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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담서림(道談書林)
  • 토막 난 우주를 안고서
  • 김초엽 외
  • 15,300원 (10%850)
  • 2025-06-18
  • : 24,244

한국과학문학상 수상작가들의 작품을 모아 놓은 작품집이다. 다섯 작가의 소설을 엮었는데, 김초엽, 천선란, 김혜윤, 청예, 조서월이 참여했다.


과학문학상 작품을 쉽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SF소설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어떤 사람들은 장르 소설이라고 하는데, SF소설이라는 용어에 영어가 들어가 있다면, 과학문학상이라는 이름으로는 과학적인 상상력이 담긴 소설이라고 더 쉽게 이해할 수도 있겠다.


첫소설이 김초엽의 '비구름을 따라서'라는 소설인데, 이 소설에는 여러 우주가 나온다. 다른 우주에서 온 물건을 모으는 사람. 다른 우주를 상상하고, 그 우주로 가고 싶어하는 사람. 가끔 우리도 그런 상상을 하지 않나. 여기 사는 나 이외에도 다른 우주에 사는 내가 또 있다는.


같은 나일 수도 있지만 다른 나일 수도 있는데, 그런 우주를 상상한다면, 지구에 머물렀던 시선을 광활한 우주로 돌릴 수 있다. 또한 자신의 다양한 모습을 발견할 수도 있고. 그렇다. 나는 어떤 하나로 고정된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 여러 존재로 늘 변화하는 존재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내가 지금 지니고 있는 물건은 당연히 지구상에서 인간들 또는 다른 존재들이 만든 것이지만, 가끔은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존재들이 있지 않은가. 그것들에 상상을 붙인다면, 다른 우주를 상상할 수 있고, 그렇게 다른 우주에서 넘어온 것들이 우리 곁에 있을 수도 있음을.


그런데 이 소설에서는 그렇게 넘어온 물건들은 사소한 것들이다. 흔한 것들, 그래서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들. 그렇다면 소중한 존재는 이 우주에서 다른 우주로 넘어갈 수가 없다. 왜냐하면 소중하다는 것은 자신이 잃어서는 안 된다고 여기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김초엽의 소설을 읽다가 이런 경우가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 가끔 어떤 물건이 없어졌는데 도저히 찾을 수 없을 때, 어느 순간 어디에서 나오겠지 했는데, 끝까지 찾지 못하는 경우, 이런 경우를 다른 우주로 그 물건이 갔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러한 물건들은 어느 순간 내게는 소중함이 아니라 무심함으로 대했던 것들이었을 것이고, 진짜 소중하게 여기는 것들은 그렇게 잃어버리지 않았으니...


하지만 그러한 것들을 모으는 사람, 다른 우주에서 온 것들을 발견하는 사람은, 익숙한 것에서도 낯섬을 찾고, 고정된 자신의 모습이 아니라 변화하는 자신을 살아가는 사람이라는 생각. 이것이 김초엽 소설을 읽으며 든 생각이었다.


천선란 소설에는 좀비가 등장한다. 그런데 이 좀비들(?)을 통해서 이상하게 사랑을 느낀다. 너무도 사랑하는 존재들. 그래서 떠날 수 없는 좀비. 좀비가 되어 과거를 잊을 수 있기에 기록으로 남겨놓는 사람. 그런 사람과 끝까지 함께 하는 사람. 그들을 좀비라고 한다면... 참... 현실에서 살아가는 인간들 중에 좀비보다 더한 사람들도 있지 않을까.


좀비하면 과거를 잊은, 오로지 피에만 반응하는 그런 감정이 없는 존재로 생각하는데... 그래서 서로 사랑했던 사람이라도 좀비가 되면 물어뜯으려 덤벼들기만 하는데... 이 소설은 그렇지 않다. 좀비에게서 사랑을 발견한다.


아무리 비극적 상황에 처했더라도 사랑은 그런 비극을 넘어설 수 있음을, 좀비에 대한 관점의 변화라고 해야할까. 여하튼 사랑을 느끼게 하는 좀비 이야기 '우리를 아십니까'


김혜윤의 '오름의 말들'은 과학소설이지만 우리 현실의 모습이 그대로 그려졌다.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 다른 존재들을 아무런 망설임없이 희생시키는 존재들. 그런 모습을 우리 사회에서도 보여준 이들이 있었는데...


이런 이들이 있다면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해, 그것을 비록 남들이 알아주지 않더라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으니... '오름'이라고 이름지은 외계생명체들과 대화하기 위한 노력, 그러한 노력이 일거에 성과를 거두지 못하자 지원이 끊기고 심지어는 그런 존재들을 구경거리로 삼으려는 존재들. 그런 존재와 정책에 맞서는 '오름'과 대화하려는 사람들. 


그래서 이 소설은 슬프다. 여전히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거는 사람들이 있음을 알기에...


청예의 '아모 에르고 숨'은 사랑에 대해서 생각하게 한다. 진정한 사랑은 무엇일까를 복제인간과의 관계를 통해서 생각하게 한다. 그러면서도 결말에 반전이 있는데... 이것이 진정한 사랑일 수도 있음을... 진정한 사랑은 구속이 아니라 해방임을, 상대의 행복을 위해 무엇을 할까를 생각하는 일일 수도 있음을.


여기에 한발 더 나아가면 복제인간의 문제에 대해서 생각할 수 있다. 과연 복제인간은 인간의 대용품인가? 복제인간을 폐기한다고 하는 말을 할 수가 있을까? 그런 용어를 쓰는 것 자체가 문제임을...


조서월의 'I'm Not a Robot'은 지금 이 시대에 인간임을 증명하게 하는 캡챠에서 비롯된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제목이 된 이 문구를 인정받기 위해 숫자는 물론이고 사진 속에서 제시된 과제를 제대로 수행해야만 한다. 그런데 가끔 제시된 과제를 제대로 이해 못할 때가 있다. 여기서 착안한 소설이다.


다른 사람과 소통하고 싶지만 외진 곳에 홀로 떨어져 있기에 인터넷을 통해 자신이 쓴 소설을 보내야 하는데, 번번이 로봇이 아니라는 인증에 실패하는 사람. 오히려 그런 인증을 할 수 있는 로봇.


외진 곳에서 쓸쓸한 풍경 속에서 인간과 로봇이 소통하는 모습이 이 소설에 보이는데, 황혼녘 쓸쓸함 속에서 서로를 위하는 모습이 느껴지는 소설이다. 그럼에도 앞으로 더 많은 기술이 발달하면 이렇게 인간임을 내가 입증하지 못하면 다른 일을 하지 못하는 일이 생길 수도 있는데...


예전에 나 자신임을 인증하기 위해 핸드폰이 꼭 필요한 적이 있었다. 그때는 핸드폰을 지니지 않았는데, 핸드폰으로 문자 인증을 해야지만 나 자신임을 인증할 수 있다고... 세상에 나라에서 발행한 주민등록증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그것으로는 안 된다고... 그래서 결국 나 자신임을 인증하지 못했던 적이 있었는데...


이런 경우가 바로 캡챠에서 발생할 수 있다. 하긴 어떤 사람들은 키오스크에서 주문을 하지 못해 결국 원하는 것을 사지(먹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고 했으니, 이것이 과연 인간을 위한 기술발전인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이렇게 다섯 편의 소설들. 각자 다른 배경, 인물, 사건을 다루고 있지만, 그럼에도 공통된 무엇을 찾으라고 하면 '소통'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소통'은 곧 다름을 인정하고 받아들임, 나를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존재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일. 그러면서 나의 일부분과 상대의 일부분이 함께 하는 일 아니겠는가.


'토막 난 우주를 안고서'라는 제목이 그러하지 않은가. '토막 난'이라는 말에서 다름을, '안고서'라는 말에서 함께함을 생각할 수 있으니...


다섯 작가의 작품, 즐겁게 잘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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