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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담서림(道談書林)

  가끔 도서관에 간다. 책이 모여 있는 곳. 자신을 읽어줄 사람을 기다리고 있는 곳.


  세상 모든 책들이 도서관에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럴 수가 없다.


  너무도 많은 책들이 나오고 있기 때문인데... 도서관을 지구라고 생각한다면, 지구에 수많은 생명, 무(비)생명들이 존재하고 있는데, 이들 역시 지구에서 영원히 자리를 차지하고 있지 않다.


  지구에서 영원히 자리를 차지하고, 계속 그와 비슷한 존재들이 나온다면 지구는 견뎌내지 못할 것이다. 인간도 마찬가지다.


  인구가 힘이라고, 인구 소멸을 걱정하는 우리나라지만 한때는 인구가 너무 많아진다고 산아제한 정책을 펴기도 했었다. 왜? 지구가 포용할 수 있는 인구에 한계가 있으니까. 지금이야 인구 소멸을 걱정하며 출산을 장려하는 정책을 펴지만...


그러니 생명의 삶과 죽음은 지구에도 필수적인데, 도서관도 마찬가지다. 책들이 너무 많아도 너무 적어도 안 된다. 따라서 어느 정도 시일이 지나면 책들은 도서관에서 물러나야 한다. 다른 책들에게 자리를 내주기 위해서. 


물러나고 들어오는 원칙이 있을까? 사람의 삶과 죽음에 어떤 원칙이 있을까? 신이 있어서 이래야 한다고 정했다고 하는 사람도 있지만, 필연 또는 우연에 따라 삶과 죽음에 이른다고 여기는 사람이 더 많지 않을까.


지구에서 생명들은 그렇게 오고 가고를 반복한다지만 도서관은 어떤가? 도서관마다 나름대로의 원칙이 있어서 들어오고 나가는 책들이 정해진다. 그럼에도 도서관에는 우리가 쉽게 구할 수 없는 책들도 있다.


보존되는 책들... 이미 절판, 품절이 되어 읽고 싶어도 서점에서는 구할 수 없는 책들을 도서관에서는 만날 수 있다. 그럴 때의 기쁨이란... 역시 도서관이야 하는 생각이 든다. 하여 도서관에는 최근에 나온 책들도 있어야 하지만 선뜻 살 수 없는 책들, 세월이 많이 흘러 이제 개인이 구할 수 없는 책들도 이어야 한다.


이런 도서관, 주변에 많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이근화 시집을 읽다가 '도서관'에 관한 시를 발견했다. 하, 이런 도서관. 세상의 중심이다. 그냥 좋다. 이 시.


  세상의 중심에 서서


도서관을 세웠습니다

사람들이 원하지 않는 책을 날마다 주워 와서

번호를 매기고

뜯긴 책장을 붙였습니다

나란히 꽂았습니다


캄캄하고 냄새가 나서

나는 이곳이 좋아요

조금 더럽고 안락해서

날마다 다른 꿈을 꿉니다


도서관이에요

책들은 하룻밤이 지나면

숨을 쉬고

이틀 밤이 지나면

입술이 생기고

사흘째 팔다리가 태어납니다

나흘째 사랑을 나누고

먼지가 가라앉습니다

나는 뻘뻘 땀을 흘리며

혼자 길고 긴 산책을 합니다

멀리서 책을 한권 또 주워 왔습니다


이번에는 코가 없고

감기에 걸린 놈이었습니다

진심으로 사랑했어요

함께 커피를 마시고

토론을 했습니다

불을 다 끈 도서관에서


우리는 우리는 우리는

세상의 중심에 서서

구멍 난 내일을

헌신짝 같은 어제를

조용히 끌어안았습니다

도서관이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우리였기 때문입니다.


이근화, 뜨거운 입김으로 구성된 미래. 창비. 2021년. 27-2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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