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시. 시의 길이가 짧다고 시에서 느끼는 감흥이 적다는 말은 아니다. 짧은 시에서 번져오는 깊은 울림. 마음을 물들이는 시들. 그런 시들을 쓴 시인 서정춘.
짧게 쓴 시들만큼이나 시집도 많이 내지 않았는데, 그럼에도 첫 시집이 28년만에 나온 것에 비하면 나머지 시집들은 아주 빠르게 나온 셈인데...
그는 평소 자신은 세 가지에서 짧다고 '삼단(三短)이라 했다는데, "체구가 작고, 가방끈이 짧고, 시인 정 아무개의 말처럼 '극약 같은 짤막한 시'만 쓴다" (문인수, '지네-서정춘 전'에서. 29쪽)고.
야간 중고등학교를 다닐 정도로 가난했던 삶. 마부였던 아버지. 하지만 어린 시절 시에 반해 시집을 필사하면서 시 쓰기를 갈망했던 시인.
주소를 바꿔 투고를 하는 바람에(?) 신아일보에서 시로 당선이 되었다는 시인. 그 전에 용꿈을 꾸었다고... 신아일보에는 시조를 보내고, 동아일보에는 시를 보내려 했는데, 술을 많이 마신 바람에 두 작품의 주소가 바뀌었다는데.
이 책에 실린 당시 심사위원이었던 서정주의 심사평이 웃음을 자아낸다. 하아, 참... 이런 오해를 받을 수도 있겠구나.
'선자와 성명 중의 두 자가 같다는 우연한 사실 때문에 혹 있음직도 한 오해가 염려되지 않은 것도 아니나, 출중한 것을 그 때문에 묻히게 할 수는 없었다. 당선자 서정춘 씨와 선자는 일면식도 없고 단 한 번의 서신거래도 없는 사이인 것을 먼저 여기 분명히 밝혀 둔다.' (157쪽)
이렇게 이 책은 이런 시인 서정춘의 등단 50주년을 기념해서 후배 시인들이 기획해서 내었다. 1부에는 서정춘이 등장하는 시들을 - 와, 이토록 많은 시인들이 서정춘이란 시인에 대해서 시를 썼다니, 그의 짧은 시와 대조적으로 그의 영향력은 길고도 길구나!-, 2부에는 서정춘 시에 대한 해설을, 3부에서는 서정춘의 사진들과 서정춘의 시에 장사익이 작곡을 했다는 노래 악보와 당시 신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었던 기사 등이 실려 있다.
그리고 마지막에 서정춘의 연보가 실려 있는데, 이 연보가 그냥 연대기를 나열한 것이 아니라, 전기를 읽는 듯한 느낌을 주도록 되어 있다. 서정춘이라는 사람의 삶에 대해서 알려주고 있다. 이 연보에서 아버지의 친구에 대한 이야기(피아노 최씨와 외팔이 장씨), 그는 외팔이 장씨를 통해 정지용, 백석 등의 시인을 알게 되고, 외팔이 장씨가 '너는 이미 시인'(172쪽)이라 했다고...
서정춘이란 시인을 잘 모른다면 이 연보를 먼저 읽고, 2부 그의 시에 대한 이야기를 읽고, 1부로 넘어가면 좋으리라.
이 책에서 서정춘에 대한 이야기 중에 김성동이 한 말... 하, 이 정도의 시인이었단 말이구나, 서정춘이란 시인은.
"북에 소월이 있다면 남에 목월이 있다."
시단에 떠도는 말 듣고 이 중생이 말하였다.
"북에 소월이 있고 남에 목월이 있다면 그 가운데 용래가 있다."
다시 말하겠다.
"평안도에 백석이 있고 충청도에 용래가 있다면 전라도에 정춘이 있다." (109쪽)
이 책을 읽으면 서정춘의 시집을 찾아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 생길 것이다. 몇 권 그의 시집이 있지만, 지금은 구할 수 없는 시집들이 있다. 품절된 시집인데... 그러한 시집들이 다시 우리 곁으로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이 참에, 그를 사람들에게 널리 알린 '죽편'이란 시에 곡을 붙인 장사익의 노래를 들어보는 것도 좋겠다. 노래의 1절과 2절 사이에 [죽편]의 첫 시인 '30년 전 - 1959년 겨울'이란 시가 장사익의 읊조림으로 들어가 있다. 장사익은 죽편이라는 시 제목을 그대로 따르지 않고 '여행'이란 제목으로 바꾸었는데, 인생은 여행인가? 검색하면 들을 수 있지만, 여기에 링크를 걸어둔다.
EBS 스페이스 공감 - 263회 장사익 - 여행 - YouTub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