옮긴이의 말에 '헐리우드가 가장 사랑하는 SF작가'(786쪽)로 소개하고 있다. 그의 작품을 영화로 많이 만들었다는 말인데... 사실 본 영화가 거의 없어서 그런 줄 모르고 있었다. 이름은 워낙 SF계에서는 유명해서 알고 있었지만.
이 소설집 제목이 된 '마이너리티 리포트'는 영화로 만들어졌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비록 보지는 않았지만... 소설도 단편소설이 아니라 장편소설일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 책을 보면서 어라? 짧은 소설이네 하고 놀라기도 했고. 미래 범죄를 예방하는 경찰이 자신이 그 명단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그 다음은? 그런 소설과 영화?
소설을 읽어보면 영어로 마이너리티 리포트는 번역에서 소수보고라고 되어 있다. 소수자의 보고는 다수의 의견과 다르다는 말인데... 이는 재판과정에서도 소수의견을 반드시 명기하는 것을 보면 다수의견만큼이나 소수의견도 중요하다고 여겨야 한다.
그렇지만 소수의견이 밝혀지는 경우가 얼마나 있을까? 대부분은 다수의견만을 알고 지내지 않는가. 소수의견이 차지하는 중요도를 생각하지도 않고. 소수의견을 알게 되는 사람은 다수의견만 알고 있는 사람과 같은 행동을 할 수 있을까?
아닐 것이다. 소설은 그 지점을 파고든다. 소수의견을 볼 수 있는 경찰의 책임자. 그는 자신에게 씌워진 범죄 행위를 미리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자신의 행위를 미리 안다는 것은 그대로 행동한다는 말일까?
아니다. 자신의 행동을 미리 안다면 그 결과를 안다는 말이니까, 예측된 대로 행동하지 않는다. 인간에게는 자유의지가 있으니까.
이 소설 '마이너리티 리포트'도 그렇다. 보고서를 본 사람의 행동을 어느 시점에서 예측하느냐에 따라 결론이 달라진다. 보고서를 보지 못했을 경우, 그는 예측대로 행동할 수 있다. 그러나 보고서를 본 이후의 시점에서 예측을 한다면, 그는 자신을 위해서 행동을 바꿀 수 있다. 그런데 이 보고서를 또 본 이후에는 어떨까?
자신과 조직이 걸린 문제라면, 어느 쪽에 더 중점을 두어야 할까? 소설은 그 점을 파고든다. 즉 인간은 예측대로 행동하는 기계가 아니다. 인간에게는 의지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신의 운명을 알게 되면 그대로 순응하는 사람도 있지만 많은 사람들은 순응 대신 바꾸려는 노력을 하게 된다. 그렇다고 정해진 운명과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느냐는 다른 문제이다.
즉, 결과는 같더라도 예측된 대로 행동했느냐 아니면 자신의 의지로 행동했느냐는 다른 의미를 지니기 때문이다. 이 소설이 바로 그런 점을 생각하게 한다. 그는 예측 결과를 안다. 그럼에도 예측 대로 행동하기로 한다. 왜? '정의'라고 하면 자신의 행동이 개인의 이익보다는 '정의'를 구현하는 쪽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만큼 한 조직의 책임 있는 자리에 있기도 하고.
이런 인간의 모습. 이것이 바로 인간 아닐까? 결과는 변하지 않더라도 그 결과가 일어나는 과정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는데, 그 차이를 만들어내는 것이 바로 인간의 의지라는 것. 이것이 인간이 지닌 특성이라는 것을 이 소설을 통해서 생각하게 되는데...
이 소설을 읽으면서 그렇다면 우리나라 점(무속)은 어떨까? 많은 사람들이 점을 치기도 하는데, 그 점괘에 따라서 똑같이 행동할까? 오히려 점은 자신이 결과를 바꾸기 위한 노력을 하는 디딤돌 역할을 하지 않을까?
미래가 완전히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음을 점(무속)에서도 인정하고 있지 않은가. 그러니 '마이너리티 리포트' 역시 안다는 것이 행동을 바꿀 수 있음을, 어쩌면 정보를 독점하고 있는 자들이 그 정보를 이용해 남을 재단하고 억압할 수도 있음을 이 소설이 보여주고 있다고도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주인공은 경찰 책임자로서 정보를 미리 볼 수 있었으므로, 그가 지금까지 해온 대로 정보를 알지 못하는 사람을 잡아 가둔 것이 과연 옳은지에 대해서 작가는 잠시 언급하고 있지만, 이에 대해서 많은 고민이 필요하다. 소설은 이렇게 인간의 행동이 예측대로만 되지 않음을, 또한 정보를 알지 못하는 사람은 정보를 아는 존재에 의해 휘둘릴 수도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 소설집에는 많은 단편소설이 수록되어 있다. 1950년대에 발표된 소설들인데... 짤막한 소설들이라 상상할 수 있는 여지가 매우 많다.
사건과 인물들에 여백이 많기 때문에 영화로 만들 때 만드는 사람의 처지에서는 좀더 자유로울 수 있다. 비어 있는 여백을 자신의 상상력으로 채우면 되기 때문인데...
소설의 주제를 살리면서도 많은 부분 자율성을 발휘할 수 있기에 이 작가의 단편 소설들이 영화로 많이 만들어졌을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든다.
거기다 이 주제들이 SF의 형식으로 당시 냉전 상황이나 독재, 전체주의를 비판하고 있기 때문이다. 많은 소설들에서 배경이 핵전쟁 이후로 설정되어 있고, 적대국들이 등장하는데 이는 소련과 미국의 냉전 시기를 반영한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냉전이 사람들의 삶만이 아니라 지구도 파괴할 수 있다고, 이렇게 지구를 파괴한 인간들은 지구에 살 자격이 없다고... 그러니 인간은 지구를 떠나는 것이 옳다고 이야기하는 듯한 소설도 있다.
'단기 체류자의 행성'이라는 소설인데, 이 소설에서는 방사능 속에서도 살 수 있는 생물들이 살아남은 지구에 인간들은 단기 체류자로 이곳에 잠시 온 방문자에 불과하다는 말이 나온다. 인간들이 파괴한 행성. 그렇게 만든 인간들은 지구에 존재할 가치가 없다는 생각을 펼치고 있다고 볼 수도 있는데... 이는 그렇게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작가의 생각을 풍자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이 단편집을 읽으면서 이 작가 대단하구나, 지금 우리가 고민하고 있는 것들을 미리 보여주고 있기도 하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으니...
버릴 단편이 없다. 다들 읽으면서 감탄하게 된다. 재미도 있고. 필립 K. 딕의 작품을 더 찾아 읽고 싶게 만든 소설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