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도 유명한 작품인데, 이제서야 읽었다. 오래 전 작품이라 시대를 따라가지 못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아니다.
좋은 문학 작품은 시대를 앞서가면 앞서갔지 결코 뒤따라가지 않는다. 조지 오웰이 쓴 [1984]를 보라. 그냥 상상에 불과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나? 어쩌면 이 소설처럼 세계가 전쟁으로 나뉘지는 않겠지만 -그렇게 믿고 싶다. 요즘 세계 정세를 보면 이도 확신할 수 없지만 - 온갖 기술로 인간을 감시하는 세상으로 변해가고 있지 않나.
내가 하는 모든 것들이 데이터로 남아 그것을 이용한 인공지능이 이미 실제 생활에서 쓰이고 있는 상태. 여기에 인공지능이 인간을 능가할 것이라고, 인공지능의 시대에 대한 두려움을 지니게 되기도 했는데, 이런 점들이 이미 많은 문학 작품에서 그렸던 세계 아니던가.
그러니 이 소설, 오래 전에 쓰인 소설이지만 인간의 한계를 생각하는데 많은 도움이 된다. 물론 이 소설에서 안드로이드는 인간처럼 감정을 지닌 존재로 나오지는 않지만, 꼭 그렇다고 볼 수는 없다. 왜냐하면 이 소설에 나오는 안드로이드가 이런 말을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기계죠. 병뚜껑처럼 찍어낸 존재예요. 내가 실제로, 개별자로 존재한다는 것은 환상에 불과했던 거죠. 나는 단지 한 기종의 견본일 뿐이었어요.' (285쪽. 안드로이드인 레이철의 말)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존재에게 감정이 없다고 할 수 있을까? 이 소설이 쓰일 당시에는 이런 말도 입력에 의한 기계적 반응이라고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연결망이 극도로 적은 시대에 작가가 살았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1,000억 개의 신경망이 연결된다면 어떻게 될지 모른다고 이야기하고 있지 않나? 우리 인간이 예측할 수 없는 인공지능이 탄생할 것이라고 하는데... 그렇다면 작중 인물인 안드로이드 현상금 사냥꾼인 릭 데카드의 이 말은 수정되어야 할지도 모른다. 아니 소설에서도 이미 그 점을 보여주고 있다.
탈출한 안드로이드들이 서로 연락을 하면서 서로의 생사를 걱정하는 점, 또 화성에서 지구로 탈출해 온 점. 그리고 자신들이 인간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결정하는 점 등등에서 그런 모습이 보인다.
그래서 작가는 주인공으로 하여금 이렇게 생각하도록 하는지도 모른다. '감정, 정서'를 인간의 조건으로 삼고, 안드로이드들은 그런 점이 결여되어 있다고...
'자기가 하는 말의 실제 의미에 대한 정서적 자각도 없고, 감정적 분별력도 없지. 오로지 개별 용어에 대한 공허하고, 형식적이고, 지적인 정의定義뿐이야.'(287쪽. 릭 데카드의 생각)
하여 소설에서는 인간들은 황폐한 시대에 동물들과 함께함으로써 정서적 만족감을 얻는 반면에, 안드로이드들은 그러한 동물들을 죽이는 것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지도어라는 요즘으로 치면 모자란다는 평가를 받는, 소설에서는 특수인으로 나오는 사람이 거미를 발견하고 행복함을 느끼는 반면에 안드로이드들은 거미의 다리를 자르는 행위를 한다.
이는 다른 생명체에게 감정이입을 하지 못하는 상태임을 보여주는데, 여기서 더 나아가 레이철이 릭의 집으로 가 염소를 죽이니 안드로이드와 인간의 차이가 바로 이런 생명에 대한 사랑, 또는 공감 능력이라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릭이 제거한 안드로이드 중에도 이러한 사랑의 감정을 지닌 존재가 없다고 할 수는 없다. 오페라 가수로 살아가는 안드로이드는 음악을 사랑한다. 또한 레이철은 또다른 안드로이드인 레이철에 대해서 분노하는 감정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 릭은 레이철과 잠자리를 같이 하기도 한다. 이는 안드로이드에 대한 생각의 경계가 명확하지 않음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소설은 고민하는 릭의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고, 안드로이드의 존재를 기계라고만 정의하기 힘듦을 보여준다.
현상금 사냥꾼인 릭 데카드의 하루 동안의 일을 중심으로 소설이 전개되는데, 화성에서 탈출해온 안드로이드 여섯을 모두 제거하는 릭. 그런 과정에서 감정적으로 흔들리는데, 결국 인간은 고민하고 후회하지만 그런 감정들을 통해서 세상을 살아가고 있음을, 그것도 자신 혼자만이 아니라 다른 존재들과 연결되어 있음을, 그것이 비록 생명이 있는 유기체가 아니라 기계일지라도 마음을 주는 것이 바로 인간임을 소설이 보여주고 있다.
이는 흔들리는 릭의 아내를 통해서, 그러면서 결국 릭과 아내의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음을, 그런 공감을 통해서 기계에 의존하지 않아도 됨을 보여주고 있는데...
고도로 발달한 인공지능, 그것을 계속 개발하려는 거대 기업의 모습도 소설에 나타나고, 무엇보다 과연 인간은 무엇으로 인간이 되는가 하는 점을 생각하게 하는 소설이다. 앞으로 인공지능과 함께 살아가야 할 우리 세대 또 미래 세대들이 '인간'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게 하는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