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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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도기적 인간
집에서 쉬는 날
인간의과도기  2020/12/31 13:02

오늘은 집에서 쉰다. 같은 방에 있는 두 사람은 아직 잔다. 배우자는 커피를 늦게 마셔서, 어린이는 어린이집을 안 가니 평소대로 늦게(자정을 넘겨) 잠들어서. 곧 깰지도 모르니 글은 짧게 쓰고, 다가오는 새해를 비대면으로 맞이하자. (그전에도 딱히 해돋이 보러 가지는 않았었지만)

    

 

오늘은 집에서 쉰다. 출근을 안 했다는 이야기다. 취준생일 때는 ‘나름 자리를 잡은’ 직장인들이 틈만 나면 출근하기 싫다느니 퇴사하겠다느니 (요새 버전으로는 ‘퇴사하고 유튜브를 하겠다느니’) 하는 말들이 ‘우는 소리’로 들렸었다. 어리석은 생각이었음을 인정한다. 그러나 ‘직장인인 지금의 나’가 하는 반성의 도가 지나쳐 지나가는 취준생을(혹은 과거의 나를) 붙잡고 “느그들 다 틀렸어. 늬들이 직장생활의 고단함을 알아? ‘사회생활’을 알아?”라고 말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 말을 하는 순간, 축하합니다, 당신은 꼰대행 특급열차에 올라타셨습니다.

    

 

자신의 입장과 처지를 중심으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것은 인간의 한계다. 그러나 동시에 인간은 자기중심적 습성의 한계를 인식할 줄 아는 동물이므로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자 노력할 수도 있다. 코로나19는 내 짧은 식견으로 이해하지 못했던 한국 사회의 수많은 사각지대를 비추었다. 단적으로, ‘범죄자에게도 왜 인권이 필요하냐’는 ‘평범한’ 사람들의 질문은 적어도 ‘서울동부구치소 코로나19 집단확진’이라는 사태를 맞이한 이후에는 줄어들지도 모른다. (앞의 질문이 ‘인권’의 개념조차 제대로 세우지 않은 질문이라는 것은 차치해 두자) 그러나 비관적인 전망으로는, 그 사각지대는 단지 비추어지기만 했을 뿐일지도 모른다. 도처에 가려져 있던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는 앞으로도 상당히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고, 목적지까지 가는 동안 많은 이들의 고통은 끝나지 않을 것이다. 나의 일도 분명 코로나19를 맞아 힘들어진 측면이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힘듦’에만 매몰되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아마 위 문단의 마지막 문장도, 오늘 집에서 쉬고 있기 때문에 떠올릴 수 있는 생각일지도.

    

 

오늘은 집에서 쉰다. 글을 쓸 수 있는, 흔치 않은 틈새 시간이다. 부업으로라도 글을 써서 소득을 마련하는 일을 하고 있지 않기에, 형식상으로는 나에게 마감을 ‘독촉’하는 사람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을 쓰고 싶은 마음은 있어서, 알라딘 서재를 (가끔이나마) 기웃거리고, 투고를 받는 독립문예지의 투고 마감 일정을 체크해 둔다.

 

그러나 생활인으로서의 내가 가진 가장 큰 문제는 모든 일을 ‘일단 미룬다’는 것이다. 미루다 보면, 회사에서의 일은 (사장님이 보고 계시니) 어떻게든 끝내 놓지만, 안 한다고 해서 심각한 불이익으로 이어지지 않는 일은 자연스레 우선순위에서 제쳐 두다가, 결국 하지 않는다. (대학교에서 선배들이 ‘구전’해준 노래도 막 생각이 나고 그런다. ‘오늘의 할 일은 내일로 미루고, 내일의 할 일은 하지 않는다 / 노나 공부하나 마찬가지다’라고 했지... 느껴지는가? 호시절을 보내는 대학생의 패기가?)

 

사실 이 글을 쓰는 이유도, 오늘 마감인 투고 일정을 머릿속으로는 몇 주 전부터 계속 생각해 왔으나 결국 한 자도 못 썼기 때문이다.

    

 

 

언젠가 시은 이은규 씨를 인터뷰한 적 있습니다. 그가 그러더군요.

“내가 시를 써도 되는가, 쓸 수 있는가 고민했다. 그러다 질문을 바꾸어보았다. 내가 시를 쓰지 않고 살 수 있는가. 답은 ‘살 수 없다’였다. 그래서 쓴다.”

 

「숨바에서 온 편지」, 『마감 일기』 중

 

 

 

   

이 부분을 읽고 나서야 나는 스스로에게 솔직해질 수 있었다. 지금 당장 쓰지 않아도 살 수는 있다. 그렇다면 적어도 시에 있어서는 ‘쓰지 않는 사람’ 아닌가? 대가 없이, 시로써만 나타날 수 있는 말을 고민하는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쓰는 사람’의 동료인 체하기에는, 염치가 없지 않나?

    

 

2020년에는 58권을 읽었다. 에세이와 만화가 올 한 해 읽은 책의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했다. 전자책으로 읽은 것은 절반 이상이다. 시집은 읽은 것이 없다. 적어도 ‘시’를 쓰기 위해서라면, 2021년에는 올해보다 더 부지런히 동시대 시를 찾아 읽고 감응해야겠다.

    

 

여기까지 쓰는 중에 거짓말같이 같은 방에 있던 두 사람이 일어났다. 미룬다고 좋은 글이 되는 것도 아니고, 이 글은 ‘오늘’ 써야 의미가 있는 것이니, 여기까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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