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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담서림(道談書林)
  • 법정 밖의 이름들
  • 서혜진
  • 16,200원 (10%900)
  • 2025-08-01
  • : 2,793

책의 끝부분에 이런 말이 있다.


"변호사님은 무슨 일을 주로 하세요?"

이 질문을 여전히 종종 받는다. 예전에는 그 질문이 낯설고 어렵게 느껴졌지만, 이제는 조금은 단단하게 말할 수 있다. "저는 피해자를 위한 일을 주로 합니다." (253쪽)


변호사에게 무슨 일을 주로 하느냐는 질문은 아마 당신은 무슨 사건을 주로 맡느냐는 질문일 것이다. 다양한 사건이 있고, 그 사건을 주로 다루는 변호사들이 있으니까.


그러니 이런 질문을 받으면 변호사라도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낸다는 느낌에, 아마 내밀한 무엇을 끄집어 낸다는 느낌에 답을 하기가 꺼려졌을 수도 있다.


검찰에도 '특수통'이니 '공안통'이니 하는 말들이 있었으니 변호사들도 마찬가지 아니었을까? 지금처럼 법이 언론에 자주 거론되는 때에 변호사에게 무슨 일을 주로 하세요라고 질문한다면, 그 질문에 담겨 있는 의도를 파악하려 할 것이다.


'변호사'라는 말을 풀이하면 표준국어대사전에 '변호-사(辯護士)「명사」 『법률』 법률에 규정된 자격을 가지고 소송 당사자나 관계인의 의뢰 또는 법원의 명령에 따라 피고나 원고를 변론하며 그 밖의 법률에 관한 업무에 종사하는 사람.'이라고 되어 있다. 이 정의에 따르면 변호사라는 말에는 어떤 감정이 담겨 있지 않다.


그러나 변호사에게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어떤 마음? 정의를 구현하고자 하는 마음? 아니면 한 사람의 억울한 사람도 만들지 않겠다는 마음? 그도 아니면? 더 이야기하지 않겠다. 설마 변호사가 돈을 추구하지는 않겠지라는 순진한 생각을 계속 유지하고 싶으니까.


그런데 전에 읽은 [시장으로 간 성폭력]을 보면 꼭 그렇지도 않다. 돈을 목표로 성폭력 가해자를 변호하고, 그런 변호의 과정에서 성폭력 피해자를 더욱 괴롭히는 변호사 이야기였으니까. 가해자를 적극 옹호하는 변호사들도 있으니까. 왜? 그의 행동을 지지해서? 글쎄? 


물론 가해자도 변호를 받아야 한다. 그건 최소한의 인권이니까. 그러나 마음이 있는 변호사라면 가해자의 잘못을 확실히 지적하고, 그 잘못에 합당한 책임을 지도록 변호하는 사람이어야 하지 않을까? 그러니까 가해자의 변호는 가해자가 자신의 잘못보다 더한 벌을 받지 않도록 하는 역할을 해야 하는 것.


이것을 넘어서서 온갖 법기술을 동원해서 가해자를 책임에서 벗어나게 하는 변호사, 금력, 권력을 지닌 사람들을 변호해 그들이 책임을 지지 않도록 하는 변호사. 이런 사람을 변호사라고 할 수 있나? 사전적 정의에 따르면 변호사라고 할 수 있겠지. 법률에 관한 업무에 종사하는 사람이니까. 이런 변호사들과 구분하기 위해 '인권변호사'라는 말을 쓰기도 했다. 


'인권변호사'하면 정의를 위해 일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먼저 드는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변호사라면 당연히 정의를 위해 일해야 하지 않을까, 또 변호사라면 한 사람의 억울한 사람이 나오지 않게 해야 하지 않을까, 그런 사람을 변호사라고 한다면 굳이 '인권'이란 말을 붙일 필요는 없다. 변호사는 모두 사람의 인권을 위해야 하기 때문에.


이 글의 저자는 그래서 인권 변호사라는 말을 거부한다. 또한 자신은 거창한 사명감 때문에 피해자를 위한 일을 한다고 하지 않는다. 그냥 자신의 일이기 때문에... 그것이 잘하는 일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적어도 나는 이 말에 동의한다. 변호사라면 당연히 다른 사람의 억울함을 풀기 위해서 일을 할 테고, 그렇게 하다 보면 자연스레 인권은 기본이 될 테니까. 또한 변호사 역시 자신이 가장 잘하는 분야, 또 자신의 마음이 가는 분야에서 능력을 발휘할 테니, 그런 변호사여야 한다.


이 책을 읽어보면 많은 피해자가 나온다. 그들이 겪어야 했던 일, 쉽게 드러내지 못했던 일들을 어렵사리 공론화 했는데 돌아오는 반응이 그들을 더욱 힘들게 할 때, 함께 있어주는 변호사가 있다는 것은 얼마나 힘이 되겠는가. 그런 힘이 되어주는 변호사가 바로 이 책의 저자다. 그러니 그가 '피해자를 위한 일'을 주로 한다고 하는 말을 수긍할 수 있다.


피해자의 아픔에 공감하고 그것을 법률로 대응할 수 있게 해주는 사람. 마음이 없을 것 같은 법에 마음을 담으려고 하는 사람, 그런 사람이 좋은 변호사이지 않을까 싶은데, 이 책의 저자는 그렇게 법에 마음을 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 사회에 이런 변호사들이 더 잘 드러나야 하지 않을까. 힘이 있는 사람들을 변호하는 변호사가 아니라 법정 안으로 쉽게 들어오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한 변호사. 하여 '법에도 마음이 있'(250쪽)고 믿는 변호사들이.


이런 변호사들로 인해 법은 특정인들만이 다루는 분야가 아니라, 우리 모두가 법의 보호를 받는 존재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앞에 읽었던 문형배 전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의 [호의에 대하여]에도 나오듯이 착한 사람들이 법을 알아야 하고, 착한 사람들이 법의 보호를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런 변호사들이 많다면 '피해자들을 위한 일을 하는 변호사'이기 전에 '피해자가 나오지 않게 하는 변호사'라는 말을 듣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한다.


법정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을 위해 일을 하는 변호사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는 것만으로도 이 책을 읽은 보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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