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의 시간은 2024년 12월 비상계엄이 선포된 때부터 시작된다. 물론 작가는 꾸준히 일기를 썼으리라. 하지만 이 책은 계엄과 탄핵의 과정을 보여주는 일기로 채워졌다. 탄핵 결정 직후까지...
기억하고 싶지 않지만, 기억해야만 하는 일이 비상계엄이고, 비상계엄부터 시작해 탄핵에 이르는 과정이다. 여기서 우리는 분노를 경험했고, 좌절도 경험했고, 이 땅의 엘리트라는 자들의 본질적인 모습을 발견하기도 했지만, 바로 옆에 있는 사람들에게서 힘을 얻기도 했다.
다름을 받아들이는 모습도 보았고, 각자 자신이 하고 싶은 말들을 통해서 함께하는 모습도 보았다. 추위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봄이 오리라는 희망, 아니 봄을 오게 하겠다는 의지로 견뎌낸 시간들.
그 시간들.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대통령이 바뀌었다고 계엄과 탄핵의 과정이 끝난 것은 아니다. 여전히 주범이 제대로 처벌받고 있지 않고 있으니까. '윤 어게인'이라는 말이 나돌고 있으니까. 비상계엄을 계몽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사람들도 있으니까. 정말 이 나라 몇몇 사람들은 언어의 자의성을 너무 확신하고 있나 보다.
'자의성'에 매달리면 결국 소통에 실패하고 마는데...그들의 말은 자의성에 기댈 것이 아니라 사회성에 기대야 하는데... 이들이 페터 빅셀의 [책상은 책상이다]를 읽어봤으면, 그랬으면 언어의 자의성에 매달리는 것이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 잘 알게 될 텐데.
자신의 행위를 여전히 정당하다고 우기는 자가, 교도소에 있으면서도 그것을 견디지 못하겠다고 보석 신청을 하는 짓을 하고 있는 현실. 그로 인해 얼마나 많은 사람이 가슴을 쓸어내려야 했으며, 엄동설한에 차가운 바닥에 앉아 있어야 했는지... 그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을까? 자신으로 인해 얼마나 많은 사람이 고통을 받았는지를... 지금도 우울한 마음을 지니고 있는지를...
자신이 있는 독방은 그에 비하면 너무도 편안한 곳일 텐데, 도대체 남의 고통, 남의 슬픔을 헤아일 줄 모르고 자기만을 생각하는 그런 아집을 지닌 자를 다시 오게 하겠다고, '윤 어게인'이라고... 나 참.
이 책을 읽어보자. 계엄에 놀라 지체없이 여의도로 향한 작가. 거기서 만난 수많은 사람들. 처음에 다름에 낯설어 하면서 밀어내는 모습을 보이던 사람들이 다름을 다름으로 받아들이는 변화의 과정. 서로가 서로를 위로하고 챙겨주는 모습.
이런 광장의 모습. 또한 다른 광장의 모습. 혐오와 멸시의 눈초리로 쏘아보는 사람들의 이야기도 있으니... 그렇다. 지금도 우리는 몇몇의 성찰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큰소리 치는 현실을 보아야만 한다. 그들이 언젠가 성찰하겠지 하는 가능성을 생각하기는 하지만.
작가는 '가능성만을 바랄 수 있을 뿐인 세계는 얼마나 울적한가. 희망을 가지고 그것이 이루어진다는 것을 믿기가 너무 어려운 세계, 그 어려움이 기본인 세계는 얼마나 낡아빠진 세계인가. 너무 낡아서, 자기 경험에서 아무것도 배우지 못하는 세계.'(171쪽)라는 표현을 하고 있는데, 이런 낡은 세계 속에서 사는 사람들은 얼마나 비참한지... 그들에게는 배움이 없다. 그냥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만 생각하고 행동할 뿐이다.
이 책에 나온 일들에 놀랄 만한 일, 아니 이들에게는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는데, 혐오와 차별로 점철된 말들, 행동들...
열차에서 내려 출구를 향해 올라가는데 우리와 같은 객차를 타고 온 젊은 남성 둘이 갑자기 의기양양한 기색으로 외쳤다. "자, 이제 중공 것들 잡으러 가는 거야."(82쪽)
이들이 지금 명동에서 대림동에서 혐중 시위를 하고 있다. 이들만이 아니라 혐중 시위를 부추기는 사람들도 있으니... 도대체 왜? 차별과 혐오를 버리지 못하고 있으니, 이들에게 보이는 것은 차별과 혐오뿐인가. 아니 특정한 사람, 특정한 나라에 대한 맹목적인 지지도 있으니, 맹신에 제대로 볼 수 없는 눈을 가졌다고 해야 한다. 이들이 살고 있는 세계가 바로 낡아빠진 세계다.
하지만 우리는 이런 낡아빠진 세계를 거부했다. 성찰의 힘으로, 함께함의 힘으로, 새로운 희망의 세계를 만들어가려 하고 있다. 그런 세계, 작가는 '내가 이 세계를 깊이 사랑한다'(172쪽)고 했는데, 나 역시 이런 희망이 있는 세계를 사랑한다. 가능성만 있는 것이 아니라 희망이 있고, 그 희망으로 나를 채울 수 있는 세계를.
그러니 이 일기는 작가의 희망을 보여준다.
'지난 겨울과 봄은
나름으로 삶을 가꾸며 살아도 권한을 가진 몇 사람이 작정한다면 도리 없이 휩쓸리고 뒤흔들릴 수밖에 없는 작은 존재,
내가 그것이라는 걸 실감한 국면이자 계절이었습니다.
또한 나는 작아서 자주 무력했지만
다른 작음들 곁에서 작음의 위대함을 넘치게 경험한 날들이기도 했습니다.
......
훗날 이날들을 돌아보는 데 작음 보탬이 되기를 바랍니다. (189-190쪽)'라고 작가는 후기에서 말하고 있다.
그렇다. 이 일기들은 훗날, 그땐 그랬었지, 그런 야만의 행위들을 우리 시민들이 막아냈지... 그런 일은 용납할 수 없다고... 권력을 쥔 자들이 우리들 삶을 멋대로 조종할 수 없다고.
비록 우리들의 작은 삶들이지만 그것은 우리에게는 가장 큰 삶이고, 이러한 작은 삶들이 모여 우리들의 삶을 제멋대로 빼앗아갈 수 없다고 외친 계엄과 탄핵이 이루어지는 기간에 겪고 느낀 기록. 기억해야만 하는 그런 기록.
마음에 잔잔하게 스며드는 위로. 이 일기는 위로다. 기억이다. 그래서 지금 국회에 있는, 또는 다름 국회에 입성하려고 하는 '국민의 힘'에 소속된 의원, 정당원들이 읽었으면 좋겠다. 그들이 생각하지 못했던 마음이 이 일기에 들어 있으니까.
자신이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마음을 이 책을 통해서라도 알게 된다면, 그렇게 된다면, '국민의 힘'이라는 정당에 속한 사람들도 진정 '국민의 힘'이 무엇이어야 하는지 생각하지 않을까라는 기대를 하면서...
그리고 현재 국회의원인 사람들, 국회의원이 또는 정치인이 되려고 꿈꾸는 사람들, 아니 우리 모두가 이 책을 읽었으면 좋겠다. '작은 일기'가 아니라 '기억 일기'이고, 다시는 이런 일이 되풀이 될 수 없음을 깨닫게 만드는 일기니까. 그렇게 된다면 앞으로 '계엄'같은 짓을 벌일 정치가가 나올 수 없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