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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담서림(道談書林)

  '하류가 좋다 

  멀리 보고 오래 참고 끝까지 가는 거다'


  시집에 실린 시인의 말이다. 하류... 흘러 흘러 도달하는 곳. 아니 도달하는 마지막 지점이 아니라 온갖 곳에서 온 물들이 모여 새로운 물, 더 넓은 바다로 나아가는 곳.


  그곳은 하나이지만 하나가 아니다. 다른 존재들이 함께 모여 있는 곳. 그곳까지 오기 위해 수많은 곳들을 거쳐야 했던 물들이, 다른 존재들이 모였다가 다시 길을 나서는 곳.


  하류에 도달하기 위해 멀리 보고, 오래 참고, 끝까지 와야 했던 존재들. 그런 소중한 존재들.


그런 존재들이 바로 우리들이다. 시를 읽으며 하류의 고요함, 풍성함, 다양함, 그리고 잠시 휴식을 생각한다. 고단한 여정에 쉼을 주는 곳이 하류라는 생각.


이 하류를 좋아하는 시인. 그런 시인이기에 우리가 미처 보지 못한 것들을 시를 통해 보여주고 있다. 짧은 시들 속에서 생각지도 못한 표현을 만나 감탄을 하곤 한다.


대나무에 관한 시 중에 '대밭일기'라는 시가 있는데, 우리가 쑥쑥 자라는 모양을 '우후죽순(雨後竹筍)'이라고 표현한다. 비가 그친 뒤에 죽순이 쑥쑥 자라난 모습을 표현하는데... 


이 시에서 시인은 '비 갠 뒤 / 대밭 속 / .../ 죽순이 올라 있다 / ... / 竹竹'(29쪽)'이라고 표현하고 있으니, 죽죽 자란다를 한자어 대 죽(竹)자를 써서 죽죽(竹竹)이라고 표현하고 있으니, 소리내어 읽으면 '쭉쭉'으로 읽히기도 하고, 하하 죽순이 올라오는 모양이 눈 앞에 펼쳐지는 듯하다.


표현이 참신한 시도 있지만, 지금 같은 겨울, 눈 내리는 겨울에 눈사람이 빠질 수야 없지. 시인은 그러한 눈사람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읽으면서 빙그레 미소가 지어진다.


미소展


  아이들이 눈 오시는 날을 맞아 눈사람을 만드실 때 마침내 막대기를 모셔와 입을 붙여주시니 방긋 웃으시어 햇볕도나 좋은 날에 사그리로 녹아서 입적하시느니


서정춘, 하류, 도서출판b. 2020년. 10쪽.


절로 미소가 지어지는 시. 이런 시들을 만날 수 있는 시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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