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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담서림(道談書林)
  • 애니미즘과 현대 세계
  • 유기쁨
  • 25,200원 (10%1,400)
  • 2023-04-28
  • : 914

애니미즘을 미신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인간이 아닌 다른 존재에 영혼이 있다고? 무슨 헛소리야!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에게 애니미즘은 원시인들이나 지녔던 미신에, 전근대적 사고방식에 해당한다.


그런데 이 책은 애니미즘에 대해서 그러한 생각을 바꾸게 한다. '인간이 다른 존재의 생명성을 인정하는 애니미즘은 우리가 잘 모르는 생명세계에 대한 존중의 관계를 표상하는 하나의 방식이 된다.'(177쪽)고 하고 있으며, 그래서 '사람'이라는 말의 뜻도 우리가 쓰는 말과는 다르게 쓴다.


'사람이 된다는 것은 살아가기 위해 여러 존재들과 관계 맺고 소통한다는 뜻이다. 사람들로 가득한 세계에서 하나의 "인간-사람"이 된다는 것은 세계 내 다른 "사람들"과 관계 맺고 소통한다는 것을 의미한다.'(180쪽)라고 '사람'의 폭을 확장하고 있다.


인간만이 사람이 아닌 것이다. 동물도 식물도, 무생물도, 기계도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어떻게? 바로 관계 속에서... 그러므로 애니미즘은 관계 맺기의 사상이라고 할 수 있다. 다른 말로 하면 관계론이라고 할 수 있는데, 세상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다는 사상이라고 보면 된다.


연결되어 있음, 억지로 하나의 관계를 끊었을 때 우리가 상상하지 못했던 결과가 나타나는 것. 그러므로 어떤 존재든지 소중하게 여기고, 그러한 관계에 충실해야 한다는 것이 바로 애니미즘이다.


이렇게 애니미즘을 정의하면 애니미즘이 원시적이라거나 전근대적이라고 할 수 없다. 그렇다면 애니미즘을 이루는 가장 기본적은 요소가 무엇일까?


그건 '선물'이라고 생각한다. 선물은 호의가 있는 관계 속에서 나타난다. 호의를 지닌 선물은 주고받기를 하고, 이 주고받기를 통해서 좋은 관계를 맺어가게 된다. 그런 관계 맺음은 한 쪽의 일방적인 이익으로 끝나지 않고 서로 이익을 주고받는 관계로 나아가게 된다.


또한 이 선물은 주고받음이 지속되는 가운데 점점 더 가치를 크게 하는데, 호혜적인 관계 속에서 주고받는 선물은 나선형의 전진을 하기 때문에 잠시 가치가 하락하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점점 반복될수록 가치가 커지게 된다.


그것이 바로 호혜적 선물 교환인데, 이와 반대되는 것이 바로 상품이다. 상품은 양쪽의 이익을 추구한다고 하지만, 마치 분업처럼, 어느 한쪽이 더 큰 이익을 얻게 된다. (분업이 상호 이익을 추구한다는 것은 이론으로만 가능하다. 분업을 통해 서로가 이익을 얻기 보다는 어느 한쪽이 더 큰 이익을 얻는 경우가 많았으니까) 왜냐하면 상품은 이윤을 추구하기 위해 만들어낸 물품, 또는 관계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다른 존재들을 '사람'으로 보게 된다면 그 존재를 이익을 위해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호혜적인 선물을 주고 받는 존재로 인식하게 된다. 이것이 현대의 애니미즘이라고 할 수 있는데...


어떤 '사람들'이 있을까? 이 책은 '비인간-동물-사람'부터 시작한다. 이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쉽게 동의할 수 있다. 왜냐하면 지금 반려동물과 함께하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동물권리에 대한 인식도 높아져서 많은 의학실험이나 과학실험에 동물 실험을 금지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한데... 또한 인간 역시 동물에 속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그래서 비인간-동물에게서 많은 위안을 받는 사람들도 있으니, 비인간-동물과 인간의 관계는 점차 호혜적인 선물 관계로 바뀌어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다음은 '식물-사람'인데, 여기에는 논란이 있을 수 있다. 식물에 생명이 있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과연 동물과 같은 수준으로 인정할 수 있을까에 대해서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또 비인간-동물을 사람으로 인정했을 때 우리의 먹을거리가 문제가 된다. 채식주의자들이 있으니 비인간-동물을 먹지 않는다는 것에 사람에 따라 그럴 수 있지 하기도 한다. 하지만 '식물-사람'을 인정하면 도대체 우리는 무엇을 먹고 살라는 말이야? 그냥 죽으란 것인가? 하는 말이 나올 수 있다.


비인간-동물도 먹지 말라, 식물도 먹지 말라고 하면 인간이 먹을 것이 무엇이 있느냐는 말이다. 여기에 저자는 생명은 생명을 먹음으로써 생명을 유지한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고 한다. 생명 유지에는 다른 생명이 필요하다. 그러니 다른 생명으로 생명을 유지할 때 지켜야 할 선이 있다는 점을 명심하면 된다고 한다.


상호존중이다. 필요에 따라 어쩔 수 없이 죽일 수는 있지만, 그것들 과도하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 또한 생명을 취할 때도 관계 맺기를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것. 다른 말로 하면 우리는 다른 존재가 자신의 생명을 선물로 내놓음으로써 우리의 생명을 유지한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다른 존재의 생명을 선물로 받았으면 그에 걸맞게 우리 역시 선물을 주어야 한다. 그것이 우리 생명이 아닐지라도. 이 점을 생각하면 먹을거리에 대한 논쟁은 필요하지 않을 수 있다.


다음은 물질들인데, 이 물질들에게 생명이 있다고 할 수 있을까? 하긴 탑이나 돌을 쌓아놓고도 또는 바위에게도 절을 하기도 하니... 해, 달, 별들에게 소망을 빌기도 하니, 이들에게도 일종의 생명이 있다고 여기는 사람들도 있다고 할 수 있다.


저자 역시 다양한 자료들을 통해 물질들에게도 생명이 있다고 여기는 집단이 있음을 보여주고 있는데, 단지 그들은 맹목적인 믿음이 아니라 자신들과 관계를 맺을 때 생명이 있다고 여긴다고 한다.


그렇다. 바로 관계다. 관계를 맺지 않고 있는 존재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삶과 관계를 맺고 있는 존재들, 이런 관계란 말 자체가 서로를 존중하는 것이니, 생명의 실체를 규명하기 보다는, 관계 속에서 생명이 있다고 할 수 있단 말이다.


기계에 대해서는 더 말할 것도 없다. 인공지능 개발이 한참이고, 인간을 뛰어넘은 인공지능이 나타나고 있는 이 시대에, 우리의 뇌를 장착한 기계가 나온다면 과연 그 기계를 '사람'으로 인정해야 하는가? 이 문제도 어느 정도 대답이 나왔다는 생각이 든다. 이미 홀로 된 노인을 돌보는 기계들이 있지 않은가? 그 기계들을 '사람'으로 여기지 않을까.


이렇게 이 책은 우리가 관계 맺고 있는 존재들을 통해서 '사람됨'이 무엇인지 이야기하고 있다. 인간이 아닌 다른 존재들과도 호혜적인, 선물 관계를 맺어야 하는데, 인간들끼리야 말해 무엇하랴!


인간들끼리 호혜적인 선물을 주는 관계를 맺지 못하고 있는 현대 세계에서 애니미즘은 우리가 어떤 사회를 추구해야 할지를 알려주는 지표 역할을 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원시적이다, 전근대적이다가 아니라 이미 우리는 우리의 생활에서 그러한 애니미즘을 보여주고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그것이 현대 세계가 겪고 있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임을.


저자의 마지막 말 명심해야 한다. 우리에게는 아직도 가능성이 있다. 아직 늦지 않았다.


"관계들이 살아 있는 한,

                               세계는 아직 열려 있다."   (40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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