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답이 없다.
답이 있어서 그것을 찾는 것이 교육이라고 알고 지내왔던 시절이 있었다. 정답은 있다. 그것을 찾기만 하면 된다. 그것도 실수 없이. 시간 안에. 이것이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교육 방식이었다.
하지만 '교육'에 답이 있을까? 있는 답을 찾는 것이 아니라 답을 스스로 만들어가게 하는 것, 따라서 답은 하나가 아니라 여럿일 수 있음을 깨닫게 해주는 것이 교육 아니었을까?
답이 여럿이 있다. 복수 정답? 아니다. 복수 정답이라고 해도 그것은 이미 정해진 답을 찾는 과정일 뿐이다. 복수 정답이라는 말이 아니라 정해져 있지 않은 답을 만들도록 해야 하는데, 지금 우리나라 교육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수능을 없애고 자율적으로 학생을 뽑는 대학? 상상하기 힘들다. 공정이라는 벽이 가로막고 있다. 그렇다면 서술형 출제를 하자? 이것 역시 공정이라는 벽에 막힌다. 그 채점이 공정하냐고 하면 문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학교에서, 초중고에서부터 대학교까지 교육은 늘 정답을 찾는 과정이었다. 답이 있다는 가정에서 비롯한 교육. 그 답을 잘 찾는 사람이 우수한 학생이 되는 현실.
이런 현실에서 교육에 관한 다른 많은 것들이 감춰지거나 억압된다. 오로지 답 찾기. 답을 잘 찾아 높은 점수 기록하기. 이것이 교육의 목표가 된 듯하다. 그러니 사교육이 기승을 부리지. 왜냐? 모두가 죄수의 딜레마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나만 학원에 다니지 않으면 뒤처질 것 같다는 느낌. 그래서 모두들 사교육으로 내몰린다. 단지 사교육만일까? 아니, 공교육을 한다는 학교도 마찬가지다. 성적, 성적, 대학 진학... 이것이 학교를 평가하는 기준이 된다.
공통의 기준이 있고, 여기에 도달하느냐 마느냐로 학교를 평가하면, 학교의 다양성은 사라질 수밖에 없다.
학업이라는 면에서 이렇게 획일화를 추구하고 있는데, 교육이 성적만을 획일화할까? 아니, 학생이라는 특정 시기에 거의 모든 사람이 거쳐야 하는 과정에서 많은 것을 포기하게 만들고 있지 않은가.
학생이라는 시기에 반드시 도달해야 하는 기준이 있다는 듯이, 그 기준에 맞지 않는 것은 미뤄두거나 없는 것으로 해야 한다는 압박이 있지 않은가.
그것이 무엇일까? 다양하다. 너무도 많다. 그 많은 것들 중에 각 소설가가 자신이 생각하는 것을 소재로, 주제로 삼아서 소설을 썼다. 그리고 한 권의 소설집으로 엮어냈다.
성적도 있고, 교우관계도 있고, 사교육도 있고, 가족 간의 관계도 있고, 무어라 하나로 정리할 수 없는 수많은 교육에 관련된 일들. 그러한 일들이 이 소설집에 잘 나타나 있다.
이 소설집에서 제기하고 있는 문제들이 지금도 진행 중이라는 것이 더욱 안타까운데, 얽히고 설켜 도무지 해결의 실마리를 잡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 우리나라 교육 문제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든다.
여전히 대학입시라는 것에 목 매다는 학생들, 여기에 특정 대학에 모든 것을 거는 입시 과정, 그러한 과정 속에서 포기해야 하는 다른 많은 것들.
관계도 관계지만 공부를 잘한다는 말을 성적이 좋다는 말과 같은 뜻으로만 여기게 되는 풍조가 사라지지 않는 것도 문제다.
짧은 소설들이 모여 있는데, 그래서 읽기에 편한데, 읽은 다음에 뒷맛이 개운하지는 않다.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음에... 소설 속 인물들의 고민이 지속되고 있음에...
인공지능 시대를 앞두고도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교육 문제들, 이 소설집을 통해 만나보자. 그리고 그것들이 지속되지 않는 사회를 꿈꾸도록 하자.
다른 소설들도 생각을 많이 하게 하지만 서윤빈이 쓴 '소나기'가 섬뜩하게 다가왔다. 성적을 내기 위해 늘 고1에 머무를 수밖에 없는 아이. 우리가 그렇게 만들고 있지 않은지... 오로지 성적이 제일이라는 것을 강조하면서, 그런 세상을 만들어온 것은 아닌지...
어쩌면 아이들이 다른 학년으로 진학을 해도 그들이 발전할 수 있도록 한 것이 아니라, 성적이라는 쳇바퀴 속에서 계속 같은 곳을 달리게 한 것은 아닌지. 하, 이 소설 속 윤이와 같은 아이가 나오지 않도록 해야 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