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세이건. 그는 우리를 우주로 데리고 간다. 우주에 대해 생각하게 하고, 우주의 광활함 속에 지구의 작고 여린 면을, 지구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소중함을, 하여 서로 연대해야 함을 생각하게 한다.
우주 전체로 보면 거의 보이지도 않는 존재인 지구에서 살아가는 더 작은 존재인 인간. 그런 인간들이 서로 갈등하고 증오하고 없애려 하는 전쟁을 끊지 못하는 모습은 참 무어라 말할 수가 없다.
더 넓은 세상, 더 큰 존재들을 생각하면서, 우리에게 열려 있는 길이 무수히 많음을 생각하면, 작디작은 공간에서 아웅다웅 싸우기보다는 더 넓은 곳으로 힘을 합쳐 나가려는 자세를 지녀야 하는데...
그런데, 칼 세이건이 세상을 뜬 지 30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에도 인간은 서로를 잡아먹지 못해서 안달이다. 돈이 많은 어느 나라 재벌은 화성에 인간을 보내겠다고 하는데... 칼 세이건의 이 말을 보면 참 가당치도 않다.
'우주에서 벌 돈이 있다면, 우리는 기업들이 우주에 못 가도록 뜯어말려야 할 겁니다.'(215쪽)
왜? 그것은 인류의 꿈과 생존과 상관없이 특정 재벌의 돈벌이에 이용될 것이기 때문이다. 우주는 돈벌이에 이용되어서는 안 된다. 하지만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조건이 있다. 바로 우리가 과학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한다.
과학은 특정 지식을 의미하지 않는다. 칼 세이건이 말하는 과학은 사고방식이다. 합리적으로 생각하는 사고방식. 이 합리적이라는 말에는 개인의 이익이 아니라 인류의 이익이라는 개념이 선행되어야 한다.
그런데도 우리는 과학은 특정 전문가만 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나와는 관계없는 학문이라고 생각한다. 뛰어난 몇몇만이 참여할 수 있는 분야라고 생각한다. 하긴 그러한 학생들을 모아 따로 교육하는 '과학고'가 많이 만들어진 나라이기도 하니까.
과학고가 많으면 과학에 관심이 더 많아질까? 아니다. 오히려 과학고에 진학하지 못한 학생들이 난 과학에 소질이 없어, 하고 과학을 도외시하게 된다. 과학고는 더 많은 학생들을 과학에서 멀어지게 하는 역할을 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역할과 더불어 과학은 특정인만이 하는 분야로 고착되게 한다. 그러면 안 된다. 세이건의 말대로 과학은 사고방식이다. 과학적 사고방식은 우리 모두가 지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수 없고, 세상일을 특정인들에게만 맡겨두게 된다.
좀 길지만 세이건의 이 말 명심해야 한다.
'우리가 과학기술에 바탕을 둔 사회를 만들었으면서도 동시에 아무도 과학기술에 대해서 모르는 사회를 구축했다는 것입니다. 무지와 힘이 이렇게 잘 타기 쉬운 연료처럼 뒤섞여 있다가는 조만간 우리 눈 앞에서 뻥 터지고 말 겁니다. ... 과학은 하나의 사고방식입니다. 인간이 오류를 저지를 수 있다는 사실을 똑똑히 이해한 채로 우주를 회의적으로 탐문하는 방식입니다. 만일 우리가 회의적인 질문을 던질 줄 모른다면, 우리에게 뭔가 사실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을 제대로 심문할 줄 모른다면, 권위자들을 의심할 줄 모른다면 정치에서든 종교에서든 우리는 다음번에 어슬렁어슬렁 나타난 돌팔이에게 만만한 먹이가 될 겁니다.' (320-321쪽)
이 말은 예언이 아니다. 이토록 복잡해진 시대에 회의적으로 사고할 줄 모른다면, 권력을 쥔 자들의 말에 따를 수밖에 없다. 자연스럽게 전체주의로 갈 수 있는 길이 열린다. 과학이 발달한 시대에 오히려 사람들은 과학에서 멀어진다면, 그 다음 결과는 무지를 이용하는 자들에게 이용당하게 된다는 것이다. 세계 곳곳에서 지금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지 않은가. 우리나라에서도 그렇고.
세이건의 이 말은 그래서 더욱 아프게 다가온다. 더더욱 복잡해진 과학기술은 우리를 과학에서 더 멀어지게 했다. 그냥 전문가라고 말하는 사람들의 말을 그런가보다 하고 따를 수밖에 없게 하고 있다.
정말 그런가? 그런 증거를 대! 증거를 대기 전에 따를 수 없어. 라고 말할 수 없는 시대가 되어가고 있다.
아니다. 복잡한 시대일수록 더더욱 증거를 요구해야 한다. 전문가가 아니라고 입을 다물고 있어서는 안 된다. 그는 말한다.
'우리는 가장 엄격한 수준의 증거를 요구해야 합니다. 우리에게 중요한 문제일 때는 더욱더 그렇습니다.' (331쪽)
과학에 무지하다고 해서 질문을 하지 않아서는 안 된다. 무지하기 때문에 질문을 해야 한다. 무지한 사람도 이해하고 납득할 수 있는 설명이 있은 다음에야 비로소 적용되어야 한다.
왜냐 세이건의 말처럼 '과학의 핵심은 비판, 토론, 개방적인 탐구, 지식을 체계화하려는 태도, 설득력 있는 증거가 나올 때까지는 믿음을 미루는 태도, 비판에 진지하게 귀 기울이는 태도'(299쪽)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태도를 지니고 있으면 쉽게 휘둘리지 않는다. 그리고 비합리적인 생각에 끌리지 않는다. 세이건이 과학에 대해서 일반 사람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책을 쓰고, 또 각종 매체에 등장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사람들이 과학에서 멀어지면 안 된다. 과학에서 멀어지게 해서는 안 된다. 모두가 과학자는 아닐지라도 과학적 사고방식은 지녀야 한다. 그것이 인류가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이다.
이 책은 칼 세이건이 인터뷰한 내용을 연대 순으로 엮어놓았다. 읽다보면 그가 지속적으로 반복하는 말들이 나온다. 그는 과학을 자신만의 분야로 국한시키지 않았다. 과학을 다른 사람에게 지속적으로 알리려고 했다. 그런 활동 때문인지, 1992년 미국 국립과학아카데미 회원으로 선출된 후보자로 선정이 되었지만 몇몇의 반대로 가입이 부결되었다고 한다.
이런 모습, 과학계의 폐쇄적인 모습, 그것이 사람들을 과학에서 더 멀어지게 하는 이유 중 하나라 되기도 하겠는데, 나중에 명예회원으로 받아들였다는데, 참...
하지만 세이건이 과학아카데미의 회원이 되느냐를 중요하게 생각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물론 가만 있는 그를 가입시키느냐 마느냐 하는 것에 상처를 받았겠지만, 그는 이미 전세계에서 가장 잘 알려진 과학자이지 않았는가. 무슨 회원이냐가 과학자임을 인정하는 자격증도 아니겠고.
이 책을 읽으면서 무엇보다도 칼 세이건이 우주를 관찰하면서 또 연구하면서 느끼는 행복함, 과학에 대한 열정을 느낄 수 있어서 좋았다. 그는 과학을 하면서 행복해 했다. 또 과학을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면서 행복해 했다. 행복. 이것이다. 나만의 행복이 아니라 모두가 행복해지기를 바랐던 사람.
그래서 그는 정치 문제에도 자신의 의견을 과감하게 냈다. 과학자가 왜 정치 발언을 하느냐고? 그는 과학자이기 때문에 한다고...
'당신이 스스로 어느 정도 전문가라 자처할 수 있는 과학 분야에 관련된 문제를 발견한다면, 인류의 지구적 문명에 닥친 위험에 관해서 발언하는 것은 세상에서 제일 자연스러운 일일 겁니다.'(269쪽)
지구 온난화, 핵개발의 위험성 등에 대해서 그가 발언하고 행동에 나선 이유이기도 하다. 과학자이기에, 그것의 문제를 알기에 가만 있을 수 없다는 그의 말. 그것이 바로 전문가 아니겠는가.
하여 이 책에서는 과학에 대한 호기심, 그것을 추구하는 행복, 그리고 과학을 한 사람으로서 져야 하는 책임 등을 세이건의 말을 통해서 만날 수 있다.
이래서 칼 세이건을 과학을, 분야를 좁히면 천문학을 대변할 수 있는 세계 최고의 학자라고 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