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로 '캣츠'의 원작. 원제는 '노련한 고양이에 관한 늙은 주머니쥐의 책'이라고 한다.
시 '황무지'로, 아니 황무지의 한 구절인 '4월은 가장 잔인한 달'이라는 구절로 잘 알려진 작가.
그가 쓴 고양이에 관한 시집.
쉽게 읽을 수 있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그러면서 이 고양이들이 바로 우리 사람들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각양각색의 사람들. 제 멋에 겨워 사는 사람들. 정말 이렇게 다양한 삶을 사는 고양이들과 마찬가지로 우리 사람들도 서로 다른 삶을 살고 있구나.
이들 고양이의 삶을 어떤 삶이 더 좋고 어떤 삶은 안 좋은지 이야기하지 않고, 그 삶들을 누리는 모습을 표현한 시들.
어떤 고양이는 교양이 있고, 어떤 고양이는 즐기고, 어떤 고양이는 사고를 치고, 어떤 고양이는 질서를 유지하려 하는 등등...
뭐 삶을 생각하지 않아도 이 시집에 나오는 고양이들을 만나는 재미만도 쏠쏠하다. 그 중에 특별히 정이 가는 고양이도 있을 테고.
고양이가 사람을 집사로 선택한다고 하는데... 그런 점을 떠나서 많은 사람들이 고양이와 함께 생활하고 있기도 하고, 도시 주변에서는 들고양이들도 많이 보이고.
자기 삶을 나름대로 충실히 살아가고 있는 이 고양이들의 모습에서 한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발견하기는 어렵지 않으니...
재미있게 읽으면서 무언가를 생각할 수 있다는 것. 그것이 문학이 주는 즐거움일 수 있음을, 이 시집을 읽으며 느꼈으니...
또 시집 뒤에는 영어 원문이 있어서 번역한 시와 비교하면서 읽어도 좋고... 그리고 첫시와 마지막 시를 생각하면서 관계를 어떻게 맺어야 할 것인지를 생각해도 좋다.
첫시는 '고양이 이름 짓기'이고 마지막에 실린 시가 '모건 고양이, 자기 소개하다'인데 사실 첫시와 어울려 끝시라고 할 수 있는 시는 이 시 바로 앞에 실린 '고양이에게 말 걸기'라고 생각한다.
이름을 짓는 것은 김춘수의 시 '꽃'을 떠올리지 않더라도 상대와 관계를 맺는 처음이 된다. 그냥 "저기요."라고 불분명한 호칭으로는 관계를 맺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기 때문에 정확한 이름, 아니 상대가 원하는 이름을 부를 수 있어야 함은 관계맺기의 기본이다.
'말로 할 수 없는, 말로 하되 / 말로 표현할 수 없는 / 깊고 불가해한 단 하나의 이름'('고양이 이름 짓기'에서. 12쪽)을 아는 깊은 관계로 나아갈 수 있어야 한다. 이 점을 모르고 대충 이름을 붙이거나 부르면 관계는 좋아질 수가 없다.
그러나 이름을 부를 수 있으려면 인정을 받아야 한다. 그 인정을 받는 과정을 '고양이에게 말 걸기'라는 시에서 보여주고 있다.
설령 이름을 안다고 해도 함부로 먼저 부르지 말 것. 왜냐하면 아직 친한 관계가 되지 않았으니까. 그래서 먼저 서로의 마음을 여는 과정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 즉 자신의 호의를 인정받을 때까지 기다리는 자세.
'고양이에게 믿을 만한 / 친구로 인정받으려면 / 존경의 표시가 필요하니까요'(고양이에게 말 걸기'에서. 80쪽)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과정도 그렇지 않은가. 무턱대고 관계를 맺으려 하는 것은 요즘 말로 '스토킹'이 될 수 있다. 제대로 된 이름과 관계 맺기에 실패한 경우다.
그러니 상대를 존중하고, 상대의 마음이 열리길 기다리고, 그 다음에 서로가 원하는 이름들로 관계를 맺어가는 것, 우리 사람 사회도 그렇지 않은가.
그래서 이 '캣츠'라는 시집, 고양이의 이야기지만 바로 우리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뮤지컬 '캣츠'를 보고 싶단 생각이 들게 만든 시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