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은 잔인한 달' 누구나 4월이 되면 읊조리지만, 사실 이 말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아는 사람은 많지 않아보입니다. '4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 추억과 욕정을 뒤섞고 잠든 뿌리를 봄비로 깨운다.' 영국의 시인 T.S. 엘리엇의 '황무지' 첫 구절입니다.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 잠든 뿌리를 봄비로 깨우는 4월은, 가사 상태를 원하는 현대인들에게 모든 것을 일깨움으로써, 새로운 삶을 원하지 않는 현대인들에게 새로운 삶을 요구함으로써 잔인한 달로 다가오게 되는 것입니다.
황무지의 발표와 더불어 현대의 시는 원하든, 원하지 않든, T.S.엘리엇의 영향하에 놓이게 되었다고 황동규 교수님은 말씀하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나오던 1997년까지 T.S. 엘리엇(그는 스스로 그렇게 불리기를 원했으므로 '엘리엇'이라고 명명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의 문학에 대한 비평서는 우리나라에 드물게 소개되었습니다. 상업성이 없을 것이 예측되는데도 독일의 현대적 저작인 '로볼트 시리즈'를 번역하여 '로로로 시리즈'로 펴내고 있는 한길사의 용기에 박수를 보냅니다.
이 책은 T.S. 엘리엇의 생애와 작품을 접목시킨 독일인 작가의 용기있는 작품입니다. 그러나 세계적인 영국시인에 대한 독일저자의 문체를 직역한 역자의 딱딱한 문체는 독서에 상당한 부담을 주고 있습니다. 또한 군데 군데 있는 오역 또한 책읽기를 방해합니다.예를 들어 198쪽의 San Juan de la Cruz는 16세기 스페인의 가톨릭 사제이며 시인으로서, 스페인 문학사에서도 소중하게 다루어지는 '십자가의 성 요한'입니다. (가르멜회의 수도자이기 때문에 이런 이름을 가집니다.) 그러나 '십자가의 성 요한' 이라는 공식 명칭 대신 '크루스'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즉 '십자가'란 뜻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것은 역자께서 스페인어를 모르시기 때문에 넘어갈 수 있습니다만, Franz von Assis는 분명 독일어인데도 오역을 하고 계십니다. 그 분 또한 가톨릭 수도자로서 새들과도 대화를 했다는 저 유명한 '프란치스코 성인'입니다. 여기에 쓰인 von은 Herbert von Karajan 처럼 지체 높은 가문의 지위를 나타내는 단어도 되지만(그리고 이러한 경우에는 '카라얀'이라고 성을 부를 수 있습니다만), 독일어의 다른 용법으로서 '~출신'이라는 뜻을 지닙니다. 평생 가난을 목표로 삼았던 수도자가 어찌 자기 이름에 지체 높은 가문을 자랑하는 단어를 넣어서 불리었겠습니까? 단지, 프란치스코 성인의 출생지가 이태리의 '아씨시'인 것을 표현하는 말입니다. 따라서 '아씨시의 프란치스코'라고 번역해야 하는데 '아씨시'로 지명이 인명으로 바뀌고 말았습니다.
- 제가 두 가지 오역에 대해 일일이 꼬집어서 리뷰에 쓰는 까닭은, 같은 내용을 한길사에 편지로 보냈는데, 아무런 답이 없어서 화가 나서 그렇습니다. -
또한 T.S. 엘리엇의 유명한 시들도 문학적 감각이 살아나지 못한 독일어 직역이 되었습니다. 저의 견해로는 아무리 저자가 독일인이라 하더라도, 영문학가의 생애와 작품에 대해 다룬 책이니만큼 영문학자의 감수가 있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만일 T.S. 엘리엇의 '황무지'를 읽기를 원하신다면, 문학적 매력과 상세한 주해가 곁들인 시인 '황동규' 교수님의 번역으로 읽으시기를 권합니다(민음사에서 나왔는데 현재 절판으로 표시되어 있습니다만 곧 다시 나올 것을 희망합니다). 개인적으로 한길사를 신뢰하고 있습니다만, '로로로 시리즈'라는 용기있는 시도 뒤에 있는 한 두 가지의 오류가 보완된다면 한층 더 빛을 발하리라고 생각합니다. 하루빨리 수정본이 나오기를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