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장'에서 우리는 많은 것을 경험했다.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서로를 존중하는 모습을 보이고, 다른 사람의 의견을 경청하는 자세를 지니기도 했다. 그렇게 광장에서 연대를 통한 존중으로 혐오를 이겨낼 수 있었다.
그때의 '광장'에는 각기 다른 목표들이 있었겠지만 윤석열 탄핵이라는 한 가지 목표는 서로 공유했다. 그리고 이루었다. 그렇다면 그 다음에는 어떻게 할까?
'광장'에서 보여줬던 모습들이 '광장'에서 끝나지 않고 정치로, 우리 삶으로 다시 이어져야 한다. 즉 그때의 '광장'은 지금 우리 삶의 '광장'으로 다시 펼쳐져야 한다. 그 '광장'에서 우리는 서로를 존중하고 연대해야 한다.
그런데 과연 그런가? '광장'을 분석하면서 '광장'의 연대에서도 분열을 찾고, 그것을 확대하려고 하는 사람들도 있지 않았는가? '광장'에는 특정 성별, 특정 연령 대의 사람들이 많았다고, 어떤 집단은 잘 보이지 않았다고... 그렇게 단정적으로 말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것이 무슨 의미일까? '광장'은 특정 성별, 특정 연령 대의 사람들만의 것이 아니었다. '광장'은 모두의 것이었다. 이때 '모두'에는 '다름'이 포함되고, '다름'에는 '이해와 포용'이 들어가게 된다.
'광장'의 기본 조건은 '다름'이다. '다름들'이 모여 함께하는 곳이 바로 '광장'이다. 이런 '광장'은 바로 정치가 이어받아야 한다. 정치 역시 같은 존재들이 모여 자기들 뜻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존재들이 모여 무언가를 합의하고 실행해가는 행위가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즉 '광장'은 한때의 '광장'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 '광장'은 우리 삶 속에서 펼쳐져야 한다. 우리는 계속 그러한 '광장' 속에서 살아가고 있으며, 이 '광장'에서 서로 연대하며 살아가야 한다.
이 책은 그러한 '광장 이후'에 대해서 논의하고 있다. 네 사람이 각기 자신들의 '광장 경험'을 토대로 앞으로 나아갈 길을 제시하고 있다. 그래서 제목이 '광장 이후'다.
우리의 '광장 이후'는 대통령 한 사람을 바꾼 것에서 그치지 않는다. 정치의 영역, 삶의 영역에서 '광장'이 계속 살아 숨쉬게 하는 것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광장'에 대한 분석이 필요하다.
과연 '광장'에 대해서 제대로 파악하고 있었던가. 광장을 이야기하면서 특정 집단을 배제하지 않았던가. 왜 너희들은 그래 하면서 그들을 우리와는 다른 존재로 밀어내지 않았던가.
이 책에서는 특히 2030 남성들을 대상으로 한 주장에 대해서 반론을 제기한다. 2030 남성들이 극우화 되었다고, 보수화 되었다고 하는 말들이 많은데, 2030 남성들을 그렇게 한 집단으로 묶을 수 있는지부터 의문이고, 보수화된 남성, 극우화된 남성이 있다고, 그 세대 전체가 그렇게 변했다고 주장하는 것에도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통계를 보면 2030 남성들의 반이 넘는 사람들이 탄핵에 찬성했으며, 그때까지 잘못된 정책에 대해서 비판적이었음을 이 책에서 보여주고 있는데, 그럼에도 왜 그들을 싸잡아서 보수, 극우화 했다고 하는지, 그런 주장이 잘못되었음을 자료들을 통해 반박하고 있다.
또한 그렇게 하나로 묶어 비판하기는 쉽지만, 그들을 끌어들여 '광장'이 계속되도록 하는 노력을 과연 하고 있는지를 이 책을 통해서 의문을 제기한다. 그들이 처한 지금의 현실이 매우 불안정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불안정한 삶이 안정된 삶으로 바뀔 수 있도록 그들의 의견을 듣고, 정책을 마련해서 실행하는 노력을 해야 함에도 과연 그렇게 하고 있는지...
'광장 이후'의 시간을 살아가고 있지만 과연 우리는 '광장 이후'의 삶을 살고 있는지, 어쩌면 다시 '광장 이전'의 삶을 살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게 하는 책이다.
사람들이 '광장'에 나온 지 이제 거의 한 해가 다 되어 가는데, 우리는 '광장 이후'를 맞이하지 못하고 지금도 '광장 이전'처럼 혼란스러운 상황에 처해 있지는 않은지...
그래서 2030 남성들을 비판함으로써 자신들은 다르다는 안도감 속으로 도피하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야 한다.
결코 다른 존재를 배제해서는 안 된다. '광장'이 보여준 모습은 배제가 아니라 포용 아니던가. "같아지자"가 아니라 "다르지만 함께할 수 있다" 아니었던가. 그런 '광장'을 우리의 삶에서 펼친다면, '광장 이전'을 주장하고 있는 존재들의 목소리는 지워질 것이다.
이 책의 저자 중 이승윤의 글에 이런 말이 나온다.
'사회구조에 대한 불신이 심화되고 이슈 중심 정치참여가 확대되는 상황에서는 '누가 더 손해를 보고 있는가'를 둘러싼 경쟁, 대립, 갈등을 전략적으로 활용하려는 정치세력이 활성화되기 쉽다'(214쪽)
지금도 그러하지 않은가. '갈라치기'란 말이 심심치 않게 들리고 있으니... 이 '갈라치기'는 '광장'과 가장 어울리지 않는 말 아니던가. '광장'이 더하기의 정치라면 '갈라치기'는 빼기의 정치다. 그리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빼기가 아니라 더하기'다.
우리가 바라는 '광장 이후'는 '갈라치기'를 하는 '빼기'를 자신들의 정책으로 삼는 이런 정치세력에서 휘둘리지 않는 사람들이 정치의 주체로 등장할 때 이루어진다. '광장과 더하기의 정치'를 하는 사람들이 주체가 되는 사회.
그런 점에서 아직은 '광장 이후'가 오지 않았다고 할 수 있는데, '광장'을 경험한 우리들은 다시 '광장 이전'으로 돌아갈 수는 없다. 그러니 이제는 치열하고 세밀하게 '광장 이후'를 설계하고 실행해야 한다.
이제 '광장'을 정치와 우리의 삶으로 가져와야 한다. 그것이 바로 '광장 이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