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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담서림(道談書林)

  이 세상에서 가장 슬픈 노래가 무엇일까? 시집 제목을 보면서 그런 생각을 한다. 이 시집의 제목이 된 시는 '비가(悲歌)'다. 말 그대로 슬픈 노래.


  그런데 시인은 이 시에서 이 노래는 '아직 한번도 불러지지 않았다'고 한다. 왜냐하면 세상에서 가장 슬픈 노래는 슬퍼하는 사람이 부르는 노래가 아니라 '슬픈 사람을 기억하는 사람이 부르는 노래'이기 때문이라고.


  그러므로 슬픈 노래는 '불길처럼 흘러간 후에 / 강물보다 더 우렁우렁 눈물 쏟아낸 다음에 / 끝내 불러보지 못한 이름이 / 발자국 하나 남기지 않고 / 길을 지우고 난 후에 / 사막 같은 악보를 드러낼 것'이라고 한다.


사막 같은 악보. 무엇이 있지. 무엇을 찾을 수 있지. 백지라고 해도 좋을 듯한 표현인데... 그만큼 마음에 모래만이 가득한 상태. 바람이 불면 이 모래가 흩날려 곧장 제 형태를 바꾸곤 하는. 


조금만 시간이 지나도 형태가 바뀌어 버리는 사막. 그래서 누구나 다 다른 모습을 기억하는 그러한 사막. 사막 같은 악보. 이런 사막같은 악보가 쉽게 드러날 수도 없을 뿐더러, 그런 노래를 부르는 사람 또한 제 마음을 드러내기 힘들다. 밖으로 표현하지 못해 안에서 안에서 메말라가는 마음.


이렇게 슬픈 사람을 기억하는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노래는 진정 '이 세상에서 가장 슬픈 노래'일 것이다. 


그런데 슬픈 사람을 기억하는 사람은 누구일까?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의 슬픔을 기억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자신의 슬픔을 기억하는 사람도 있지 않을까.


'서 있는 사내 2'라는 시를 읽으며 어쩌면 이 사내와 같은 사람들이 부르는 노래가 슬픈 노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서 있는 사내 2


  쑥부쟁이 칡덩굴 얽히고설키며 철 따라 피고 지던 꽃들과 풀들의 흙을 밀어내어 논을 만들고 밭을 일구다가 꿈같은 속세의 끄트머리라고 당간을 세우고 금천을 넘게 하더니 어느날 불타고 무너져 내려 인의도덕을 서원하는 마당이 되더니 다시 부수고 그 자리에 고랑을 파고 씨를 뿌리는 전답이 되었으니 이 조화는 사람의 일인가 세월의 장난인가

  큰길 오가던 사람 역적으로 몰려 죽임을 당하고 후세에 비석으로 한을 달랜들 금 가고 마음 모서리 떨어져 나간 채 서 있는 저 사내의 삭은 가슴만 하겠는가


* 강원도 원주시 지정면 안창리 흥법사지 


나호열, 이 세상에서 가장 슬픈 노래를 알고 있다. 시인동네(문학의 전당), 2017년 초판 2쇄. 44쪽.


아마도 시인은 원주 흥법사지에 갔으리라. 거기서 느낀 점을 시로 썼으니, 시집에 작은 글씨로 *표로 장소를 알려주려 했겠지.


산에서 절로, 절에서 서원으로, 다시 서원에서 전답으로 바뀌었던 과정. 그 과정에서 어떤 사람들이 오고갔을까? 수많은 사람들의 삶이 그곳에 서려 있을 텐데, 그것을 지켜보는 사내의 심정은 어떨까?


그 사내의 삭은 가슴에서 나오는 노래가 바로 세상에서 가장 슬픈 노래 아닌가. 그런 노래, 듣고 싶은가. 아니 그런 노래는 불러지면 안 된다. 불러지게 해서는 안 된다. 누구도 그런 노래를 부르지 않게 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서 마음이 사막이 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들의 마음을 사막으로 만들어놓고, 그들로 하여금 슬픈 노래를 만들게 해놓고도 아무런 거리낌이 없는 자들은 또 누구인가.


그런 자들로 인해서 슬픈 노래는 '아직 태어나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왜, 슬픈 노래는 슬픔이 다 지나간 다음에 비로소 세상에 나올 수 있기 때문에. 충분한 애도가 끝나야 그때서야 비로소 슬픈 노래를 부를 수 있기 때문에.


사막의 오아시스처럼, 슬픈 노래가 사막 같이 변한 마음에 오아시스처럼 그 사람의 마음을 위안해주기 위해서는 슬픔이 지나가야 하니까. 그런 슬픔이 다시는 생기지 않도록 해야 하니까. 하여 '삭은 가슴'을 지니지 않게 해야 하니까.


이 시집을 읽으면서 하염없이 슬픔 속으로 빠져들게 되는데, 그럼에도 슬픔 속에서 허우적거리지 않는다. 사막의 모래 속에 파묻히는 것이 아니라 사막 속에서 오아시스를 발견하게 되듯이, 그렇게 시집을 읽으며 희망을 찾는다.


           비가(悲歌)


이 세상에서 가장 슬픈 노래를 알고 있다

그러나 아직 한 번도 불러지지 않은 그 노래는

슬픔이 불길처럼 흘러간 후에

강물보다 더 우렁우렁 눈물 쏟아낸 다음에

끝내 불러보지 못한 이름이

발자국 하나 남기지 않고

길을 지우고 난 후에

사막 같은 악보를 드러낼 것이다

슬픈 사람은 노래하지 않는다

외로워서 슬픈가

슬퍼서 외로운가

뉘엿뉘엿 저물어가는 어디쯤에서

날갯짓 소리가 들리는 듯

슬픈 사람을 기억하는 사람이

부르는 그 노래는 

아직 태어나지 않았다


나호열, 이 세상에서 가장 슬픈 노래를 알고 있다. 시인동네(문학의전당), 2017년 초판 2쇄. 7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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