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차오름을 응원한다
법은 아직 일반인에게는 멀기만 하고, 때로는 막연히 두렵게 느껴지는 대상이다. 그러나 우리의 개인적, 사회적 생활관계는 대부분 법에 의해 규율되고 있고 법이 우리 생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점점 커져가고 있다. 그래서인지 법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도 늘어나고, 일반인의 법적 상식도 증가하고 있다. 문유석 판사의 작품 <미스 함무라비>는 이런 시대에 우리 모두가 읽어봐야 할 책이다. 그것은 이 책이 단지 법적 상식을 쉽게 전달해 준다거나 법원의 실정을 자세히 들여다보게 해주기 때문이 아니라, 이야기를 통해 우리가 법과 사회에 대해 가져야 할 자세를 제시해 주기 때문이다. 나아가 우린 이런 자세를 통해 세상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을 얻을 수도 있으리라.
보통 우린 소박하게 ‘법’이라는 것은 곧 정의를 실현하기 위한 것이라 생각하며, 실제 현실 재판에서 발생하는 불합리하고 부당하기까지 한 결과들에 대해 사법제도 전반의 부패를 들먹이며 비판을 늘어놓기 일쑤다. 이제 갓 판사가 된 박차오름은 이런 비판에서 벗어나 정의를 실현하겠다는 일념으로 가득 차있다. 그녀는 조금이라도 부당한 것이 있으면 참지 못하고 화를 내며, 판사가 정의의 화신이라도 되는 것처럼 행동한다. 물론 박차오름의 이런 신념에는 순수하고 이상주의적인 젊은이의 열정이 자리하고 있으며, 사람들의 아픔에 대한 깊은 연민이 이면에 놓여 있다.
그러나 점점 사건들을 다루어 가며, 일도양단적으로 모든 것이 판단되는 것은 아님을 스스로의 경험과, 동료인 임 판사와 경험 많은 한 부장 등에게서 배우게 된다. 자신의 성장과정에서 얻은 트라우마 때문에 판사가 되었는데, 어느새 ‘복수를 하고 싶어졌다(p.193)’고 고백하기도 하고, 제자와 성관계를 가진 대학교수에 대해 유죄판결을 내렸다가, 후에 그가 자살을 시도하자 자신의 결정을 후회하고 사직서를 내기도 한다(p.326). 이러한 경험들을 통해 박차오름은 점차 훌륭한 판사로 성장해가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이야기들을 통해 작가는 법과 법제도의 운영 모두 불완전한 인간의 손에 달린 일이라는 사실을 구체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의 근저에는 중요한 메시지가 있다. 나는 이것이 등장인물의 개인사를 넘어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이라고 생각한다. 법률이라는 것도 어떤 선험적으로 주어진 것이라기보다는 인간이 만든 것이며, 재판도 불완전한 인간들이 관여하여 이루어진다. 법률이 항상 정의를 실현하는 도구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법은 그저 합리적인 규칙일 경우가 많고, 때로는 그저 규칙일 뿐이다. 재판의 과정에서도 판사의 마음에 수많은 인간적 요소가 어떤 식으로든 개입하게 되며(그렇기 때문에 244쪽 이하에 서술된 ‘전관예우’의 문제도 발생한다), 최대한 공명정대하게 내린 판결도 이후에 상소심에서 얼마든지 다른 결론이 나올 수 있다.
이 모든 문제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절망하지 않고 정의를 실현하려 끊임없이 노력하며, 후세들에게 올바른 길을 제시하려 노력한다. 바로 여기에 우리 인간에 대한 깊은 신뢰가 있다. 사법제도를 계속하여 유지하고 발전시켜야 하는 사명에는 우리 인간에 대한 신뢰가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역설적으로 불완전한 인간이기에 오히려 더 많은 신뢰가 필요하다고도 말할 수 있다. 박차오름과 같이 끊임없이 고민하며 노력하는 인간의 고민과 노력을 우린 결코 과소평가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런 단계에서 인간의 자유의지가 그 가치를 발한다. 자유의지에 의하여 올바른 길을 선택할 수 있을 때, 비로소 그 올바름은 진정 의미있는 것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강요되거나 기계적인 행동은 그것이 외관상 올바른 행동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내적으로는 죽은 것이다. 불완전하게만 보일 수 있는 인간의 성질, 자유의지와 오류가능성이 가치가 비로소 존재할 수 있는 조건으로서 기능하게 된다.
하나만 첨언하자. 그 자유가 올바른 방향으로 행사되기 위해서는 계몽과 교육의 역할이 아주 중요하다. 예를 들어 저자가 강조하듯 ‘권리 위에 잠자지 말라’라는 언명은 널리 알려져야 한다. 우리는 아직도 겸양의 미덕을 발휘해야 한다는 관념이 많이 있어서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는 것을 좋지 못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스스로의 권리를 지키고 그에 부수하는 의무를 준수하는 것은 사적인 차원을 넘어 전체 법질서의 유지라는 차원에서도 큰 의미가 있다. 권리 위에 잠자는 자는 보호받지 못하며, 법적 의식이 부재한 곳에서 정의는 찾기 어려워진다. 그러니 ‘권리 위에 잠자지 말라[고 외치는 박차오름과 같은 이들이 더욱 소중한 것이다. 그녀를 응원한다. 그리고 법의식을 지니고 열심히 살아가는 모든 독자들에게도 응원의 메시지를 전하고 싶다.
잠자지 말고 깨어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