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영복 다시 읽기다. 함께 읽기에 이어 두 번째로 나온 책. 웬만하면 신영복 선생의 책은 다 읽어보려 하고 있다. 오래 전에 녹색평론에 실린 '나의 대학시절'이란 글이 신영복 선생을 처음 만나게 했고, '청구회 추억'으로 신영복 선생의 글을 거의 다 찾아 읽게 되었다.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은 그 후에 읽게 되었는데, 이어서 '나무야 나무야'를 읽으며 이토록 쉽게 자신의 생각을 설득력 있게 전달할 수 있는 글쓰기라니, [강의]와 [담론] 역시 감탄하면서 읽었다.
그런 선생이 더 우리 곁에 있어야 했는데, 돌아가신 지 벌써 10년이 넘었으니... 선생은 갔지만 선생이 남긴 유산은 우리에게 남아 있다. 그래서 신영복 함께 읽기, 신영복 다시 읽기를 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다시 읽기, 아니 계속 읽기를 해야 한다. 우리 사회는 아직도 신영복 선생의 말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특히 화이부동이라는 말. 이 말을 명심해야 한다. 선생은 우리가 추구해야 할 것이 화이부동이지 동이불화(同而不和)가 아니라고 했다.
즉 화(和)를 추구한다는 것은 똑같지 않다는 말이다. 똑같지 않기에 '관계'를 살피지 않을 수 없다. 관계맺기에 신경써야 한다. 즉 관계론이다. 신영복 선생이 존재론에서 나아가 관계론을 주장한 것은 바로 이 화이부동의 정신이다.
그렇다면 동이불화는 무엇인가? 바로 관계를 지우는 것이다. 동(同)을 추구한다는 말은 차이를 없애려 한다는 말, 이는 한 쪽을 다른 한 쪽이 흡수해버린다는 말이다. 여기에 관계는 성립하지 않는다. 일방적인 흡수일 뿐이다. 그러니 동의 논리는 중심의 논리다. 중심이 모든 것을 흡수하는 블랙홀과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다.
이런 삶, 이런 사회는 행복할 수 없는 사회다. 다른 존재들의 관계를 일방적으로 무시하기 때문인데, 따라서 화(和)의 논리로 나아가야 한다고 신영복 선생은 주장했다고 한다.
화란 관계이고, 이는 거리를 인정한다는 뜻이고, 이 거리를 완전히 없애지 않고 함께하기 위해서 머리에서 가슴으로, 가슴에서 발로의 여행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화는 어디서 실현되는가? 바로 변방이다. 변방은 하나로 뭉쳐진, 관계가 없는 일방이 아니라 다양한 존재들이 서로 관계를 맺고 있는 곳이다.
이런 변방에서부터 변화가 시작된다. 이러한 변화가 우리 사회를 조금씩 조금씩 좋은 방향으로 변화시켜 왔다.
하지만 과연 지금 우리 사회는 어떤가? 화의 논리보다는 동의 논리가 지배하고 있지 않은가? 다름을 인정하지 않고, 다르다는 이유로 배척하고 배제하는 그런 모습을 보이고 있지는 않은지.
그래서 신영복 다시 읽기가 필요하다. 동의 논리가 우리 사회를 지배하게 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어?떻게 해야 화의 논리가 우리 사회에 자리잡을 수 있을지 우리가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야 할 때가 지금이기 때문이다.
이 책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신영복 선생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책 자체가 화의 논리를 실현하고 있다. 어느 하나로 신영복 선생을 규정하지 않고, 선생이 지녔던 다양한 모습을 각자의 분야에서 자신이 느낀 대로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다.
이들이 알려주는 신영복 선생의 다양함을 인식하는 데서 그쳐서는 안 된다. 거기서 자신을 읽고 머리에서 가슴으로, 다시 발로 나아가야 한다. 그것이 바로 신영복 다시 읽기 아니겠는가.
이 책에 실린 신영복 선생에 대한 글들을 몇 가지 말로 정리하면 '화이부동'과 '관계', 그리고 '머리에서 가슴으로, 가슴에서 발로의 여행'과 '변방'이 될 것이다. 이 말들이 하나로 꿰어질 수 있음을.
이 말들을 '입장의 동일함'이라는 말로 꿰어보면, 중심으로 가려는 동의 논리를 부정하고, 다양한 관계들을 통해서 변방에서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일들을 하는 실천이 필요한 때라는 생각이 든다.
'입장의 동일함'은 동의 논리, 즉 같아야 한다, 이렇게 해야만 한다가 아니라 언제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 자신의 주장만을 관철시키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무언가를 함께 해나가는 더불어 손잡고 나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양한 글들 속에 그간 알고 있었던 신영복 선생의 좋은 말들, 또 그의 글씨를 볼 수 있어서 좋기도 했지만, 지금 시대를 보는 눈을 갖추고 함께해야 함을 생각하게 하는 [신영복 다시 읽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