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敵은 아직 오지 않습니다 / 이순신 外傳>
은승완 지음, 이리(리챔 브랜드) 펴냄 / 2012·9 초판 발행
1975년쯤, 20대 초반이었던 당시에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나는 '니코스 카잔차키스' 장편소설 <최후의 유혹>을 읽고 소설 속에 묘사된 신神이 아닌 또 다른 인간人間 예수의 적나라한 모습에 큰 충격을 받은 적이 있었다.
[은승완] 장편소설 <적은 아직 오지 않습니다>는 작가의 말에서 작가가 밝혔듯이 '이순신 생존설'을 모티브로 한 영웅 이순신이 아닌 사회적 시선의 뒤집기로 본 변주된 '文人' 이순신에 대한 색다른 소설적 기록이다.
소설의 도입부인 프롤로그는 이순신의 가장된 죽음과 생존한 이순신 일행의 무인도를 향한 탈출기를 그리고 있고,
초반부는 왜란이 끝난 지 10년 후인 선조 사십일 년에 남도 지방에서 일어난 민란의 주모자인 하급 무관 출신인 '성복'과 귀화 왜인 '나여문'의 이름을 차용하여 그들을 생존 이순신의 호위무사와 일본의 정보 수집 첩자로서의 활약상과 전쟁시 가까이 두었던 '여진'이라는 여종과 동명이인인 또 다른 '여진'과의 만남과 합류 과정을 담고 있으며,
중반부에는 꿈자리가 뒤숭숭하여 잠을 이루지 못하는 장군을 위해서 전쟁 중 죽은 원혼들을 달래는 씻김굿을 하는 중 임금의 암행어사 최정이 굿을 구경하는 과정에서 소문으로 나돌고 있는 생존 이순신과의 만남과 전라좌수영과 연계된 이순신 지원에 대한 좌수사 치죄를 통하여 생존 이순신을 확인하는 과정을 담고 있으며,
종반부에는 생존 이순신이 기거하는 무인도에 해적 떼의 출몰, 역성혁명에 대한 갈등과 관군의 토벌 과정 그리고 호위무사 '성복'으로 하여금 자신을 베게 함으로 생존 이순신의 역할이 종료되었음을 담고 있는 것으로 소설은 끝을 맺는다.
나는 이 소설을 통해서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불멸의 성웅 이순신' 프레임에서 벗어나 또 다른 인간적인 이순신에 대한 작가의 상상력을 접하게 됨으로써 지금까지 세상을 너무 편협적으로 보던 시각에서 벗어나 좀 더 안목을 확장하는 노력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나는 이 소설이 일방적인 영웅 논리를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것을 지양하고 극복하는데 크게 기여했다고 본다.
왜냐하면,
첫째로 이순신도 그 이름을 빼면 일개 무기력한 식자 중에 한 명일 수도 있음을 묘사하였기 때문이고,
둘째로 나라를 구하는 일은 생존 이순신이 왜군의 재침입을 대비하여 생존하고 있는 것 같이 누구라도(민란을 통해서라도) 꿈꿀 수 있기 때문이며
셋째로 생존 이순신이 영웅 논리에 사로잡혀 역성혁명을 부추기는 무리들을 꾸짖고 오히려 함께 농사를 지어서 자급자족하는 삶을 추구하는 장면을 묘사함으로써 모두가 평등한 사회가 이루어지기를 염원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이 작품이 한 쪽으로 치우친 이순신에 대한 시각을 독자들에게 폭넓게 이해하는데 큰 도움을 주었기 때문에 좋은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섬이라는 공간의 제약기 있기는 하겠지만 이순신이 좀 더 적극적으로 삶에 참여하는 모습이 묘사되지 못한 점이 아쉽다. 영웅 이순신이 아닌 인간 이순신을 이해해 보고자 하는 분들에게 강권하고 싶은 작품이며
이 작품을 읽고 제2, 제3의 '이순신 외전'이 나올 수 있기를 기대한다.
[내 마음속에 간직하고 싶은 한 문장]
"나는 이제 통제사도 뭣도 아니다. 내게 저들이 뭔가를 바랜다면 그것이야말로 미망이 아니겠느냐." -208쪽-
(200자 원고지:8.35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