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편의 단편소설들. 커트 보니것이 유명해지기 전에 쓴 소설들. 이미 그가 어떤 소설을 쓰게 되는지를 알 수 있게 하는 소설들.
다양한 형식과 내용이 이 작품집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어느 한 쪽으로만 치우치지 않고 다양한 글쓰기를 하고 있다고 해야 할까.
그러면서도 보니것 특유의 유머와 풍자가 담겨 있고, 또 평화 사상이 담겨 있다. 미국과 소련의 냉전 시기를 다룬 소설 '유인 미사일'을 보면 냉전시기에 희생당한 사람들의 모습,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대를 불구대천의 원수로 여기지 않고 인간으로 대하는 모습이 잘 드러나 있다.
소련과 미국의 조종사(우주비행사)들이 우주에서 충돌해 죽은 다음, 그 아버지들이 편지로 자신들의 마음을 표현하는 내용으로 되어 있는 소설. 전쟁광인 군인들이 아니라 냉전으로 피해를 보는 사람들을 다룸으로써 보니것은 전쟁은 다시는 일어나서는 안 됨을 이야기하고 있다.
이러한 반전-평화를 다루는 소설로는 '반하우스 효과에 관한 보고서'가 있는데, 초능력이라고 할 수 있는 염력에 대해서 다루고 있다. 그런데 인간이 다른 존재를 다룰 수 있는 초능력이 있다면 어떻게 할까?
다른 나라의 무기를 파괴하는 쪽으로 사용할까? 그런데 왜 다른 나라의 무기를 파괴하려 하지? 그것은 다른 나라를 적국으로 간주하고, 자신들의 평화를 위협한다는 인식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른 나라의 무기를 파괴하면 그 나라는 가만히 있는가? 그 나라는 침략받았다고 생각해 다른 보복 수단을 강구하지 않겠는가. 이러면 서로가 무기를 증대할 수밖에 없고, 서로서로 적대행위를 멈출 수 없게 된다.
끝없는 적대행위, 무기 개발로 치달을 수밖에 없는 현실에 맞닥뜨리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냉전시대 핵무기 개발의 역사 아니던가. 평화는 무기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힘의 균형이라고 하지만, 그 균형을 이루기 위해 더 많은 무기들을 개발하고, 거기에 많은 희생이 따른다. 보니것은 반하우스라는 초능력(염력)을 지닌 사람을 등장시킴으로써 인간이 전쟁을 위해 일하면 안 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자, 보니것 특유의 풍자를 보자. 특출한 능력을 지닌 반하우스 교수는 세계 평화를 위해 무기를 파괴하기로 한다. 특정한 나라가 아니라 모든 나라의 무기를...
'그날 이후, 당연히 반하우스 교수는 전 세계의 무기를 체계적으로 파괴해 오고 있고 급기야 지금은 돌멩이나 뾰족한 막대기 외에는 군대를 무장할 만한 것이 거의 없다. 그의 활약이 정확히 평화로 귀결되지는 않았고 오히려 '폭로 전쟁'이라 불릴 수 있는 무혈의 재미있는 전쟁을 촉발시켰다. 모든 나라는 적국의 간첩들로 넘쳐 나고 있으며 이 간첩들의 유일한 임무는 군사 장비의 정확한 위치를 찾아내는 것이다. 그런 뒤 그 군사 장비를 언론에 보도해 반하우스 교수의 주의를 끌기만 하면 그 군사 장비는 즉각 파괴되었다.'('반하우스 효과에 관한 보고서' 272쪽.)
참 통쾌한 풍자다. '무혈의 재미 있는 전쟁'이라니... '폭로 전쟁'이라니... 마치 "쟤가 그랬어요."라고 일러바치는 아이들의 모습을 연상시키는 표현. 일반 시민들에게는 피해를 입히지 않는, 반하우스 교수의 행동.
그럼 세계 권력자들은 어떻게 행동할까? 오히려 반하우스 교수의 행동에 찬사를 보내고, 자신들이 무기를 만들지 않겠다고 선언해야 하지 않을까? 아니, 그렇게 하지 않는다. 그들은 어떻게든 반하우스 교수의 거처를 찾아내 그를 제거하려 한다. 이것이 현실이다.
이런 현실 속에서 보니것은 전쟁이 없어지지는 않겠지만, 그렇다고 평화를 위한 노력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을 거라는 믿음을 '반하우스 교수는 죽을 것이다. 하지만 반하우스 효과는 아니다'('반하우스 효과에 관한 보고서'. 275쪽)라고 표현하고 있다.
전쟁으로 인한 비극을 겪은 작가인 보니것. 그는 평화를 염원한다. 전쟁으로 인해 얼마나 많은 사람이 고통받는지를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어린아이들에게는. 전쟁으로 인해 겪게 되는 어린아이들의 고통을 '난민'이라는 소설을 통해 보여주고 있으니... 부모가 누군지도 모르고 살아가는 아이들. 자신의 아빠를 찾으려는 모습을 통해서 아이들이 겪는 고통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이 소설집에는 아이에게 관심을 보이는 소설이 몇 편 있다. 미래를 살아갈 세대가 현재에 고통을 받는 것을 용납할 수 없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거짓말'이란 소설을 보면 명문고 입학과 관련된 일들이 나타나는데, 우리나라 역시 '특목고'라고 해서 그러한 일을 겪고 있다. 여기에 소위 명문가라고 하는 사람들의 행태. 하지만 보니것은 명문가 사람들도 염치가 있음을 소설을 통해 보여주고 있는데... 부모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 아이가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고, 그것으로 인해 고통받는 모습과, 어른들의 위선을 잘 드러내고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염치 있는 명문가 사람의 모습인데... 우리는 과연 그런가?
우리나라에서 잘나간다고 하는 집안 사람들, 과연 염치가 있는가? 그들이 자식들을 위한답시고 한 행태들을 보라. 예의, 염치는 사전에만 존재한다. 적어도 보니것은 명문가라면 그래도 염치는 있어야 한다는 점을 등장인물인 리멘젤 박사의 모습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자식의 문제에 이성을 잃고 특별 입학을 부탁하는 그의 모습. 그러나 거절당하고서야 자신이 잘못했음을 깨닫는 그의 모습을 통해서 그나마 염치가 있는 명문가 사람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데... 그는 그래서 '이제 우린 더 이상 여기에 오지 못할 것 같아요.'('거짓말'. 361쪽)라고 하고 있으니... 우리나라 있는 집안 사람들에게서도 이런 태도를 기대한다면 무리일까?
또한 아이를 쉽게 포기해서는 안 된다는 것. 세상에 문제아는 없다. 문제 어른, 문제 사회가 있을 뿐이다라는 말을 연상시키는, 또 최근에 나온 클레어 키건의 [맡겨진 소녀]를 연상시키는 '아무도 다를 수 없던 아이'라는 소설도 많은 여운을 준다. 그 아이의 마음을 여는 것은 어른과 사회의 몫이라는 것을...
이밖에 다른 소설들도 좋다. 환상적인 내용의 소설도 있고, 일본 소설가인 가카야 미우가 쓴 [70세 사망법안, 가결]이란 소설을 연상시키는, 생명 연장으로 사회가 겪게 되는 모습을 그린 '내일, 내일, 그리고 또 내일'이란 소설도 지금 현대 의료과학이 추구하는 현실에 비추어 읽어볼 만하다.
돈만으로 자신의 행복을 사지는 못한다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고자 하는 사람의 모습을 그리고 있는 '포스터의 포트폴리오'라는 소설도 돈이 인생의 궁극적 목표가 아니라는 것을 생각하게 하고...
다양한 소설들을 통해 다양한 주제들을 우리에게 선보이고 있으니... 보니것의 초기 단편들이지만 그의 소설 세계를 알 수 있게 해주는 소설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