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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담서림(道談書林)
  • 너무 늦은 시간
  • 클레어 키건
  • 15,120원 (10%840)
  • 2025-07-03
  • : 27,058

세 편의 소설이 실려 있다. 원작에 '여자들과 남자들의 이야기'라고 부제가 달려 있다고 하는데, 번역본에는 그 문장이 나와 있지 않다. 책표지에 있는 클레어 키건에 관한 설명에 나와 있다. 번역본에도 이 부제가 달려 있으면 소설을 좀더 잘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수도 있겠단 생각을 하는데...


세 편의 소설에 모두 남녀가 등장한다. 두 편은 여자가 서술자로 등장하고, 한 편은 남자가 서술자로 등장한다. 남자가 서술자로 등장하는 '너무 늦은 시간'을 보면 강자들은 자신들이 어떤 행위를 하는지 의식하지 않는다는 점을 알 수 있다.


그냥 당연하다는 듯이 행동하는데, 그러한 행동이 다른 존재에게 고통을, 불만을 유발할 수 있다. 그런데 자신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또는 장난, 농담이었다는 식으로 행동과 말을 하기도 한다. 여기에는 상대의 감정을 느껴보려는 자세가 결여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너무 늦은 시간'의 주인공 '카헐'이 바로 그렇다. 여성에 대해서는 자신에게 필요한 만큼만 생각한다. 자기를 편안하게 해주면 좋고, 자신을 조금이라도 귀찮게 하면 싫다. 싫은 정도에서 그치면 그나마 다행인데 이것을 비하하는 말로 표현을 한다.


그러한 언어에는 자신의 세계관이 담겨 있는데, 이는 세상은 남자라는 자신을 중심으로 돌아가야지 여성이 중심이 될 수는 없다는, 여성은 남성의 편리를 위해서 존재한다는 생각이 담겨 있다.


지금이 어느 시댄데?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아니다. 여전히 불안에 시달리는 존재, 유리 천장에 갇혀 있는 존재는 남성보다는 여성이다. 여성은 그러한 위험을 늘 생각하고 있지만 남성은 그렇지 않다는 데서도 알 수 있다.


이 점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고 행동하는 카헐을 통해서 알 수 있는데... 남동생과 함께한 장난, 과연 이것이 장난인지도 의문이지만, 그러한 장난을 웃음으로 넘기는 아버지의 모습. 여기에 여성의 자리는 없다.


자신들을 위해 음식을 차린 엄마가 앉기도 전에 식사를 하는 모습도 그런데, 엄마가 앉으려 하자 의자를 빼서 넘어뜨리다니... 그것을 야단치지 않는 아버지. 아니 그렇게 할 생각을 한 아들 둘. 이는 자신들의 행동에 대해서 생각해 보지 않았던, 나중에 카헐이 그때 아버지가 다르게 했더라면 하지만, 그것은 잠시고, 그는 아버지와 같이 행동하는 사람이 되어 있다. 


이런 그의 모습을 통해서 남자가 무의식으로 하는 말이나 행동이 여자에게는 상처가 될 수도 있음을, 그리고 차별의식이 체화되어 있는지를 살펴봐야 한다. 나는 과연 '카헐'과 얼마나 다른가 하고.


'길고 고통스런 죽음'에는 여성 서술자가 등장한다. 작가다. 우리 말로 하면 작가의 집에 들어가 창작활동을 하려 한다. 그런데 한 남성이 방문한다. 다짜고짜. 그는 마치 권리를 빼앗긴 것처럼 말하고 행동하는데... 


아니, 작가가 글만 쓰고 있나? 작가의 방에 들어가는 이유는 다른 사람의 간섭 없이 자신만의 속도로 글을 쓰고자 함이 아니던가. 그런 과정에서 무엇을 하던지 그건 남이 관여할 사항이 아니다.


방 안에 틀어박혀 글만 써야 한다고 생각하면 그것은 작가라는 존재에 대한 고정관념에 빠져 있는 것이다. 그런데, 과연 그 남성이 남성 작가에게 그렇게 행동했을까? 아마, 아닐 것이다. 여성 작가이기 때문에 온갖 꼬투리를 잡으려 들었을 것이다.


여기서 클레어 키건의 작품이 지닌 장점이 나타난다. 복수를 한다. 어떻게 작가답게 작품으로... 그래서 제목이 된 '길고 고통스런 죽음'은 작가의 작품에 나타나는 일이 된다.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남의 영역을 침범하고 함부로 말한 사람을 응징한다.


'남극'은 좀 섬뜩하다고 할 수 있는데, 소통하지 못하는 관계는 얼어붙은 남극과 같을 수 있음을 생각하게 한다. 이 소설을 일탈 행위를 하는 여성에게 닥친 비극으로 읽을 수 없는 것이 '친절'에 대해서 생각하기 때문이다. 친절을 사랑이라고 해도 좋다. 자신은 사랑한다고 하지만, 그것이 상대에게는 지옥과도 같을 수 있음을.


친절한 남성이 등장한다. 그런데 그 친절이 문제다. 상대를 배려하는 친절이 아니라 자신의 욕구를 채우기 위한 친절이다. 즉 상대를 자신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존재라고 여기고, 그 존재를 자신에게 끌어오기 위한 친절일 뿐이다.


이런 친절이 여성에게 어떤 결과를 일으키는지를 소설의 후반부에서 보여주고 있는데, 이는 친절이 아니라 욕구를 충족하기 위한 수단일 뿐이라는 것을, 상대에 대한 존중이 없는 친절은 친절이 아님을 보여준다.


이렇게 세 편의 소설에는 남녀가 나오지만 이 남녀는 평등하지 않다. '여자들과 남자들의 이야기'라고 하지만 남성 중심으로 돌아가는 관계에서 어떤 일들이 벌어지는지를 살펴보게 하는 소설이다.


클레어 키건의 소설에 대한 기대를 하고 있었는데, 역시 클레어 키건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했지만, 전에 읽었던 소설에서는 어떤 밝음, 따스함 등을 느낄 수 있었다면, 이 소설집에서는 어긋난 관계에 누가 책임이 있는가, 그리고 그렇게 어긋나지 않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생각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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