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한 권의 명서
justin 2002/04/16 1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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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상 일주일의 사흘은 시골에 내려가 산다. 오디오가 있을 리 없다. 강의실에서 강의실로 낮 동안은 눈코 뜰 사이 없이 바쁘다. 연구실 창밖 바로 눈앞에 다가드는 산 그림자를 희부옇게 저녁 안개가 가릴 무렵이 되어야 비로소 내 시간을 찾는다. 이 때 문득 책상 위에 놓은 트랜지스터 라디오에서 흘러 나오는 귀에 익은 음악. 어떤 값진 오디오 장치가 이때의 감동적인 순간을 만들어 줄 수 있겠는가!' (책에서)
안동림 교수님을 무어라 일컬으면 좋을까요? 음악애호가? 평론가? 시인? 교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교수님께서 '레코드 수집가'나 '레코드 비평가'는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한 때 철학교수로 재직하시면서 '장자'를 향기롭게 번역하신 분이시기도 합니다. 지금은 음반에 대한 책들이 저술, 번역, 편집을 통해 다양하게 쏟아져 나오고 있지만, 몇 년 전 이 책이 3권 짜리로 처음 나왔을 때만 해도 이러한 시도 자체가 무모하게 여겨지리만치 모험에 가까운 일이었으리라 생각합니다.
학생 때 비싼 가격 때문에 사지 못하고 늘 서점에 가서 힐끔힐끔 보고 오는 제가 안스러웠는지 동기들이 돈을 모아 통합본을 선물로 사주었을 때의 감격을 저는 지금도 잊을 수 없습니다. 선물받은 지 몇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이 책을 펴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기 때문에 저는 되도록 제 손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두고 있습니다. 제가 갖고 있는 것은 같은 내용의 구판입니다만 신판이 나왔다니 반가운 마음 금할 수 없습니다.
교수님의 글을 읽으면 하나의 음악 작품이 탄생되기 위하여 작곡가가 어떤 인생의 행로를 거쳐서 어떤 노고를 통해 작곡하였는지, 그리고 그런 작곡가 못지 않게 연주자와 지휘자는 또 얼마마한 공로를 들였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런 것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공들여 녹음된 음반을 이리 찢고 저리 분해하여 날카로운 비평의 칼날을 들이댑니다만(물론 이 작업도 필요한 일이겠으나) 교수님은 하나의 음반을 마치 그분들의 혼이 담겨있듯 소중하게 다룹니다.
한 때는 비평보다 칭찬 일변도의 말씀인 것 같고, 또 고전적인 녹음만을 다루신 것 같아 다른 책도 기웃거려 보았습니다만 다시금 이 책의 향기로 되돌아 오게 되었습니다. 이 책을 읽으면 '아! 음악은 이렇게 듣는 것이구나!'하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렇다고 음악 이야기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인생과 철학, 사람과 삶이 녹아 있습니다.
클래식 음악을 즐겨 듣는 분이라면, 음반 몇 장 값을 아껴서 꼭 읽으시기를 권하고 싶습니다. 또한 반드시 음악이나 음반과 연관되어 있는 것만이 아니라 인생에 대한 자잔한 수필집처럼 두고 두고 읽을 수 있는 책이기도 합니다. 새로운 녹음에 대한 교수님의 감상도 첨부되었으면 하는 욕심이 솟기는 합니다만, 20세기의 베스트 셀러라는 책도 1000년전에 씌어진 단테의 신곡만 못하듯, 고전음악에 대한 고전적인 해석의 향수에 젖어든 교수님의 글은 무엇이 우리의 감성을 풍요롭게 만드는가를 생각하게 합니다.
클래식 음악은 이론적인 공부를 시작하고 나서 듣게 되는 것이 아니라, 음악과 만남으로써 이루어집니다. 클래식 음악을 처음 접하시는 분들은, 입문 서적들이 봇물처럼 쏟아져 나오고 있지만, 체계적인 공부에 식상하시다면 맑은 감성의 소유자이신 안동림 교수님의 이 책을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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