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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담서림(道談書林)
  • 아무도 오지 않는 곳에서
  • 천선란
  • 15,300원 (10%850)
  • 2025-10-27
  • : 60,235

좀비 3부작이라고 할 수 있다. 지구에 감염병이 급속도로 퍼져 사람들이 좀비가 되고, 이 좀비들이 사람들을 죽이는(감염시키는) 상황. 힘 있는 자들은 우주선을 타고 제2의 지구로 탈출을 하지만... 지구에 남은 사람들은 좀비가 되거나 또 살아남기 위해 안간힘을 쓸 수밖에 없는 상황.


감염되어 좀비가 된 사람들에게는 기억이 없다. 그래서 좀비는 무섭다. 자신도 자신과 함께했던 사람도 모두 알지 못한다. 좀비도 먹어야 산다고 하면, 먹기 위한 본능만 남아 있는 존재다. 이래서 좀비는 무섭다. 무섭기도 하지만 슬프다.


자신의 기억을 잃은 존재는 더이상 자신일 수 없다. 다른 존재와 관계를 맺을 수 없으니까. 그래서 좀비는 슬프다.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삶을(그것을 삶이라고 할 수 있다면) 살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천선란의 이 좀비 연작에서 좀비는 다르다. 사랑을 잃지 않는다. 자신이 사랑했던 사람을 좀비가 되어서 비록 말을 하지 못하더라도 잊지 않는다. 보호하려 한다. 그래서 더욱 슬프고 아름답다.


어떻게든 이 상황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보호하려는 모습. 그러한 좀비를 바라보는 사람의 모습. 이들의 관계에서 좀비냐 아니냐는 중요하지 않다. 이들은 상대의 상태가 변했어도 그냥 사랑하는 사람일 뿐이다.


사랑하는 사람이기에 함께하고 싶을 뿐이고, 그렇기에 서로를 해치지 못하게 다른 좀비나 인간들로부터 보호하려 한다. 그런 과정이 세 편의 연작소설에 실려 있는데.... 세 소설에서 공통점을 찾으라고 하면 이들은 그들이 살아가는 세상에서 소수자에 속한 사람들이었다.


첫 번째 소설인 '제 목소리가 들리십니까'에서는 가정폭력에 시달리는 옥주와 묵호가 등장하고, 두 번째 소설인 '제 숨소리를 기억하십니까'에서는 식물인간이 된 엄마를 둔 딸과 자폐인을 딸로 둔 엄마가, 세 번째 소설인 '우리를 아십니까'에서는 동성 부부가 나온다.


소수자의 삶을 살아가지만 그래서 더욱 서로에게 애틋할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 이들은 세상이 재난에 빠진 상태에서도 서로를 챙긴다. 인간일 때도 그렇고, 인간이라고 할 수 없는 좀비가 되었을 때고 그렇고. 이렇게 세 편의 소설은 좀비가 되기 전에 그들이 살아온 모습을 보여주고, 둘 중 하나 또는 둘 다 좀비가 되었을 때의 모습을 보여준다.


분명 상황이나 상태는 달라졌음에도 서로를 사랑하는 마음, 서로를 챙겨주는 모습은 변하지 않음을 보여주고 있는데... 이런 장면을 두 번째 소설인 '제 숨소리를 기억하십니까'에서 식물인간이 된 엄마와 행방불명이 된, 그래서 결국은 좀비가 된 아빠가 만나는 장면은 마음이 찡해진다. 이들은 서로를 잊지 않고 있음을 소설을 읽으면 그렇게 짐작할 수밖에 없게 한다.


(은미는 그것이 그녀에게 다가가는 것을 본다. 어둠 속의 두 실루엣은 마치 서로를 끌어안는 것만 같다.-221쪽)


어려움을 겪었던 사람들, 어려운 환경을 함께 헤쳐나왔던 사람들에게 다른 사람들이 겪는 재난 상황은 이미 자신들이 겪었던 일에 불과할 수도 있다. 따라서 이들에게는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이 어떤 존재이냐는 중요하지 않다. 좀비든 아니든, 그냥 사랑하는 사람일 뿐이다. 자신이 곁에 있어 주어야 하는, 또는 자신의 곁에 있어주어야만 하는 그런 사람.


하여 어떤 상황에서도 서로를 보호하려 하고 함께하려 하는데, 그 과정이 결코 순탄치만은 않다. 순탄치 않지만 이들은 헤쳐나간다. 이겨나간다. 이미 많은 어려움을 겪었으니까. 서로의 사랑으로 그 어려움들을 견뎌내고 이겨내 왔으니까.


하여 좀비 3부작이라고 하지만 사랑 3부작이라고 해도 좋겠다. 이 소설집은 사랑을 다루고 있으니까. 어떤 어려움에도 서로를 간직하는 사랑을 보여주고 있으니까. 그래서 슬프고도 아름다운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이들의 이토록 아픈 사랑이, 아름다운 사랑이 마음에 콕콕 박히는 소설. 천선란의 소설을 읽으면서 느꼈던 따스함을 다시 느낄 수 있었던 소설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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