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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담서림(道談書林)
  • 장애 건축
  • 데이비드 기슨
  • 18,900원 (10%1,050)
  • 2026-06-05
  • : 2,100

장애인을 위한 건축이 아니다. 그렇게 생각하기 쉬운데, 장애인을 위한 건축은 주로 장애인의 접근성을 중심으로 하는 건축이라고 말할 수 있다면, 저자가 말하는 장애 건축은 건축에서 장애를 배제해서는 안 된다는 것. 즉 접근성의 문제를 넘어선다고 말한다.


'<장애 건축>은 건축, 조경, 도시 계획이 인간의 손상 개념, 그리고 장애인의 경험과 맺는 관계들의 역사에 대한 탐구'(12쪽)라고 하면서, '궁극적으로 <장애 건축>은 우리가 장애인으로서 건축물과 도시의 역사, 이들 공간의 재설계 가능성, 그리고 미래의 건축을 만들어 나가는 일과 맺을 또 다른 관계의 방식을 제안'(13쪽)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러니 장애인을 위한 건축에서 어떻게 하면 장애인도 소외되지 않고 건축에 접근할 수 있을까를 고민한다면, 장애 건축은 그것을 넘어서야 한다고 한다. 그것도 장애를 감추거나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장애를 그대로 받아들이고 형상화해야 한다는 것.


시작부분에서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를 이야기하는 장면에서부터 충격이었다. 아크로폴리스. 파르테논 신전, 세계적인 건축 아닌가. 이곳에 장애인도 관람할 수 있도록 엘리베이터를 설치했다고 하는데, 저자는 그것이 문제가 아니라고 한다.


아크로폴리스의 역사를 살펴보면 이 최근에 파르테논 신전까지 오르는 길은 이 신전에 이르는 과정에서 신성함을 느끼도록 했다고 하는데, 걸어서 올라가면서 느낄 수 있도록 잘 설계한 길이라고, 하지만 저자는 이것으로는 놓치는 것이 있다고 한다.


그것은 바로 아크로폴리스가 안고 있는 역사, 거기에 과거에는 장애인들도 파르테논 신전까지 갈 수 있는 길이 있었다는 것. 이런 것들이 개발의 역사에서 사라지고, 지금 장애인을 위한 건축에서는 그러한 역사를 알게 하지 못한다고... 장애 건축은 바로 이러한 역사를 배제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읽으면서 생각해보니 파르테논 신전이다. 신전의 역할이 무엇인가? 기원하러 가는 곳 아닌가. 기원을 한다? 무언가를 기원해야 하는 사람들, 약자 아닌가. 물론 이 신전에 강자들도 갔겠지만, 더 많은 약자들이 무언가를 기원하기 위해서 가지 않았을까. 여기에는 장애인들이 분명 있었을 테니..


당시에도 장애인들이 신전에 가서 빌 수 있도록 분명 길을 내었을 것이다. 그러한 길이 있었음을 저자가 보여주고 있는데, 성당도 마찬가지, 성당에도 장애인들이 분명 갔을 테고, 그러니 그들이 다닐 수 있는 길이 있었을 테니...


단지 접근성만이 아니라 그 건축의 목표에 맞는 형태로 만들어졌음을 생각하면 어찌보면 장애인이 다닐 수 있는 길이 있었음은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그것을 역사 속으로 묻어버리고 말았으니. 이 책을 읽으면서 그 점을 다시 생각하게 됐고.


또한 건축에서 인간에 빗대어 표현하는 것들이 바로 정상/장애의 이분법을 만들어내고 있으며,그러한 이분법에서는 장애인을 위한 접근성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고 한다.


저자는 이렇게 장애 건축은 장애를 숨기거나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적극적으로 드러내는 것이라고...'장애를 보존-보전하고 도시화하고, 형상화하고, 구축하는 노력이 결국 장애 건축 그리고 향후 장애의 실천을 촉진한다'(209쪽)고 하면서 1차 세계대전 이후 오스트리아 빈에서 일어났던 빈 정착민 운동을 예로 들고 있다.


상이군인을 비롯한 '빈의 전쟁 생존자들은 ... 자선의 대상인 불우한 국민으로 인식되기를 거부한 채 건축 공간을 생산하고 재상상하는 권리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198쪽)고, 그들이 자신들이 살 집을 스스로 짓고 공동체를 구성해 자립해가는 과정, 그리고 그것을 정부가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을 보여줌으로써 <장애 건축>의 한 예를 보여준다.


이렇게 저자는 <장애 건축>을 통해서 장애인을 '위한' 건축이 아니라 장애와 함께하는 건축임을, 이러한 <장애 건축>은 사회를 바꾸어가는 일임을 보여주고 있다.


<장애 건축>에서 쓰이는 용어가 '장애의 시좌 perspective of disability라는 말인데, 이 말에서 '시좌'는 사물과 사회를 보는 시점이라고 한다. 즉 장애로 사물과 사회를 보고 사회에 참여해야 한다는 말.


이는 정상/장애의 관점을 버리고, 오히려 장애의 시점에서 사회를 바라보고 미래를 만들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장애인의 접근성을 중심으로 하는 건축이 어쩌면 시혜로서 장애인들을 동등한 주체로 대하지 않는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한다.


그런데 저자의 이런 관점에 동의하면서도 아직 장애인의 접근성조차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건축이 넘쳐나는 사회에서 살아가는데, 저자 역시 장애인의 접근성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이는 기본으로 여기고 여기서 더 나아가야 한다고 하니... 


장애인의 접근성조차 힘든 우리나라 곳곳의 건축들을 보면서, 갈 길이 너무 멀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장애 건축>은 커녕 <장애인을 위한 건축>도 제대로 못하고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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