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도 '존엄사'에 관한 법이 국회에 상정되었다가 폐기되었다고 한다. 존엄사를 법으로 규정한 나라들도 있는데, 우리는 이제 '연명치료중단'에 관한 법만 있을 뿐이다.
이 '연명치료중단'도 임종기에 들어선 사람에게만 해당한다는 것, 즉 임종이 임박하지 않다면 어떠한 연명치료도 불법이라는 것이 현재 우리나라의 상황이다.
하여 '연명치료 거부 사전의향서'를 작성했더라도 많은 경우에는 이러한 환자의 뜻이 받아들여질 수 없는 구조다. 이 점을 최근에 알고, 설마 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아, 이것이 확실하구나 하게 되었으니...
이런 상태에서 '존엄사'에 대한 법이 통과되기는 힘들 것이란 생각이 들지만, 이제 초고령사회로 진입하고 있는 우리나라도 죽음에 대해서, 아니 죽음 앞에 겪게 되는 고통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책에 이런 표현이 나온다.
'많은 사람들은 ~ 자신의 말기가 '쓸데없이 병원에서 고생하며 비용을 소모하고, 가족에게 부담을 지우고, 고통 속에 낯선 병원에서 생을 마감하는 과정'이 되지 않을까를 두려워한다.'(48쪽)고.
왜 그러냐 하면 우리나라 사람들을 보면 '2024년 기대수명은 83.7세, 건강은 65.5세로, 평균적으로 약 18년을 아픈 상태로 살다가 사망하게 된다'(99쪽)고 하니.
나도 그렇다. 나이 들어가면서 이렇게 내 삶을 마감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두려운 일이다. 돈은 돈대로 쓰고 가족에게 부담은 부담대로 지우면서도 고통은 고통대로 받으며 죽음이 다가오는 것을 지켜보고만 있어야 하는 상태로 지내는 것.
과연 이렇게 자신의 삶을 끝내야 하는가? 삶과 죽음을 떼어놓을 수 없다고 하는데, 아직까지는 죽음을 누구도 피할 수 없다고 하는데, 끝은 분명히 있는데, 그 끝이 명확히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끝이 올 때까지 어떤 방법을 이용해서라도 버티게 하는 것이 (아니, 연명치료를 거부하면 끝이 명확히 보이면 자신이 결정할 수도 있지만, 이런 임종 시기가 아니더라도 끝을 인식할 때가 있으니) 과연 그 사람을 위한 일일까?
'존엄사' (그냥 이 용어를 쓰기로 한다. 안락사라는 말보다는, 또 이 책의 저자들이 쓰고 있는 '의사조력임종'이라는 말보다는 쉽게 다가오니까)를 법으로 인정하고 있는 나라들은 그래서 인간의 자기결정권과 고통에 대한 연민, 그리고 존엄을 '조력임종의 조건'으로 삼고 있다고 한다.
그냥 삶이 힘들기 때문에 죽어야겠다가 아니라, 삶과 죽음에 대한 명확한 자기 인식에 바탕한 결정과 그 고통을 더 이상 완화하기 힘들고 다른 치료방법이 없을 때, 삶의 존엄이 훼손되기 쉽다고 판단되어 그 사람의 존엄을 유지하기 위한 방법으로 선택하는 것이 '존엄사'라는 것.
그래서 엄격한 과정이 요구되고 있는데, 주로 명확한 자기 의사 표명과 결정을 숙고할 수 있는 기간, 그리고 주변 사람들의 동의와 다른 의사 두 명 이상의 소견 등을 필수적으로 하고 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안 된다. 이 책의 저자들은 '존엄사'가 법으로 인정이 되었을 때 사회적 약자들이 죽음으로 내몰릴 수 있는 위험을 우려하고 있다. 사회적 압력으로 본의 아니게 죽음을 선택하게 될 수밖에 없는 경우가 사회적 약자에게 발생할 수 있다는 것.
비용이나 가족에게 지워진 부담 등으로 '존엄사'가 법으로 존재할 때 사회적 약자와 같은 누군가에게는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이 '존엄사'만 남게 된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존엄사 법'은 사회적 약자에게 죽음을 강요하는 암묵적 압력으로 작동할 수도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고... 그러니 '존엄사'를 이야기하기 전에 먼저 '완화치료'와 같은 다른 치료 방법에 대해 논의해야 한다고...
고통을 줄이면서 죽음을 맞이하는 완화치료(우리는 흔히 호스피스라는 이름으로 이야기를 한다)는 '존엄사'와는 달리 생명을 유지하면서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에서 환자의 고통을 최소화하는 방법인데, '존엄사 법'이 통과한 나라들에서는 이와 같은 '완화치료'가 병행하고 있다고 한다.
'완화치료' 제도가 정착되지 않고 '존엄사'로 넘어가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하고, 그것이 과연 바람직한가 하는 문제제기를 저자들이 하고 있는데...
'존엄사' 논의와 함께 '완화치료'와 '재택 임종'이 가능하도록 사회적 환경을 만드는 데 힘써야 한다는 저자들의 말에 동의한다.
이것이 선행되어야 또는 함께해야만 '고통 없이, 내 뜻대로, 존엄하게 죽는 일'이 어느 정도 가능해지지 않을까 한다.
'존엄사'가 법으로 인정되고 있는 네덜란드, 캐나다, 미국의 몇몇 주, 스위스와 존엄사는 인정하지 않지만 세계에서 처음으로 법원이 안락사가 허용될 수 있는 조건을 제시했다고 하는 일본, 또 죽음의 질이 좋은 대만에 대한 설명이 있어서 그 법이 도입되기까지의 과정과 취지, 그리고 실행과정에서 일어나는 문제점을 어느 정도 알 수 있게 해주고 있다.
이런 논의를 통해서 저자들은 '존엄사 법'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하고 시급한 것은 '삶과 죽음을 둘러싼 논의에서는 개인의 자율성뿐 아니라 가족 관계와 사회적 맥락, 그리고 돌봄 체계가 충분히 작동하고 있는지에 대한 점검이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208쪽)고 하고 있다. 즉 사회적 약자들이 죽음으로 내몰리지 않게 하는 사회적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럼 우리나라 의료 현실을 보자. 과연 돌봄 체계가 충분히 작동하고 있는지... 아니 우리는 치료 체계도 서울 중심으로 되어 있지 않나? 지방에서는 필요한 치료도 받지 못하고 있는 상황 아닌가. 또한 돌봄을 가족이 부담하는 경우가 많지 않나. 완화치료를 받고 싶어도 받을 수 있는 곳이 없어서 받지 못하고, 또 대상자가 되지 못한다고 해서 받지 못하지 않나? 이런 문제부터 해결해야 한다. 아니 무엇이 먼저라고 할 수 없다. 함께 해결하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그것이 지금 우리 의료체계가 해결해야 할 문제다. (그런데 과연 의사단체나 복지부에서 이런 점에 대해서 어떤 의견을 내고 있는지 알 수가 없으니...)
참고로 우리나라 완화의료 대상은 암, 후천성면역결핍증, 만성폐쇄성호흡기질환, 만성간부전, 만성호흡기부전 등 다섯 가지 질환으로 제한돼 있으며, 이들 역시 말기 진단 이후에야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79쪽)고 하니 갈 길이 멀다.
그러니 먼저 완화의료의 대상을 생명을 위협받는 질환을 앓는 환자라면 누구나, 병의 종류나 질환의 그시기와 관계없이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국제적 표준에 맞게 법을 개정해야 할 것이다. 다음 돌봄에 대해서 더 구체적인 정책을 만들어야 하는데, 돈이 없어서 받지 못하는 일이 없도록 의료복지제도를 정비해야 할 것이다.
다른 무엇보다도 우리가 '존엄사'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잘 살기 위해서다. 저자의 말처럼 '좋은 죽음은 좋은 삶 위에서만 가능하다. 그리고 좋은 삶은 혼자 만들 수 없다.'(250쪽) 이 말을 명심해야 한다.
용어 정리부터 하고 넘어가야 한다. 이 책의 저자들은 서두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같은 행위를 무엇이라 부르는지는 생각보다 중요한 문제다. 때로 명칭은 단순한 표현이 아니라, 그 행위의 성격과 도덕적 의미를 규정하기 때문이다. '안락사'와 '연명의료 중단', '조력자살'과 '조력임종'은 언뜻 비슷해 보이지만, 서로 다른 윤리적 무게를 지닌다.'(25쪽)
그래서 이 책에선 '의사조력임종'을 주요 용어로 사용하기로 했다(6쪽)고 한다. 이 용어는 '환자가 스스로 요청하여 그에 동의한 경우, 환자를 죽게 하려는 의도로 의사가 치사량의 약물을 직접 투약하거나, 의사가 처방한 약물을 환자가 직접 복용하는 행위를 가리킨다.'(6쪽)고 하고 있다. 이 풀이에 따라 표에 나온 용어를 이해하면 될 것이다.
구분
유형
용어
설명
소극적 안락사
연명의료 중단
소극적
안락사
연명의료 중단
죽음이
예견되는 상황에서 연명의료를 처음부터 시행하지 않거나(유보), 이미 시작한 치료를 멈추는(중단) 것.
죽음의 직접적 원인은 의료인의 행위가 아니라 기존
질병에 있다. 대부분의 국가에서 허용한다.
적극적
안락사
자발적
(환자가 직접
동의)
자발적
능동적
안락사
환자의
명확한 요청에 따라 의료인이 직접 치명적
약물을 주입하는 등 죽음에 이르게 하는 행위.
'의료인 등 환자가 아닌 타인'이 죽음을 실행한다.
의사조력 자살
환자의
요청에 따라 의료인이 치명적 약물이나 도구를
처방하거나, 처방받을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는 것.
죽음을 실행하는 주체는 '환자' 본인이다.
비자발적
(의사결정 능력 없는 경우)
비자발적
능동적 안락사
아동이나
알츠하이머 환자처럼 의사결정능력이 없어
본인의 뜻을 확인하기 어려운 경우에 이루어지는 안락사.
반자발적
(의사 확인 없이 진행)
반자발적
능동적 안락사
의사결정능력이
있는 환자임에도 그 요청을 명확히
확인하지 않은 채 진행하는 안락사.
기타
조력임종
자발적
능동적 안락사와 의사조력자살을 모두 아우르는 개념. 의사뿐 아니라 간호사 등 다른 의료인이 관여하는 경우까지 포함한다.
자비로운 죽음
안락사와
동일한 의미로 쓰이나, 죽임에 관여하는이의
동기(연민과 자비심)를 강조하는 표현. 전쟁, 재난 같은
극단적 상황에서의 행위를 가리키기도 해, 의료 환경의
안락사와 구분해야 한다는 시각도 있다.
조력임종을 둘러싼 주요 용어
(3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