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더 나이트 'Mother Night' 낯선 말이다. 엄마와 밤이라니... 이 말을 붙이면 밤엄마가 된다. 엄마밤이라고 할 수도 있고. 엄마 밤이라고? 밤이 엄마이면 낮은 자식이다. 즉 밤은 낮을 낳은 엄마가 된다. 이를 서문에서 <파우스트>의 메피스토펠레스의 말에서 따왔다고 하는데, 그 말은 '나는 태초에 전부였던 암흑의 일부, 빛을 낳은 밤의 일부이다'(16쪽)이다.
그렇다면 밤을 어둠이라고 보고, 낮을 빛이라고 보면 어둠은 빛을 낳은 엄마와 같다고 할 수 있는데, 이는 우리가 살아가는데 빛과 어둠이 모두 있다고 볼 수 있고, 이러한 빛과 어둠 중에 다른 사람에게 무엇을 보이며 살고 있는가를 생각하게 한다.
하여 소설은 '우리는 가면을 쓴 존재라는 것, 그래서 그 가면이 벗겨지지 않게 조심해야 한다는 것이다'(9쪽)고 하고 있는데, 사람에게는 누구나 양면성이 있다. 이때 가면을 우리가 지켜야 할 어떤 것, 적어도 삶에서 버려서는 안 되는, 잃어서는 안 되는 무엇이라고 하면, 가면을 벗어버린 존재는 자신의 욕망만을 추구하거나, 다른 존재를 오로지 자신만의 판단으로 재단하고 행동하는 존재라고 할 수 있다. 양면성을 지닌 존재가 인간이라는 것을 이렇게 가면으로 표현했다고 보면.
이 양면성을 인정하느냐 하지 않느냐에 따라, 자신을 제대로 인식하고 있는지 아닌지가 결정된다고 할 수 있는데...
소설은 2차세계대전 때 나치의 편에 서서 연설을 한 미국인을 중심으로 펼쳐진다. 그는 나치를 위해 많은 연설문, 광고, 그림들을 만들어낸다. 물론 그는 작가로 희곡을 창작하고 연극으로 무대에 펼쳐지게도 한다.
그런 그가 미군에게 포섭되어 미국의 스파이 활동을 하게 된다. 물론 자신은 그렇게 활동했다고 믿고 있고, 그는 나치에게 완전히 동조하지 않았다고 스스로도 믿고 있다.
하지만 그가 사랑하는 사람은 독일인인 헬가였고, 헬가와의 관계를 둘만의 제국을 만들었다고 표현하고 있다. 이는 사랑하는 사람과 있을 때 이 나라냐 저 나라냐보다는 그들의 관계가 더욱 중요했다고, 삶에서 거창한 이념보다는 사랑하는 사람과의 관계를 만들어가는 것이 소중함을 보여주고 있다. 헬가와 헤어졌을 때, 그에게 이 제국은 무너져내린다.
'둘만의 제국이었다. 그리고 그 제국이 사라졌을 때 나는 지금의 나인 동시에 앞으로의 영원한 나, 즉 나라 없는 사람이 되었다.'(74쪽)고 하워드 켐벨은 말하고 있다.
그에게는 이제 독일이냐 미국이냐는 의미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나라가 중요한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그것이 어떻게 삶을 왜곡하고 구속하는지를 보여주고 있는데, 이를 소련의 스파이로 나오는 인물과 헬가의 동생 레지, 그리고 미국에서 활동하는 극단주의자들이 그런 모습을 보인다.
이들과 만나는 켐벨을 통해 그들의 모습을 풍자하고 있는데, 이는 독단적인 이념, 또는 국가적인 이념에 자신을 맡겨 자신이 어떤 일을 하는지 성찰하지 못하는 인간들을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악의 평범성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들은 자신이 하는 일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다. 주어진 이념에 따라 움직일 뿐이다. 그런 사람들이 판치는 세상이 과연 제대로 된 세상일까? 오히려 대외적으로 나치의 선전가로 알려진 켐벨이 사실은 미국의 정보원이었으며, 그가 자신이 한 일을 알고 인정하고 있으니... 그는 자신의 삶을 지탱하는 톱니바퀴를 잃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자신을 지탱해주는 톱니바퀴를 잃은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맹목적으로 행동한다. 이들의 행동에는 사유가 끼어들 틈이 없다. 왜냐하면 사유라는 톱니바퀴가 닳아없어졌기 때문이다.
'물론 갈려 없어진 톱니들은 단순하고 명백한 진리, 열 살짜리 아이라면 대부분 쉽게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진리이다. 톱니바퀴의 톱니를 일부러 갈아버린다는 것은 불 보듯 뻔한 정보를 일부러 무시한다는 뜻이다. 그것이 또한 나치 독일이 문명과 광견병 사이의 중요한 차이를 이해하지 못한 이유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것은 내가 우리 시대에 보았던 미치광이 군대, 미치광이 국민을 설명할 수 있는 가장 그럴듯한 나의 이론이기도 하다'(287-288쪽)
바로 이것, 우리는 사유라는 톱니를 갈아 없애버리면 안 된다는 것. 하여 소설은 오히려 나쁜 사람이라고 낙인찍힌 나치 선전가인 켐벨을 통해 그보다 더한 극단주의로 흘러가고 있는 사회를 비판하고 있다.
그의 전후 삶과 만나는 사람들을 통해 사회의 그러한 극단적인 모습, 극단적인 사람들의 행위가 얼마나 위험한지를 보여주고 있다고 볼 수 있는데, 그럼에도 소설에는 어떤 긴장이 느껴지지 않는다.
가볍게, 농담을 던지듯이 사건을 서술하고 있는데, 이러한 가벼운 전개가 오히려 사회의 무거운 적대 행위들이 얼마나 가당치 않은 것인지를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면서 인물의 말을 통해 작가는 자신이 전하고자 하는 바를 전달하고 있는데, 정작 하고 싶은 말이 바로 소설의 끝부분에 나온다.
'악이 어디 있는 줄 아는가? 그건 적을 무조건 증오하고, 신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여 신과 함께 적을 증오하고 싶어하는 모든 사람의 마음 속에 있다. 그 때문에 사람들은 온갖 추악함에 이끌리는 것이다. 남을 처형하고, 비방하고, 즐겁게 웃으면서 전쟁을 벌이는 것도 백치 같은 그런 마음 때문이다.'(320쪽)
보니것이 살아있다면 지금 세계의 현실을 보면서 아마도 이 말을 다시 했을 것이다. 다른 존재들을 악으로 규정하고, 신은 오직 자신의 편이라고 하는, 사람에게는 양면성이 있으며, 그 양면성을 남이 판단할 수 없음을 켐벨의 경우를 들어서 보여주고 있는 작가에게, 이런 세상은, 남을 악마화하는 이 세상은 용납할 수 없는 세상이었을 것이다.
만약 남의 어둠을, 밤을 본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 어둠 속에서, 밤을 통해서 빛을, 낮을 태어나게 해야 하지 않을까? 아니, 그에게도 빛과 낮이 있음을 먼저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두 권째 읽은 커트 보니것의 소설. <제5도살장>에서도 이 하워드 켐벨이란 인물은 언급이 된다. 이 인물을 통해서 전후 사회의 모습을 풍자하고 있는 소설. 다음 작품도 기대하게 만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