에 소설집을 냈다. 『바깥은 여름』. 한국어의 주격조사 ‘은는이가’에서 ‘은/는’과 ‘이/가’는 뜻에 있어 작은 차이가 있다. ‘은/는’은 ‘이/가’와는 달리 주어를 한정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바깥은 여름”이라는 말은 “바깥‘은’ 여름”, 조금 더 강조해서 말하자면 “바깥‘만’ 여름”이라는 어감을 가지고 있다. 동시에 이 말은 여름이 아닌 곳이 있다는 것, 여름인 곳과 여름이 아닌 곳이 분리되어 존재한다는 것을 암시한다. “태국‘은’ 여름이었다.” 앞에는 “한국은 겨울인데”(156)라는 수식이 붙어있다. “볼 안에서는 하얀 눈이 흩날리는데, 구 바깥은 온통 여름일 누군가의 시차를 상상했다.”(182) 소설집의 제목이 나오게 된 문장이다. 이 문장처럼 『바깥의 여름』의 소설들은 ‘누군가의 시차’에 대해 말하고 있다.

  “풍경이, 계절이, 세상이 우리만 빼고 자전하는 듯한”(21) 기분이 드는 누군가가 있다. “매일매일 구체적으로 고통스럽게 감각해야”(242) 하는 시간이 안에 통째로 들어온 누군가이다. 「입동」과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의 화자는 아이와 남편을 잃는다. ‘당신’을 잃은 후의 시간은 읽기 전의 시간과 다르다. 여름과 겨울이 다른 만큼이나 다르다. 아이를 잃은 미진은 사람들이 “자식 잃은 사람도 시식 코너에서 음식을 먹나, 무슨 반찬을 사고 어떤 흥정을 하나 훔쳐본다고 했다.”(23) 남편을 잃은 명지는 모든 사소한 일상에서 “유리벽에 대가리를 박고 죽는 새처럼 번번이 당신의 부재에 부딪혀 바닥으로 떨어졌다.”(228) 상실 이전과 이후 사이에는 “좁힐 수 없는 시차”(229)가 있다.

  시차는 누군가의 내부에도 있지만, 누군가와 다른 이들 사이에도 있다. 처음에는 탄식과 안타까움으로 미진을 위로한 이웃들이 “마치 거대한 불행에 감염되기라도 할 듯 우리를 피하고 수군거렸다.”(36) “많은 이들이 ‘내가 이만큼 울어줬으니 너는 이제 그만 울라’며”(37) 미진을 채찍질한다. 세월호 사건을 연상시키는 이 문장들은 지나온 시간을 되돌아보게 한다. 다른 이들과의 시차에 가로막혀 외로워하는 이들은 필사적으로 위로를 찾고자한다. 음성인식시스템인 시리에게 말을 거는 명지가 그렇다. 시리는 항상 상냥하고 예의바르게 명지의 물음에 답변을 해준다. 그러나 명지는 “시리가 목적지로 가는 법은 말해줘도 거기까지 함께 가주지는 않을 친구처럼 여겨졌다.”(260) 시리는 환상에 불과했다. 명지가 정말 존재하냐고 시리에게 물을 때 시리는 “죄송합니다. 답변해드릴 수 없는 사항입니다.”(260)라고 답할 수밖에 없었다.

  손쉬운 위로는 깨지기 쉽고, 시차를 좁히는 길은 멀다. 그럼에도 시차가 줄어드는 듯한 순간이 있다. 명지는 지은이의 편지를 읽는다. 남편이 구하려다 죽은 아이의 누나로부터 편지가 온 것이다. 명지는 “당신이 누군가의 삶을 구하려 자기 삶을 버린 데 아직 화가 나 있었다.”(266) “아주 잠깐만이라도 우리 생각은 안 했을까.”(266) 그러나 명지는 편지를 읽고 “‘삶’이 ‘죽음’에 뛰어든 게 아니라, ‘삶’이 ‘삶’에 뛰어든 게 아니었을까”(266)하고 묻게 된다. 그녀의 생각을 바꾸게 한 편지의 일부를 직접 옮긴다.

 

 평생 감사드리는 건 당연한 일이고,

 평생 궁금해하면서 살겠습니다.

 그때 권도경 선생님이 우리 지용이의 손을 잡아주신 마음에 대해

 그 생각을 하면 그냥 눈물이 날 뿐,

 저는 그게 뭔지 아직 잘 모르겠거든요.

 

 사모님, 혼자 계시다고 밥 거르지 말고 꼭 챙겨 드세요.

 죄송하고 감사합니다.

 

  너와 나 사이에는 시차가 있고 그것을 쉽게 좁힐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기만이다. 그러나 그것을 좁힐 수 없다며 그저 허무에 빠져버리는 것은 더 큰 기만이다. 김연수 작가의 말처럼 쉽게 위로하지 않는 대신에 쉽게 절망하지 않는 것, 그것이 핵심이다. 잘 모르겠지만 궁금해하는 것, 여름과 겨울 사이의 시차와 그 시차를 만들게 한 것을 궁금해하는 것이 시차를 대하는 옳은 방법이다. 이 방법만이 시차가 사라지는 것 같은 순간을 만들어낼 것이다. 『바깥의 여름』의 소설들은 여러 시차를 보여주며 우리가 어떤 반응을 보여야하는지 묻고 있다.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은 ‘바깥은 여름’이라고 말하는 것, 그래서 왜 바깥은 여름이고 바깥이 아닌 곳은 여름이 아닌지 묻는 것이 아닐까.

 무더위가 계속되고 있다. 바깥은 여름이다. 고온의 급식실에서 조리사들이 쓰러지고 있다는 뉴스기사를 읽었다. 어떤 국회의원이 ‘밥 하는 아줌마’라고 불렀던 이들이다. 그 국회의원은 아이를 공부시키는 학부모의 마음으로 그랬다고 한다. ‘바깥’은 단순히 물리적인 바깥만을 뜻하지 않는다. 나는 에어컨이 틀어져있는 도서관에서 이 글을 썼다. 공부라는 것은, 바깥에 신경 쓰지 않고 이곳에 몰두하는 것이 아니라 바깥과 이곳의 시차를 궁금해하는 것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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