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beyond description(형언할 수 없는)'이라는 숙어와 ‘read between the lines(행간을 읽다)’라는 숙어를 애지중지한다. 'beyond description'의 상황을 독자로 하여금 'read between the lines'하도록 만드는 것, 문자로 표현할 수 없는 언어를 행간의 여백에 꼭꼭 눌러담는 법이야말로 글쓰기가 아닐까. 윌리엄 진서의 글쓰기 생각쓰기On Writing well는 그런 면에서 ‘어떻게 글을 쓸 것인가’라는 실천의 문제에 앞서 ‘어떻게 행간에서 방황할 것인가’라는 ‘태도’의 문제를 제기한다.
글쓰기의 중요성과 유용성을 저마다 소리 높여 떠드는 분위기 속에서 정작 실종되어가는 것은 바로 글쓰기의 ‘과정’이다. 글쓰기의 결과(논술 시험 합격, 취직 시험 합격을 비롯한 각종 사회적 미션 완수)를 강제하는 분위기에 떠밀려 정작 글쓰기의 태도는 ‘가르칠 수 없는 영역’으로 밀려나버렸다. 그러나 1976년에 출간되어 공전의 스테디셀러로 남은 글쓰기 생각쓰기의 저자는 그렇게 ‘가르칠 수도 배울 수도 없는 영역’으로 밀려나버린 글쓰기의 태도야말로 자신이 수십 년간 언론인이자 작가이자 교육자의 자리에서 독자와 학생들을 만나는 이유였음을 강조한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글을 전혀 쓰지 않는 글쓰기 수업’의 묘미를 터득한다. 각종 실용문의 ‘완성’을 목표로 하며 성마르게 글쓰기에 달려드는 학생들에게, 그는 글을 쓰기에 앞서 무엇을 왜 쓰고 싶고 어떻게 쓸 것인지에 대해 말해달라고 주문한다. 글쓰기라는 본 게임에 앞서 우선 글쓰기에 대한 글쓰기를 해보라는 것이다. 컴퓨터 화면을 보며 자판을 두들기는 글쓰기에 익숙해져버린 현대인은 점점 더 ‘낙서의 기쁨’을 잃어간다. 이 책을 읽다보면, 낙서야말로, 세련되게 다듬어지지 않는 야생의 생각을 거칠게 메모하는 행위야말로 글쓰기의 출발점임을 환기하게 된다.
글쓰기는 생짜로 없는 것을 창조해내는 것이 아니라 이미 마음속에 저장되어 있는 비언어적 정보를 언어적 기호로 번역하는 행위다. 윌리엄 진서는 이 언어적 기호로서의 글쓰기의 완성을 향해 급행열차를 타기보다는, 아직 언어화되지 않은 자신의 비언어적 정보를 차분히 투시하라고 속삭이는 것 같다. 말할 수 없는 말들의 아우성을 글이라는 매체로 번역하는 것이 곧 글쓰기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글쓰기의 핵심은 수사학적 세련미가 아니라 독자에게 투명하게 까발릴 수 없는, 오직 자기 자신이라는 1차독자에게만 노출된 ‘글쓰기 이전’의 상태를 어떻게 견디느냐에 달린 것 같다.
글쓰기의 묘미는 글쓰기라는 본 게임에 있는 것이 아니라 글쓰기 이전의 낙서와 브레인스토밍에 있다는 것, 나아가 우리가 가장 소홀히 하는 퇴고와 교정교열의 과정이야말로 글쓰기의 은밀한 기쁨이자 치명적 뇌관이라는 것을, 우리는 이 책을 통해 기쁘게 재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