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을 받아놓고 천천히 읽는다. 마치 빨리 읽으면 책하고 맞지 않는다는 듯이.
근본으로 돌아가자. 이 빨리빨리의 세상에서 조금은 느리게 살아도 되고, 눈 앞에서 성과를 내야 하는 세상에서 내가 보지 못하더라도 좋아지는 세상을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런 세상을 추구하는 책인데, 후다닥 읽어버리면, 정말, 이 책을 잘 읽는 걸까 하는 생각.
꼼꼼하게 읽어야 하지만, 천성이 그렇지 못해 그냥 천천히 그러나 꼼꼼하지는 않게 읽는다. 어떤 글에서는 아, 이건 생각 못했네... 하는 내용을 발견하고,(이헌석, '핵산업은 과연 황글알을 낳는 거위일까 - 산업으로서의 원자력을 묻는다'에 이런 내용이 있다. '한수원의 2025년 말 기준 연결감사보고서에 따르면, 해외사업 부문공사손실충당부채는 1조 4,346억 원에 달한다') 이런, 이런 사실이 왜 제대로 알려지지 않을까 ?
원자력 발전소 수출에 성공했다고, 막대한 수익을 창출한다고 자랑스레 떠벌렸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해외사업에서 오히려 막대한 손실을 보고 있다고?
여기에 '국내 재생에너지산업은 핵산업에 비해 수출액이 10배 정도 큰 산업이다.'(이헌석, '핵산업은 과연 황글알을 낳는 거위일까 - 산업으로서의 원자력을 묻는다'에서. 26쪽)고 하는데, 정부가 바뀐 지금도 여전히 핵발전소를 추가 건설하겠다고 하고 있으니...
여기에 노후 원자력발전소를 가동 중지시키지 않고 수명 연장을 허가함으로써 계속 가동하도록 한다고 하는데, 그럼 그 비용은 어떻게 되지? 이런 것 저런 것 다 따지면 원자력 발전 수출과 국내 건설이 다르다고 해도, 그다지 다르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안전성 면에서는, 또 폐기물 처리에 관해 들어가는 비용에 관해서는...
이런 내용에다 '용인에 들어설 반도체 산업단지로 인해 원전 15개 남짓의 추가 전력이 필요하게 된 상황'(하승수, '66개의 '밀양'을 만들 것인가'에서. 69쪽)이라는 내용을 보고는, 아이고, 또 송전탑! 밀양 송전탑 건설로 인해 어떤 문제가 생겼는지를 그렇게 경험하고도 또! 하는 생각.
도대체 이런 산업이 계속 언급되는 이유가 무엇인가? 문제점을 지적하는데, 모르쇠로 일관하면서 오히려 그러한 산업을 계속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왜? 눈에 보이는 성과를 내야하기 때문이고, 장기적인 산업 정책이나 에너지 정책은 성과가 보이지 않기 때문에 자신들의 성과를 드러낼 수 없기 때문이다.
즉, 삶보다는 성과를 먼저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지 않을까 하는데, 그럼에도 희망은 있다고... 지역에서 공동체를 꾸려 살아가는 사람들, 다른 존재들과 어울려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도 실려 있으니까.
그렇게 생명 평화를 추구하며 살아가는 사람의 이야기를 통해 생명 평화를 위협하는 경제 정책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는데, 이러한 목소리가 허공에 흩어지지 않기 위해서는, 광장에 모인 사람들의 각각의 소리가 따로따로 겉돌지 않고 융합이 되어 합창이 되었듯이, 사람을 살리는 경제도 역시 이렇게 사람들이 함께 소리를 내야 함을 이번 호를 통해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이번 호 표지에 '사람을 살리는 경제는 가능하다'고 쓰여 있다. 경제가 무엇인가? 영어로 된 말을 들여올 때 한자어로 '경세제민(經世濟民)'에서 두 글자를 따와 경제라고 했다고 하지 않는가. 이미 경제란 말에는 사람을 살린다는 의미가 들어 있다. 그러니 우리 지금 경제는 그 말에 충실하기만 해도 된다. 그 점을 명심하기만 해도 사람을 죽이는, 다른 생명체, 또 다른 존재들을 죽이는 경제란 말은 있지도 않음을 생각해야 한다.
그럼에도 이런 경제를 계속 추구한다면? 최근에 읽은 서정홍 시인(농부)이 언급한 권정생 선생의 유언장에 있는 말을 곱씹어 본다. 정말, 우리 그런 세상을 만들 것인가?
'만약에 죽은 뒤 다시 환생을 할 수 있다면 건강한 남자로 태어나고 싶다. (......) 하지만 다시 환생했을 때도 세상엔 얼간이 같은 폭군 지도자가 있을 테고 여전히 전쟁을 할지 모른다. 그렇다면 환생은 생각해 봐서 그만둘 수도 있다.'
([서정홍, 희망은 끝내 사라지지 않고-교육공동체벗, 2025년.] 중 '권정생 선생님께'에서. 31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