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인간'
인간이 아니다. '저 사람은 인간도 아니야.' '인간이 어떻게 저럴 수 있지?' 하는 말들에서 인간답지 않은 행동을 하는 사람을 인간이 아닌, 즉 비인간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이런 말들에는 인간이 아닌 다른 존재는 무언가 옳지 않음, 또는 인간에게 위협이 되는 존재라는 의미를 깔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인간이 아닌 존재는 열등한 존재나 배제되어야 할, 아니면 고쳐야 할 존재라는 의식을 바탕으로 한 말이란 생각.
하지만 세상은 인간이 아닌 존재들이 더 많다. 그러한 존재들과 함께 살아온 것이 바로 인류의 역사다. 인간만이 살 수 있는 세상은 없다. 인간이 아닌 존재가 모두 없어진다면 인간 또한 살아갈 수가 없다.
최의택이 쓴 이 소설집 제목이 '비인간'이다. 그런데 제목이 된 소설은 없다. 이 소설집에 실린 소설들에 나오는 인물(인간이라고 생각하지 말자. 소설에 등장하는 존재들이다. 물론 인간을 포함해서)들 중 대부분이 인간이 아닌 존재들이다.
SF소설이라고 할 수도 있는데... 인간이 아닌 존재들, 특히 지금 인공지능 시대를 맞이하여 인간과 유사한 로봇을 개발하고 있는데, 이러한 휴머노이드가 상용화된 세상이 소설에 나온다.
그런 세상에서 홀로그램 보육교사가 등장하고('보육교사 죽이기'), 로봇이 등장하여 인간과 함께 살아가는 세상을 보여주고 있는데...
'노인과 노봇'이라는 소설에서 보면 인간과 로봇이 어떻게 공존하고 있는지, 서로 의지하면서 살아왔는지를 너무 잘 보여주고 있다. 그런 세상은 디스토피아가 아닐 터. 기술발전으로 인해 우리가 당면해야 하는 세상이 로봇과 인간의 갈등이 아니라 서로 의지하고 도우며 살아가는 세상일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마음을 따스하게 해주는 소설들이 많은데... 그러다가 '경계선, 인격, 장애'란 소설을 읽으면서 마음이 섬뜩해졌는데...
인간을 배려하는 로봇과 마음이라는 것이 없는 인간이 등장하여 도대체 어떤 존재를 '인간'이라고 할 수 있는지를 생각하게 하고 있다.
인간이 아닌 존재를 고통을 느끼지 못한다고 막 대하는 인물에 비해 인간의 마음을 고려하는 로봇이라니... 이 소설을 읽다 보면 '비인간'이라는 말에 대해서 다르게 생각하게 된다.
생물학적인 인간이 아니라 사회적인 인간에 대하여, 사회학적으로 인간이라고 할 수 있는 존재는 생물학적으로 인간이라고 할 수 있는 존재와는 범위가 다르지 않을까 하는 생각.
생물학적인 인간은 아니지만 인간을 돌보고, 인간과 함께하는 존재를 '인간'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인공지능이나 로봇을 비인간이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라는 여러 존재 중 하나로 봐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는데...
하여 '비인간'이라는 제목을 달고 있지만, 결국 이 소설들은 생물학적인 인간은 아니지만 사회적으로 인간이라 할 수 있는 존재들의 이야기, 그런 존재들과 함께 살아가는 세상의 모습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저의 아내는 좀비입니다'는 소설이 좀비로 변한 아내, 남편과 함께사는 사람들을 보여주는데, 증상 완화제로 어느 정도 함께 살아갈 수 있다. 이는 좀비를 '비인간'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인간'으로 보고 있다는 말이 되는데, 이 소설을 읽으면서 영화 [좀비 딸]을 떠올렸으니...
이 영화에서 좀비가 된 딸이 등장하지만, 그 딸을 좀비가 아닌 인간으로 대하는 인물들의 모습이 나오는데, 최의택의 이 소설집에서는 좀비만이 아니라 다른 존재들을 인간으로 대하는 모습이 펼쳐지고 있다.
그렇게 이 소설 속 '비인간'들은 '사회적 인간'으로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으니, 앞으로 우리가 살아갈 세상, 혹 외계존재가 있다면 그들도 '인간'으로 받아들여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한 소설이기도 하다.
그러니 생물학적 인간들은 말할 것도 없다. 인권 선언에 있는 성별, 피부색, 종교, 성적 지향, 나라, 신체적 특성 등등에 의해 차별받지 않는다는 것이니, 그들을 '비인간'처럼 대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음을 이 소설집에 실린 소설들이 바탕으로 깔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