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설게 하기'란 말이 생각났다. 이 소설집을 읽으면서. 아니 김초엽의 소설을 읽으면서 늘 생각한 것이, 또 SF라고 평가받는 소을 읽으면서 생각한 것이 바로 이 '낯설게 하기'다.
낯설다는 말은 곧 다름을 인식하는 것이다. 그런데 다름을 인식하기 위해서는 '나'에 대한 인식이 있어야 한다. '나'라는 자아가 있고, 이 자아와는 다른 '남'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그때 낯섬이 일어난다. 즉 낯섬은 다름을 인식하는 행위다. 다름을 인식해야 변할 수 있다.
남을 인식하지 못하고, 남을 인식한다고 해도 나와 남의 차이를 알지 못하고, 그냥 나의 다른 부분으로만 여긴다면 변화는 있을 수 없다. 변화는 다름의 인식에서 오기 때문이다. 변화가 없으면 갈등도 없다. 갈등은 낯섬과 마주쳤을 때 발생하기 때문이다.
이런 갈등을 어떻게 풀어나가느냐 따라 삶이 달라진다. 즉 삶이 변화없이 잔잔하게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는 변화를 통해서 앞으로 어떤 삶이 전개될지 알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예측불가능성, 이것이 낯섬일 수도 있다. 따라서 낯섬은 불안을 동반한다. 불안을 안정으로 해소하려고 하지만, 그러한 해소를 위한 과정에서 수많은 갈등이 따르게 된다. 이 갈등이 바로 우리 삶이다.
그러므로 SF소설은 낯섬을 통해서 우리에게 삶이란 이런 것일 수도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즉 소설을 통해서 다름을 인식하게 되고, 이 다름이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게 만드는 것이다.
균일하고 평평했던 안정적인 삶에서 균열이 일어난다. 변화가 일어난다. 그럼에도 두려움과 불안에 휩쓸리지 않는 것은 소설이라는 것을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현실이 아니다. 현실과는 다르다.
현실과 다름을 인식하고 읽어가서 실제 삶에서는 불안과 두려움을 느끼지 않지만, 그럴 수도 있겠단 생각, 이렇게 다른 삶들을 보면서 자신의 삶을 생각하는 시간을 갖는 것. 소설 읽기의 즐거움이다.
김초엽 소설집을 읽으면서 낯섬, 다름, 그러면서 단순히 관광객이 아닌 내 삶에 그러한 낯섬을 끌어오고 싶어하는 마음을 지니게 되었다. (누군지 기억은 안 나지만 관광과 여행을 구분한 사람이 있었다. 관광은 보고 지나침, 여행은 내 삶에 끌어오기였던가?)
적어도 같음만을, 단일함만을 추구하지는 않게 되었다고 할까? 낯섬이 작동하기 위해서 '나'를 인식해야 하듯이, 소설을 읽으면서 지금 내 삶, 내 사고방식을 생각했다고나 할까.
나를 알지 못하면 낯섬을 경험할 수 없다. 낯섬이란 바로 '나'를 인식하는 순간부터 작동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김초엽의 소설을 읽으면서 먼저 '나'를 생각한다. '나'를 생각하고 나와 관계 맺고 있는 존재들을 생각한다.
이들이 나와 다르지 않음을, 아니 나와 같지 않음을 생각한다. 다르지 않다는 말은 존재한다는 뜻이고, 그들은 그들 나름의 존재 이유를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그래서 그 자체로 존중받아야 한다는 점에서 다르지 않다면, 존재들은 모두 다름을, 심지어 '나'조차도 하나가 아님을 깨닫는 데서 나와 같지 않다는 생각을 한다.
뭐, 구구절절 이야기할 필요가 없다. 작품을 읽으면 된다. 지금까지 읽어왔던 김초엽 소설들처럼 잘 읽힌다.
잘 읽히면서도 무언가 마음에 남아 있는 것이 있다. 소설의 끝에 가서 더, 더 무엇을 생각해야 한다는, 끝이 아니라 시작인, 어쩌면 계속되는 과정 속에 있음을 생각하게 된다.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할 수도 있고,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를 생각할 수도 있고, 세상 존재들과 어떻게 관계를 맺어야 할까 고민할 수도 있다.
그러면서 하나의 답이 없음을, 나 자신도 하나가 아닌데 어떻게 하나의 정답이 있을까란 생각을 하게 된다.
세상에는 여러 삶이 있고 그러한 삶의 우열을 가려서는 안 되니, 이 삶이 옳다 그 삶은 그르다고 말할 수 없음을...
다만 관계를 통하면 자신만의 삶을 유지할 수는 없음을, 관계란 바로 낯섬에서 발동하고, 낯섬은 나와 너를 인식한 상태에서 서로가 자신의 것을 지키고 잃으면서 새로운 자신을 만들어가는 관계의 시작임을 생각한다.
총 7편의 소설이 실려 있다. 이 중에 다른 책에 수록된 작품이 네 편이다. 아마도 읽어본 사람이 있을 것이다. 나 역시 이 소설집을 읽으면서 이 소설, 어디에서 읽었는데, 어디였더라? 찾아보기도 했으니까.
예전 습관대로 소설집 뒤를 찾아보았다. 예전에는 소설집으로 단편 소설들을 엮어서 낼 때 그 소설들이 처음 발표된 지면을 알려준 적이 많았기 때문인데... 없다. 작가의 말을 읽어도 추천의 말을 읽어도 읽은 작품이 어디에 먼저 발표되었는지는 나와 있지 않다. 이런...
그래도 포기할 수 없지. 분명 읽었는데... 찾아볼 순 있다. 조금만 수고하면. 그 결과 종이책으로만 이야기하면, 먼저 출판된 책들은 다음과 같다.
'수브다니의 여름휴가' ([내게 남은 사랑을 드릴게요]-자이언트북스. 2023년)
'양면의 조개껍데기' (팔꿈치를 주세요]-큐큐. 2021년)
'달고 미지근한 슬픔' ([다시, 몸으로]-래빗홀. 2025년)
'비구름을 따라서' ([토막난 우주를 안고서]-허블. 2025년)
여기에 '진동새와 손편지'란 소설은 '한국타이포그라피 학회'의 의뢰를 받아 쓴 작품이고 이 소설의 한 문장 한 문장을 타이포그라피로 써서 전시도 했다고 한다. 이 전시 영상이 있는데... 이것도 보면 좋을 듯하다.
한국타이포그라피 학회 (http://www.k-s-t.org/vibrating-birds-and-handwritten-letter/about.html)

여기에 덧붙이면 이 책을 산 이유 중 하나가 비정기 무크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출간될 때는 있었는데 지금도 있는지는 모르겠다. 출간되자마자 사놓고, 이제서야 읽었으니...
한편 한편에 대한 이야기는 굳이 하지 않겠다. 소설집을 관통하는 것이 낯섬이고, 이 낯섬을 통한 관계 맺기는 결국 우리 삶은 과정에 있고, 늘 변화한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생각하니.
한마디 더 덧붙이면 개인적으로 이 소설집에서 가장 편하게, 그러면서도 마음이 따뜻해지는 소설은 '소금물 주파수'였다.
작가의 고향인 울산과 고래에 대한 이야기라서 그런 것은 아니고, 이렇게 존재들이 존중하고 존중받는 관계를 만들어가야 한다는 점에서... 낯섬이 불안과 두려움이 아니라 나와 남의 관계 맺기의 시작임을 또 그것이 고정되지 않고 계속 변화하고 있음을 생각하게 하고 있어서.
판매되지 않는 이 무크지에 실린 김초엽 자신이 이번 소설집에 대해 한 말을 끝으로 인용한다. 이보다 더 이 소설집을 잘 정리할 수 있을 수는 없다고 생각하니.
'편협한 한 개인의 몸에 갇혀 살아가고, 서로를 온전하게 이해할 수 없고, 오해하고 충돌하고, 그러면서도 각자의 경계 밖을 이해하고자 갈망하고, 마음을 잘 전달하고 싶어서 고군분투하는 한계가 우리가 지닌 희미한 빛이자 가능성이기도 하지 않을까요. 여기 담긴 소설들은 그 한계와 가능성을 여러 각도에서 바라보려고 애쓴 이야기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김초엽 소설집, 양면의 조개껍데기 출간 기념 무크지. 1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