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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담서림(道談書林)

  [죽편]의 감동을 잊을 수가 없다. 그 짧은 시에 그토록 많은 시간이 담겨 있다니... 


  시란 말의 절제, 그 절제 속에서 더 많은 말들을 하는 것. 우리가 평생을 살아도 과연 할 말을 다할 수 있을까?


  '찰나'라는 말, 시간은 한없이 짧을 수도 있는데, 그 짧음이 영원으로 이어지고 있으니, 시간은 서로가 서로를 연결해 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빛이 파동이냐 입자냐 하는 논쟁이 있었듯, 시간이 연속이냐 불연속이냐는 논쟁도 있을 수 있지만 어느 하나로 정할 수 없는 것이 빛과 시간 아니겠는가.


시도 마찬가지다. 무어라 딱 정해서 하나의 틀에 가둬둘 수 없는 것. 그것이 바로 시 아닌가. 그래서 서정춘의 시를 읽으면 짧은 시 속에서 더 긴 인생을, 더 많은 삶을 만나게 된다.


시인의 말이 마음에 치고 들어온다.


'아하, 누군가가 말했듯이 / 나도 "시간보다 재능이 모자라 더 짧게는 못 썼소." (5쪽)'


하, 더 짧게 못 써도 좋다. 황지우의 '묵념, 5분 27초'처럼 아예 백지가 되지 않아도 좋다. 서정춘의 시는 충분히 짧다. 그리고 충분히 길다.


첫시 '랑'에서 말한 것처럼, 서정춘의 시는 시와 우리를 이음새 좋게 이어지고 있다. 시랑 나랑 우리랑 사회랑 세계랑 우주랑, 이렇게 이어주고 있는 시들을 읽으면 짧음 속에서 긴 여운을 느끼게 된다. 좋다. 그 말밖에는.


 랑


랑은

이음새가 좋은 말

너랑 나랑 또랑물 소리로 만나서

사랑하기 좋은 말


서정춘. 랑. 도서출판 b. 초판 1쇄. 9쪽.


이렇게 우리는 이어짐을 경험하지 않았던가. 그러한 경험이 있었기에 서정춘의 이 시가 더 마음에 다가오는지도 모른다.


우리가 최근에 겪었던 탄핵 정국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잘 이어져 있었던지... 시인 역시 시를 통해 또 행동을 통해 함께 이어져 있었기에 이러한 '랑'을 노래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한다. 2016년 탄핵 정국을 시인은 이렇게 바라보고 있었다.  


  그날


2016년 10월 26일부터였다

광화문 촛불 혁명 광장에서

내 촛불이 힘껏 빛나 보였을 때

나여, 그날만은 비로소 시인이었다


서정춘. 랑. 도서출판 b. 초판 1쇄. 31쪽.


하아, 우리 모두는 이때, 그리고 반복된 탄핵 정국에서 시인이었다. 우리는 모두 '랑'으로 연결된 사람들이었다. 


시도 짧고 수록된 시도 많지 않지만, 그 속에서 더 많은 것들을 바라볼 수 있게 해주는 시집이다. 읽으니 그냥 마음에 물결이 인다. 너랑 나랑 우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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