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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담서림(道談書林)
  • 그 개와 혁명
  • 예소연 외
  • 15,750원 (10%870)
  • 2025-02-18
  • : 22,452

이상문학상 수상작품집이다. 논란이 되기도 했었고. 문학사상사에서 발간하다가, 다른 출판사로 넘어가게 되었는데... 오랜 역사와 작품성을 자랑하는 문학상이 사라질 뻔한 위기를 겪다니... 문학의 위기가 이런 식으로 올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지금은 아니지만 한때 이상문학상이 발표되면 수상작품집을 꼭 사보던 때가 있었다. 어떤 작품들이 수상을 했는지, 수상이라는 이름으로 인정을 받고 있는지 궁금하기도 했었기 때문인데...


이번엔 '혁명'이란 말이 들어간 소설 때문에 오랜만에 읽어보게 되었다. '그 개와 혁명'이라니. 읽어보기 전까진 전혀 내용을 알 수가 없던 소설.


읽으면서 무겁게 깔리는 혁명이라는 말 대신에 가벼움을 느끼게 되었는데, 그렇다면 이제 '혁명'이라는 말이 지닌 의미도 변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2024년 겨울과 2025년 봄, 계엄과 탄핵으로 사람들이 모인 광장이 그 변화를 느끼게 해주었다. 시위 현장에서 늘 불리던 민중가요뿐만 아니라 일반 가요도 불리는 그러한 광장의 모습.


무언가 결단을 해야만 하는, 자신의 모든 것을 걸어야 한다는 중압감이 넘치는 시위 현장이 아니라, 생기발랄한, 마치 즐기는 듯한 광장의 모습. 이제 시위도 달라졌는데... '혁명'도 달라져야지.


그래서 이 소설을 읽으면서 소설에 나오는 '성식이 형'이나 아빠 태수 씨, 그리고 엄마가 꿈꾸던 혁명과 그 자식 세대인 수민, 수진의 혁명이 달라졌음을 생각하게 됐다.


NL이든 PD든 80년대 운동권들은 절박한 심정으로 혁명 운동에 나섰다. 그들은 제도를, 사회를 바꾸려고 했다. 그들이 꿈꾼 혁명은 거시적 혁명, 큰 혁명이었다. 그러한 혁명에서 개인이 차지할 자리는 없었다. 혁명을 위해 복무해야 하는 개인만이 있었을 뿐.


그러나 여기에 균열이 생긴다. 바로 태수 씨다. 태수 씨는 아이가 생기자 그러한 혁명에서 발을 뺀다. 사회 혁명도 중요하지만 소중한 사람을 지켜야 한다는 마음을 버릴 수가 없는 세상으로 변하기 시작한다.


여기에 한 세대가 지나면 어떻게 되나? 소중한 사람을 지킨다가 아니라, 내가 원하는 것을 할 수 있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회 속 개인이 아니라, 개인을 뒷받침하는 사회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 사회가 개인을 옥죈다면, 사회에 저항해야 한다. 그것이 혁명이다.


즉, 사회를 바꾸는 혁명에서, 내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내 삶의 혁명으로 '혁명' 이 바뀐다. 그래서 태수 씨의 장례식은 한 혁명에서 다른 혁명으로 넘어가는 모습을 잘 보여준다. 바로 개 '유자'의 등장.


그 개가 등장해서 장례식장을 난장판으로 만들어 놓는 것은 그 전까지 견고했던 제도에 대한 저항이다. 이제 제도가 사람을 규정하지 못한다는 것을 자명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사회보다 개인. 그런 사회에서 혁명은 개념을 달리한다. 이제는 내가 춤출 수 있는 사회를 꿈꾸게 된 것이다. 제도를 무시하고, 자신의 마음을 살리는 삶을 살려는 사람들. 그러한 사람들이 있는 사회에서는 예전의 혁명은 불가능하다. 아니, 그러한 혁명을 하려고 하지도 않는다. 이를 장례식장에 개를 데려온 '성식이 형'을 통해서 보여준다.


과거 혁명을 꿈꾸던 성식이 형은 이제 수민, 수진 자매의 다른 혁명에 동참한다. 그리고 그것을 지켜보고자 한다. 새로운 시대, 새로운 혁명. 그런 시대가 된 것이다.


이런 시대에 쿠테타라고? 누가 동참하겠는가? 거창하게 좌빨, 사회전복세력 운운하더라도 그 말은 먹히지 않는다. 그러한 혁명의 수사(말)는 과거로 사라졌다. 이제는 새로운 혁명, 내 욕구를 가로막는 제도를 거침없이 비웃어버리는 시대가 된 것이다.


하여 예소연의 '그 개와 혁명'을 읽으며 과거의 혁명에서 현재의 혁명으로 변한 사회를 보게 된다. 새로운 혁명을 하는 새로운 인물들을 만나게 된다. 


탄핵 과정에서 보여준 과장의 모습이 바로 이러한 혁명을 잘 보여주었다는 생각이 든다. 시대의 변화, 새로운 인간형들의 등장을 이 소설을 통해 느낄 수 있었다. 


대상이 이러한 작품이었다면, 이제 우수상들은 어떨까? 각자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소설들이 수상을 했는데, 대상을 받은 작품과 비슷한 새로운 인물형이라면 최민우가 쓴 '구아나'에 나오는 해영과 도윤이지 않을까 싶다. 그들 역시 제도를 거부하고, 새로운 삶을 살아가려 하고 있으니. 가끔은 힘들어하기도 하지만 자신들이 추구하는 삶을 포기하지 않고 꿋꿋하게 밀어나가고 있으니...


이밖에도 김기태의 '일렉트릭 픽션', 문지혁의 '허리케인 나이트', 서장원의 '리틀 프라이드', 정기현의 '슬픈 마음 있는 사람'이 수록되어 있는데 이들 소설 역시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무엇보다도 기존의 수상집과 다른 점은 작품마다 인터뷰한 내용이 실려 있다는 것. 그러한 인터뷰를 통해 작품에 대해서 한번 더 생각할 기회를 준다는 점이다. 그 점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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