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외'를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찾아보니, 어떤 무리에서 기피하여 따돌리거나 멀리함. 인간이 자기의 본질을 상실하여 비인간적 상태에 놓이는 일이라고 풀이되어 있다.
사람이 소외되었다고 하면, 인정받지 못하는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는데, 누구에게 인정받지 못하는가를 생각해야 한다. 권력을 쥔 자들에게 인정받지 못했다고 해서 소외되었다고 할 수는 없지 않을까.
이 책 (소설이라고 하는데, 소설이라기보다는 수필에 가깝다고, 예전에 우리나라에서 발간된 만민보 시리즈-두 권까지는 나왔는데, 그 다음에는 나오지 않은 듯. 그리고 이 책들은 절판이 되어 지금은 읽기 힘들어졌다. 세풀베다가 이 책에서 했던 작업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드는데, 아쉽다. 다만 이러한 일들이 노회찬 재단에서 기획해서 책으로 나오고 있다. '6411의 목소리'로 대변된다- 비슷하다고 해도 좋을 듯)에서 소외된 사람들은 스스로 권력에서 멀어진 사람들이다. 권력에 대항하는 사람들이다.
힘없는 사람들을 위해, 진리를 위해, 자신의 신념을 위해, 환경을 위해 타협하지 않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가 바로 이 책이다.
세풀베다의 다른 소설들도 이런 사람들을 주인공으로 삼는 경우가 많지만, 여기서는 짧게 그 사람들 (때로는 사람이 아닌 고양이도 나오지만, 그 고양이는 세풀베다 작품인 '갈매기에게 나는 법을 가르쳐준 고양이'의 주인공 고양이 소로바스다)을 소개하고 있다.
슬프고도 아름다운, 감동을 주는 사람들의 삶. 자신만이 아니라 다른 존재를 위해 사는 삶이 결국 자신을 위하는 삶이라는 것을 실천한 사람들의 이야기.
첫 이야기는 나치의 유대인 수용소에서 시작한다. 거기서 발견한 문장이 이 책을 쓰게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는 여기에 있었고, 아무도 내 이야기를 하지 않을 것이다'는 문장. 죽어가면서 자신이 여기에 있었다고 외치는 사람. 그 사람은 소외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소외된 사람이 그 사람뿐이었을까? 또 강제적으로 소외된 사람도 있지만 자발적으로 소외를 선택한 사람도 있지 않을까?
이 문장에 많은 사람들이 함께하고 있다는 자각이, 그런 사람들이 잊혀지면 안 된다는 생각,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자 세풀베다는 이 책을 썼다.
왜냐? 이야기하는 게 저항하는 것이기 때문이고, 이러한 저항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남아 있는 한, 그들은 소외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여 이 책에 나오는 사람들과 더 많은 사람들이 바로 그 문장 앞에 있음을 '그들 모두와 다른 더 많은 사람들이 돌멩이에 새겨진 글을 읽으며 그곳에 있었다. 그리고 내가 그들의 이야기를 해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13쪽)고 세풀베다는 이 책의 첫부분에서 말하고 있다.
그러면서 바로 다음에 나오는 두 여자의 이야기, 칠레의 비극에서 살아남은, 자신과 동료를 끝까지 지킨 그 사람들의 슬프고도 아름다운 이야기가 마음을 울린다.
지하 감옥에서 처음 만났다는 두 여자. 이들이 공통으로 하는 말은 '나는 말하지 않았어. 나는 그들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어. 그들은 나를 이기지 못했어' (16쪽)이다. 심한 고문을 당했음에도 동료를 보호한 그들.
25년 후 그들은 삶을 즐길 수 있게 되었는데, 그렇게 되기까지 그들이 겪었던 상처들이 바탕이 되었음을, 그들을 사랑스럽고 자랑스레 바라보는 세풀베다의 시선이 이렇게 표현되어 있다.
'그들은 1960년대의 꽃무늬 미니스커트를 입은, 시끄럽게 재잘거리는 여학생들 같았다. 사랑과 생각이 모두 반항적인 소녀들 같았다. 그들은 영혼과 희망을 함께하는 동료였다. 내가 얼마나 자랑스럽게 그들을 바라보았는지! 나의 영원한 소녀들을!'(19쪽)
어찌, 이런 사람들을 소외된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이들은 권력으로부터 소외되었을지언정 민중으로부터 또 역사, 진리로부터 소외되지 않았다. 그러니 그들의 육체는 늙었을지라도 정신은 영원한 청춘이다. 이를 세풀베다는 찬미하고 있다.
이런 사람들이 줄줄이 나오는데, 짧은 이야기들이 마음을 울린다. 엄혹한 세상을 헤쳐나온 사람들, 그 사람들이 있었기에 그나마 이런 세계를 우리가 유지하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 그렇다. 눈에 보이는, 남 앞에 나서는 사람, 권력을 쥔 사람들보다 이런 사람들이 우리에게 필요했고, 또 우리를 소외되지 않게 했다.
칠레와 비슷한 일을 겪었던 우리나라도 이런 사람들이 많았다. 그래서 그들을 잊지 않기 위한 작업을 하기도 한다. 다시는 그런 일이 반복되게 하지 않기 위해, 그런 기록의 힘, 이야기의 힘이 민주주의를 지켜내는 힘이 되고, 민중들이 소외되지 않고 주체가 되는 길이기도 함을 우리 역시 역사를 통해서 경험했다.
그럼에도 혼탁한 세상에서 자신을 잃어가는 사람들도 나온다. 세상을 똑바로 바라보고 남에게 휘둘리면 어떻게 되는지, 그것을 옛 유고슬라비아가 붕괴하면서 겪게 되는 민족 참상의 현실을 '잃어버린 섬'에서 보여주고 있다.
한 가족처럼 지내던 사람들이 어느 순간부터 적으로 변하는, 그래서 결국 이웃 공동체가 파괴되고 마는 모습을 보여주는 '말리로시냐' 섬에 살던 사람들의 이야기. 권력자의 선동에 넘어가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보여주고 있으니, 이것이야말로 소외다. 이런 소외가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많은 사람들, 그 사람들의 삶이 감동으로 다가온다. 결코 이들은 소외되지 않았음을, 세풀베다의 이 책을 통해 그들은 지금의 우리에게 살아오고, 또 미래에도 계속 살아남을 것임을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