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을 보면 다윈을 떠올린다. 다윈이 진화론을 펼치게 만든 곳. 갈라파고스. 학교 다닐 때 핀치 새에 관하여 배운 적이 있다. 고립된 섬에서 다르게 진화한 새. 이 새를 통해 진화의 고리를 발견했다고.
그럼 소설 제목이 갈라파고스면 뭘까? 이 섬에서 일어나는 일? 진화와 관련 있는 사건?
보니것의 소설을 읽으면서 작가의 풍자에 놀라기도 하는데, 이번에 그는 인간의 뇌가 일으키는 사건을 문제삼고 있다. 지나치게 큰 뇌라고 하는데, 이때 지나치게 크다는 것은 자신의 생존조차도 위협할 만큼 인간을 지배하는 뇌라는 말로 해석하면 된다.
이 소설에서 갈라파고스로 가기 위해 모인 사람들이 있다. 그런 여행을 기획한 사람들도 있고, 화려한 유람선에 (군함으로 등록되었다고 한다) 부유하거나 유명한 사람들을 태우고 갈라파고스를 여행하려는 계획.
그러나 세계는 인간의 통제불가능한 뇌로 인해 위험에 빠지게 되고, 원인 모를 질병으로 대다수의 사람이 불임이 된다. 여기에 경제난으로 세계는 전쟁에 돌입하게 되고...
하여 여행이 취소되고 폭동의 혼란 속에서 우연찮게 배에 탄 사람들이 갈라파고스 제도의 한 섬인 산타로살리아 섬에 도착하게 된다. 여기서 이제 이들은 새로운 인류의 시조가 된다. 새로운 인류로 진화하게 된다.
다윈이 갈라파고스에서 핀치 새를 보고 진화론을 생각했음에 소설은 갈라파고스의 한 섬인 산타로살리아 섬에 사람들을 떨쳐두게 된다. 남자 하나와 여자 여럿. 그리고 이들은 다시 대륙으로 나가지 못하는 고립된 생활을 하게 되니... 여기서 인류가 어떻게 진화할 것인가?
소설에서 보니것은 인류는 손이 퇴화하고 지느러미가 발달한 거의 어류와 비슷한 종으로 진화한다고 말하고 있다. 백만 년이 지난 후에 인류의 뇌는 아주 작아지고 손은 없어지고, 바다에 자신들의 생명을 맡기게 되는 종이 되는 것.
이런 과정을 시간 순서대로 이끌어가지 않는다. 백만 년 후라는 것을 미리 전제하고, 인류가 이미 그렇게 변했다는 것을 유령이 된 서술자를 통해 말하고, 그렇게 되기까지의 과정을 종횡무진 왔다갔다 하면서 우리를 이끌어간다.
이런 과정에서 우리는 인류가 인류를 파멸에 이르는 무기들을 개발했고, 그것들이 우연히 사용될 수 있음을, 인류의 파멸이 어떤 큰 결심과 결정적인 순간이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 우연찮게 일어날 수도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인류가 인류를 파멸하게 되는 것은 바로 우리의 뇌가 하는 역할이고, 이러한 뇌를 잘못 사용하는 인간들이 있음을 냉소적으로 보여주고 있는데...
하여 그는 사람들이 죽었을 때 쓰는 말을 이 소설에서도 반복하고 있다. 물론 [제5도살장]에서는 '그렇게 가는 거지.'라는 말을 쓰고 있다면 이 소설에서는 '에이, 할 수 없지 뭐.... 어쨌든 그는 베토벤 교향곡 9번을 작곡할 제목은 아니었잖아.'라는 말을 반복하고 있다.
다른 지식이 아니다. 사람들의 마음을 울리는 음악을 예로 들고 있다. 이는 그가 과학기술이 위험하고, 인류가 반드시 추구해야 할 목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또한 이 소설에서는 반전 사상이 드러나고 있는데, 이를 서술자를 통해서 보여주고 있다.
베트남 전쟁에 참전했던 미국 해병대 출신의 서술자. 그는 스웨덴으로 망명해 배를 만들다 죽는다. 그리고 유령이 되어 인류가 파멸하고 새로운 인류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백만 년을 통해 지켜본다.
이렇게 인류의 파멸과 새로운 인류로의 진화를 다루고 있지만 이 소설은 공포를 자아내지 않는다. 가볍게 웃음을 유발하면서 우리를 이대로 가면 안 된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이것이 풍자의 힘이다.
보니것 특유의 풍자. 반전 사상, 인류를 위협하는 과학기술 만능주의, 잘못된 지도자의 위험성 등을 날카로운 풍자, 그러나 무겁지 않고 경쾌하게 웃음으로써 잘 비판하고 있다.
기계문명에 대한 그의 비판 '백만 년 전, 사람이 하던 일을 최대한 많이 기계에게 넘기려는 그 이해하기 힘든 열의에 대해서 한마디 하자면, 그것이 바로 사람들이 자신들의 뇌가 전혀 쓸모없다고 다시 한번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면 과연 무엇이었겠는가?' (49쪽)라는 말.
지금 우리는 우리의 일을 모두(그렇다. 많이가 아니라 모두다) 넘기려고 하고 있다. 하다못해 인간의 독특한 영역이라는 예술까지도 넘기려 하고 있으니, 보니것이 오래 전에 비판한 모습, 우리의 뇌를 이렇게 스스로 쓸모없다고 인정하는 꼴이 아니겠는지 생각해 보게 된다.
그러면서 이런 뇌를 가진 인간들이 능력 없고 우리를 파멸로 이끌어갈 지도자를 선택하는 모습. 그것을 갈라파고스에 갈 선장을 빗대어 이야기하고 있으니... 지금 우리 사회에도 적용이 되는 말이다.
소설 속의 일이 실제로 벌어지지야 않겠지만 그럼에도 지금 이대로 가면 인류는 서로를 파괴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가 반전, 평화주의자가 된 것도 그러한 전쟁을 겪었기 때문인데, 서술자 역시 베트남 전쟁을 겪은 인물로 설정해서 소설을 이끌어가고 있으니... 여전히 세계는 전쟁 중인데...
그가 소설에서 '나는 이제 백만 년 전 내가 살았던 시대를 '바람직한 괴물들의 시대'라고 부르고자 한다. 그 시대를 살던 괴물 같은 인간들 대부분이 몸보다는 인격 면에서 이전까지 보지 못했던 새로운 종이었기 때문이다'(94쪽)고 하고 있는데, 소설의 배경이 되는 시대는 1986년이다. 과연 지금 우리는 그때보다 더 나아졌는가? 작가의 말을 반박할 수 있는가?
그에 대한 대답이 필요한 때다. 그렇지 않으면 이 소설 속처럼은 아니겠지만 인류 역시 파멸의 길로 한걸음 더 다가갈 것이라는 불길한 생각을 떨치기 힘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