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소설을 읽다가 이거, 정말 다윈상 후보에 대한 이야기군 하는 생각이 들었다. 호기심, 자신의 생명을 거둘 수도 있는 호기심을 실현하기 위해 애쓰는 사람 이야기. <'소심한'과 '멀리 떨어진 곳' 사이에서>라는 소설,
다윈상이 무엇인가? 위키백과를 참조하라. 하여간 어리석은 행동으로 자신의 목숨을 잃은 사람들에게 -대부분의 다윈상 수상자는 그래서 살아 있지 않다- 수여하는 상 아닌가.
다윈상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이 소설 제목이 재미 있는데, 영영사전에서 timid(소심한)과 Timbuktu(멀리 떨어진 곳) 사이에 위치하는 단어가 time(시간)이라고 한다. (7쪽)
시간은 우리에게 중요한 역할을 한다. 왜냐하면 우리의 시간은 한정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간을 돌릴 수가 없다고... 주어진 시간을 잘 활용해야 한다고 한다.
이런 시간에 대해서 궁금증을 갖고, 정말로 죽을 때 자신의 삶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질까 하는 의문을 갖고 자신이 그러한 죽음에 이르고자 하는 인물이 등장한다. 그는 정말 죽어가던 사람이 깨어나서 하는 말, 내 인생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졌어요라는 말이 거짓이 아님을 증명하고 싶어한다. 그래서 자신이 죽음을 불사하는 실험을 하고자 한다.
그런데... 결과는, 아마도 다윈상의 유력한 후보가 되었을 것이다. 그런 어리석음, 지나친 호기심. 호기심이 창조를 낳기도 하지만, 생명을 없애기도 하니... 이 소설을 읽으면서 다시 예전에 몇몇 알던 다윈상 수상자들을 떠올렸으니... 마냥 웃을 수만은 없는 소설이라고 해야 하나.
소설집 제목이 '멍청이의 포트폴리오'이기 때문에 다른 소설들도 다윈상을 받을 만한 사람들 이야기겠거니 했는데, 그것은 아니다. 다양한 내용의 소설이 묶여 있다. 아마도 커트 보니것 초기 단편들을 모아놓은 듯하고.
마지막 소설인 '로봇빌과 카슬로우 씨'는 미완성작이니... 내용이 중간에, 아니 어쩌면 시작 부분에서 멈추고 말았다. 뒤에 어떤 내용이 전개될지 모르니, 작가가 구상한 소설 중에 어느 정도까지 진전이 되었는지 알 수가 없다.
여기에 '마지막 태즈메이니안'은 소설이 아니라 수필이라고 하고, 그의 신랄한 사회비평이 담겨 있는 글이니, 당시 사회를 바라보는 커트 보니것의 관점을 알 수 있다.
제목이 된 소설을 보면 과연 이 소설의 주인공이 멍청이일까 하는 생각이 드는데, 그 인물은 우리가 좋은 의미로 쓰는 '바보'라는 말이 어울린다. 바보 의사 장기려처럼... 또는 바보 소리를 들었던 김수환 추기경처럼. 또한 바보 소리를 들었던 어떤 정치인처럼.
자신이 받았던 것을 조건 없이 남에게 베풀려 하는 사람. 자본의 입장에서 보면 멍청이임에 틀림없지만, 그런 사람들로 인해 사회는 조금 더 좋은 쪽으로 움직이지 않을까... 보니것이 긍정적으로 보는 사람은 바로 그러한 사람이라는 것.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살아가는 사람이 아니라, 적어도 받은 만큼은 돌려주고자 하는 사람이 많다면 그 사회는 따뜻한 사회가 될 것이다.
자신이 준다는 사실을 밝히지 않는, 드러나게 행동하지 않는, 그야말로 오른손이 한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는 말을 실천하는 사람. 그런 사람이 이해받지 못하고 멍청하다고, 바보라는 소리를 듣겠지만, 그런 사람들 때문에 세상이 좀더 좋아짐을, 또 그런 사람을 이해하는 사람이 있음을 소설이 보여주고 있다.
짧은 소설들이 묶여 있지만 그 속에서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를 생각하기에는 모자람이 없는 소설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